호남권 언론계 ‘실업 대란’
  • 광주·羅權一 주재기자 ()
  • 승인 1997.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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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북 언론사 감원 태풍… 과열 경쟁·경영 실패로 적자 누적
최근 광주 지역 언론사들이 적자 누적에 따른 경영난을 이유로 기자들을 대량 감원해 고용 불안이 가증되고 있다. 좁은 지역에서 6개 일간지가 경합하는 열악한 구조인데다, 경기 불황의 여파가 가뜩이나 경제적 기반이 약한 이 지역에 밀어닥치면서 전문직을 자처하는 언론 노동자들마저 거리로 내몰리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광주 지역의 대표적 언론사인 <광주일보>(사장 최승호)의 경우 지난 3월 말 경영 혁신을 내세워 국장급 간부 4명을 포함해 편집국·업무국 정규 직원 15명에 대한 퇴직·휴직·전배 조처를 단행했고, 자매 월간지 <예향> 제작 부서인 월간국은 한때 폐간까지 검토하다가 ‘월간부’로 기구를 축소했다.

부장급 간부 30여명 해임하기도

이에 앞서 지난해 10월에는 <무등일보>(사장 김태식)가 국장급 간부 3명을 권고 사직시켰고, 11월에는 <전남일보>(사장 이정일)에서 인건비 감축을 이유로 부장급 언론인들이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쫓겨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호남권인 전북 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전북일보>의 경우 경영주인 서정상 사장이 노사 협상 과정에서 회사 방침을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난 3월 부장급 이상 간부 30명을 해임해 지역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현재 <전북일보>는 국장급을 제외하고 부장급 이상 간부들이 대부분 복직되어 사태가 일단 수습된 상태지만, 상시적인 고용 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의 감원 태풍과 관련해 ‘광주·전남 기자협회’와 ‘광주·전남 언론노조협의회’ 등 3개 단체는 지난 4월3일 기자회견을 통해 대량 감원과 임금 동결 방침을 철회하라고 요구하고, 강제적인 감원이 계속될 경우 파업 등의 쟁의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광주·전남기자협회 조영석 회장(<무등일보> 경제부장 대우)은 ‘인건비 절감을 내세워 단행되고 있는 무차별한 감원 조처는 저임금을 감수하고 있는 기자들의 마지막 남은 자긍심에까지 상처를 주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대량 감원으로 인한 고용 불안은 언론사 노조의 임금 협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3월 유례 없는 대량 감원으로 고용 불안이 극심해지자 <광주일보> 노조는 최근 ‘임금 인상보다 우선 고용 안정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며 회사측이 내놓은 3% 인상안에 합의했다.

이에 반해 <전남일보> <무등일보> 등 광주 지역 4개 언론사는 광주지역신문사노조협의회를 구성해, 민주노총이 제시한 도시 가구 최저 생계비를 근거로 삼아 지난해 총액 대비 21.3%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현재 임금 공동 교섭에 들어간 상태이다.

노조협의회는 내부적으로 경기 불황을 감안해 10% 인상 선에서 타협점을 찾는다는 방침을 세워둔 상태지만, 회사측이 임금 동결 또는 한 자릿수 인상을 고집하고 있어 노사간 임금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대 기구 정리·지면 축소 등이 활로”

최근 대량 감원 사태를 불러들인 광주 지역 언론사의 고질적인 경영난은 사회 전반의 경기 불황 탓도 있지만, 적자 경영이 불가피한 지역 언론 시장의 구조와 언론사주의 경영 실패에 있다는 것이 일선 기자들의 시각이다.

광주 지역에서는 현재 <광주일보> <전남일보> <무등일보> <광남일보> <광주매일> <전남매일> 6개 일간지가 발행되고 있다. 여기에 전남 순천에서 발행되고 있는 <남도일보>가 이 달에 광주로 본사를 이전할 예정이어서 좁은 지역에서 모두 7개 일간 신문이 경쟁을 벌이게 된다. 그나마 협소한 광고 시장을 놓고 벌이게 될 과열 경쟁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결국 광주·호남 지역 언론의 감원·해고 바람은 앞날을 내다보지 못한 우후죽순 창간과 이에 따른 과열 경쟁, 그리고 모기업 보호막 기능에 만족하는 안이한 경영으로 빚어진 적자 누적 책임을 일선 언론 노동자들에게 고스란히 떠넘기는 것에 불과하다.

이와 관련해 류한호 교수(광주대·신문방송학과)는 ‘언론사 경영주들은 인원을 감축하기보다는 비대해진 기구들을 먼저 정비하고 지면을 축소해 경영합리화를 도모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특히 지방 일간지들은 공동 판매 제도를 도입해 우선 보급 비용을 줄여나가는 게 더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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