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 잇는 폐교 ''농촌 파괴'' 부채질
  • 최영재 기자 ()
  • 승인 1996.07.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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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경제 논리 앞세워 농촌 학교 무더기 폐교… ‘농촌 살리기’ 정책에 역행
경북 봉화에서 울진으로 가는 36번 국도를 따라 한 시간 정도 달리면 불영 계곡 못가서 옥방이라는 동네가 나온다.

이 작은 마을에는 흉물스런 중학교가 하나 있다. 아담한 교사, 축구 골대가 있는 넓지도 좁지도 않은 운동장, 운동장 주위에 빙둘러 심어진 은행나무. 언뜻 보면 전형적인 시골 중학교이다. 그런데 청소년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공을 차야 할 운동장에는 잡초가 무성하다. 녹슨 철봉은 기둥 한쪽이 부러졌고, 축구 골대에는 노랗고 파란 빨래집게가 꽂힌 빨랫줄이 걸려 있다. 학교 정문 옆 조그마한 비석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다. ‘소천중 옥방분교 1971년 3월20일 개교, 졸업생 1084명 배출, 1995년 3월1일 폐교. 경상북도 교육감.’

학생 수가 모자라 폐교된 지 1년밖에 안되었는데도 학교는 흉가처럼 을씨년스럽다. 곰팡이 내가 코를 찌르는 1학년 1반 교실 칠판에는 이런 낙서가 적혀 있다.‘텅 빈 우리들의 교실 왠지 씁쓸하다.’2층 과학실에는 인체 해부 모형을 비롯한 실험·실습 교재들이 바닥에 어지러이 널려 있다. 지금이라도 쓸 수 있는 이 실험 교재들은 분명히 국가 예산으로 마련했을 터인데 먼지만 잔뜩 뒤집어쓴 채 버려졌다.

이 학교를 관리하고 있는 최두연씨(63)는 “폐교 당시 학생 수는 70∼80명 가량 되었다. 주민들은 학교를 없애는 데 반대했지만 적자 운영을 계속할 수 없다는 정부 방침을 바꾸지는 못했다”라고 말했다.
 
“학교 문 닫으면 도시로 떠날 수밖에…”


옥방 마을에는 학교가 하나 더 있다. 삼근초등학교 옥방분교이다. 선생님 두 분에 학생은 10명이다. 학생 수가 적다 보니 수업은 거의 1 대 1로 이루어진다. 이 학교도 지난해에 문을 닫을 위기에 놓였다. 그러나 마을 사람의 반대로 그럭저럭 폐교는 면했다. 그렇지만 언제 다시 폐교 이야기가 고개를 들지 모른다는 것이 마을 사람의 말이다. 마을 주민 김대섭씨(42)는 “다른 농촌과 달리 우리 마을은 젊은 사람이 비교적 많은 편이다. 대부분 도시에 나가 살다가 도시 생활이 힘들어 농촌으로 다시 돌아온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초등학교가 중학교처럼 폐교된다면 아이를 데리고 다시 도시로 떠나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82년부터 소규모 학교 통폐합 정책을 펴왔다. 이농 현상 때문에 농어촌 지역에 학생이 줄어들자 학교를 줄이는 정책으로 대응한 것이다.

농어촌 지역은 60년대 말부터 열세 살 이하 어린이가 크게 줄기 시작해, 83년에 2백13만 명이던 것이 93년에는 93만 명으로 10년 동안에 반이 넘게 감소했다.

교육 당국은 소규모 학교가 여러 가지 면에서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폐교한다는 입장이다. 교육부 지방교육지원국 관계자는, 소규모 학교에서는 교사 한 사람이 여러 학년을 가르치는 복식 수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교육 과정을 정상으로 운영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교육 당국은 소규모 학교가 교육 재정 운용 면에서도 낭비라는 사실을 든다. 교육부는 50명 이하 소규모 학교의 학생 1인당 교육비가 전국 평균 1백5만원의 4.3배인 4백49만원이라고 밝혔다.

소규모 학교 통폐합은 91년 이후에 더욱 빠르게 늘어났다(아래 도표 참조). 여기에는 91년에 제정된 지방교육양여금법이 큰 몫을 했다. 이 법의 골자는, 학교 수에 따라 지원하던 지방 교육 지원금을 학생 수에 맞게끔 바꾼다는 것이다. 학교 수에 따라 교육부 예산이 지원될 때는 그나마 소규모 학교를 유지할 수 있었는데, 법이 바뀌어 학교 수가 예산을 지원 받는 데 필요없게 되자 각 지역이 앞을 다투어 소규모 학교를 없애기 시작했다. 소규모 학교 통폐합은 각 시·도 교육감의 재량 사항이다.

교육부는 또 소규모 학교가 학생들의 경쟁력을 떨어뜨려 교육의 질과 인격 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학부모를 보조 교사로 활용하는 등 가능한 방법을 궁리하고 교육 과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열린 수업’을 한다면 도시의 과밀 학급보다 시골의 작은 학교가 훨씬 알찬 수업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1 대 1 수업이 가능하기 때문에 도시 학교보다 낫다는 것이 전교조측 주장이다.

 
통폐합에 따른 경비 절감 효과가 그리 크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94년 학교가 폐교된 뒤 학부모들이 폐교 철회 행정 소송을 내서 화제가 되고 있는 경기도 가평군 두밀분교 살리기 학부모협의회 장호순씨는, 작은 학교를 없애고 학생들에게 통학 버스를 제공하는데, 차량 구입 유지비와 기사 인건비를 고려한다면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게다가 교육 문제 때문에 가족이 도시로 이주함으로써 생기는 주택·교통·환경 분야의 사회 간접 비용은 무시할 수 없는 경제적 손실이며, 농어촌 주민의 상실감 또한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손실이라는 것이다. 최효승 교수(청주대·건축공학)는 “초등학교는 농촌 마을의 가장 핵심 시설이다. 분교 문제를 교육 경비로만 따져서는 안된다. 분교 통폐합은 경제 논리에 교육이 희생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작은 학교 살리기는 장기적인 투자라고 보아야 한다. 학교가 있다면 도시에서 농촌으로 돌아가 사는 사람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최교수는 분교 통폐합 정책은 경직된 관료 주의가 빚은 산물이라고 비판했다. 농림수산부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벌이고 있는 농촌 살리기 운동은 분교만 살리더라도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때문에 분교 통폐합 정책은 교육부가 독단적으로 처리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농림수산부 농정기획과의 한 관계자는, 농어촌 지역을 살리려면 분교를 살려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 그는 “농어촌 지역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교육과 의료 문제이다. 소규모 학교를 없애지 말고 다른 대책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는 교육부 주관 사업이니 간섭할 여지가 없고 공동으로 논의해 본 적도 없다”라고 말했다.

 
학교 없는 농어촌, 회생 어렵다


폐교된 학교의 활용도 관심거리이다. 95년까지 전국에서 폐교된 학교 수는 1천4백85개이다. 이 가운데 5백19개는 개인에게 팔리거나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고, 4백35개는 임대되었으며, 4백94개는 방치되어 있다. 현재 폐교 시설은 각 시·도 교육감이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명확한 관리 지침이 없기 때문에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와 관련해 교육부 관계자는 “가능한 한 매각은 자제하고 있다. 지역 주민에게 위화감을 주는 시설은 억제하고 있으며, 교육과 주민 복리 증진에 도움이 되는 문화 시설을 유치하려 노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교육부 설명과 달리 각 시·도 교육청이 폐교 시설을 원칙 없이 개인에게 임대하고 있다는 비판도 높다. 충북 진천군 명암분교를 개인 작업장으로 임대해 쓰고 있는 목판화가 윤여걸씨는, 각 시·도 교육청이 지역 사회와 문화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에게 시설을 임대하기보다는 임대료만 많이 내면 무조건 빌려 주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농어촌 지역 폐교 문제는 쓰러져 가는 우리 농촌 사회의 현실과 암울한 미래를 단적으로 내보이는 사례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는 우리 농촌의 미래와 결부해 다루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6월15일 대전 유성 리베라 호텔에서는 대한건축학회와 일본건축학회가 공동 주최해 농촌 문제를 다루는 세미나를 열었다. 이 세미나에 참석한 한·일 두 나라 건축학자들은 농어촌 폐교 문제를 전반적인 농어촌 정책과 연관해서 다루었다. 참석자들은, 일본은 93년부터 도시에서 농촌으로 되돌아가는 인구 환류가 늘어나고, 도쿄를 빠져나가는 ‘도쿄 졸업’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라고 말했다. 농촌 학교를 살리기 위한 일본인들의 노력이 이러한 결과를 낳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우리 농촌을 살리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 가운데 하나는 농촌 학교를 살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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