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열 받는 '내외통신' 안기부 품 떠나라
  • 이정훈 기자 ()
  • 승인 1996.07.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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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정보위나 연합통신의 전문 부서로 거듭나야”
북한 관련 뉴스 전문 언론사로 손꼽혀온 내외통신사 독립 문제가 최근 심심치 않게 거론되어 관심을 끌고 있다. 내외통신사 독립 문제란 지금처럼 안기부가 쥐고 있는 예산·행정권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내외통신사 독립 문제가 거론된 동기로는, 일부 정치인과 <기자협회보> 등이 내외통신이 안기부의 외곽 단체라는 요지의 주장을 펼친 것이 근본 원인이었다. 이러한 흔들기에 대해 내외통신은 일절 대응을 삼가고 있다. 이번 취재를 위해 전화를 걸었을 때도 내외통신 총무국 관계자는 “외부 취재에 응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원칙이다”라고 답변했다.

내외통신 문제가 불거져 나온 것은 94년 10월10일 공보처 국정감사 때였다. 당시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87년 12월 안기부가 내외통신에 보낸 ‘대통령 선거 관련 특별 기사 계획’ 문건과 ‘보도 통제 사항 통보’ 문건을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이후 비슷한 내용을 수차례 보도한 <기자협회보>는 지난 4월27일자에서도 ‘4·11 총선 두 달 전부터 안기부가 내외통신의 기사를 사전 검열한 후 출고케 했다’라고 보도했다. <기자협회보>는 또 내외통신이 안기부의 북한 정보 공식 창구라며 앞으로 각 언론사가 내외통신의 기사를 받는다면 【서울=內外】라는 크레디트 대신 【서울=안기부】라는 크레디트를 달아야 할 것이라고까지 지적했다.

내외통신 독립에 대한 검토는 ‘과연 내외통신사가 언론사인가’라는 물음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정확한 대답은 ‘언론사가 아니라 공보처에 등록된 사단법인체’라는 것이다. 사단법인 내외통신사에 대한 예산 지원을 안기부가 전적으로 책임지기 때문에 안기부를 퇴직한 사람들이 내외통신사 간부로 입사하고, 이에 따라 내외통신이 안기부에 예속되는 현상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無價紙 만들어 안기부에 재정 100% 의존


그러나 안기부 직원이 내외통신사 기자를 겸하는 것은 아니므로 내외통신이 곧 안기부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내외통신 기자들은 안기부와 상관없이 내외통신사 고유의 선발 과정을 거쳐 입사한다. 그러나 내외통신사 간부 중 상당수가 안기부를 퇴임한 사람이라는 점에서 갈등의 한 면이 시작된다. 내외통신에 관계했던 사람들은 “요 근래 10여 년간 안기부에서 퇴직한 사람들이 계속 책임자급 간부로 입사하면서 기자들과 안기부 출신 간부들 간에 갈등이 누적돼, 최근 2년간 기자 10명 중 7명이 퇴사했다”라고 밝혔다.

내외통신이 다루는 북한 뉴스 중 예민한 부분이 안기부 심리정보국 내외통신계의 사전 검열을 받아 왔다는 것은 내외통신 독립 문제를 야기한 주 원인 중 하나이다(최근 안기부는 局을 室로 재편했으나 이 기사에서는 과거와 같이 局으로 표기한다). 내외통신은 북한의 라디오 방송인 평양방송·중앙방송을 주로 청취해 뉴스를 생산한다. 이 방송들이 북한에 대해서는 찬양 일변도로 보도하고 한국에 대해서는 날조된 내용을 전파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최근 북한 방송들은 그들의 도발로 인해 한반도에 긴장이 높아졌는데도 5·6공 때보다 더 거친 욕설로 한국을 비방했다. 예를 들어 김영삼 대통령에 대해 ‘역적’ ‘정치 매춘부’라고 욕을 하고, ‘안기부를 폭파하라’고까지 선동했다.

북한 방송의 이러한 욕설은 한국내 반정부 인사 또는 운동권 세력의 입맛에 딱 맞아떨어질 수가 있다. 거꾸로 북한이 이러한 것을 기대하고 심리전 차원에서 대남 비방 방송을 퍼붓는다고 할 수도 있다. 내외통신 관련 소식통은 “북한에서 이런 보도가 나오면 내외통신은 관련 기사를 팩시밀리로 안기부에 보내 사전 검열을 요청한다. 그러면 내외통신계가 김대통령을 모독한 부분, 안기부를 비난한 부분을 삭제해 보내준다”라고 말했다. 내외통신 독립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검열이 내외통신을 안기부 기관지로 전락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선거 때마다 안기부가 내외통신을 통해 북풍(北風)을 부풀려 왔다는 오해를 사게 되었다”라고 지적했다.

내외통신에 관여했던 다른 소식통은, 북한 방송이 항상 사실을 보도하지 않기 때문에 안기부의 검열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내외통신 간부들이 북한 방송의 사실성 여부를 독자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안기부에 의뢰함으로써 내외통신이 안기부의 기관지로 전락한 것이라며 “그 밑바탕에는 안기부의 사전 검열을 통과하면 혹시 보도 내용이 문제가 됐을 때 빠져 나갈 수 있다는 안기부 출신 간부들의 관료주의적 무사안일주의가 깔려 있다”라고 분석했다.

북한 관련 뉴스를 독자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것과 더불어 생산한 뉴스를 공짜로 제공한다는 사실도 내외통신 독립 문제를 야기한 중요 원인이다. 현재 내외통신은 매일 두 차례씩 북한 관련 뉴스를 생산해 팩시밀리로 각 언론사에 보내고, 이를 인쇄해 자동차편으로 다시 보내준다. 이렇게 나온 일간판(日刊版)에다 해설 기사를 덧붙여 가공한 것이 주간판인데, 주간판 역시 자동차편으로 각 언론사에 배포한다. 그밖에 외교 행낭을 이용해 해외로 보내는 영문 뉴스 자료를 제작한다.

내외통신이 생산한 뉴스가 무료로 배포되는 이유를 자신있게 설명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무료이기 때문에 내외통신의 가치가 낮게 평가받고 있다는 데 대해 많은 사람이 동의했다. 같은 내용이더라도 외국 신문에 실리면 한국 언론은 이를 인용해 크게 보도하지만, 내외통신에 난 내용이면 단신 정도로 처리하고 만다는 것이 내외통신 관련 인사들의 불만이었다. 무가지를 생산한다는 현실 때문에 내외통신은 안기부에 100% 재정을 의존하고 있다.

내외통신, 북한 관련 대형 사건에서는 소외

한 소식통은 내외통신이 북한의 라디오 방송만 수신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의 텔레비전을 수신·녹화하는 곳은 안기부다. 안기부는 녹화한 테이프를 KBS·MBC 등에 보내 <남북의 창> <통일전망대> 등을 통해 방영되도록 돕고 있다. 그림이 되는 자료는 안기부가 직접 챙기고 재미 없는 자료만 내외통신을 통해 나가게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미그기를 몰고 귀순한 이철수 대위 사건처럼 북한 관련 대형 사건이 터질 경우 안기부가 직접 나서서 홍보한다. 하찮은 정보를 내보낼 때는 내외통신을 안기부 공보실처럼 이용하고 중요한 사건에서는 소외시킨다면 굳이 안기부가 내외통신을 거느리고 있을 필요가 있느냐”라고 반문했다.

내외통신 직원은 50명 정도이다. 이중 10명 남짓한 평기자와 북한 방송을 전문으로 듣는 20여 명이 내외통신을 유지하는 근간이다. 편집국의 경우 상대적으로 차장급 이상 간부가 평기자 수와 거의 비슷할 정도로 많아서 비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또 내외통신 관계자들은, 각 언론사에 팩시밀리로 뉴스를 보내고도, 같은 내용을 인쇄해 자동차편으로 배달하는 관행이야말로 무사안일주의의 상징이라고 지적했다. 한 소식통은 “내외통신 관계자 중 조직 운영에 문제가 있다고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내가 있는 동안만은 조용히 있자며 덮어두고 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내외통신의 안기부 예속화가 더 심해지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각 언론사가 북한부 또는 북한팀을 두고 북한 뉴스에 대한 취재를 시작한 것도 내외통신 존폐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실제 내외통신 기자 중 일부는 이미 주요 언론사의 북한 문제 전문 기자로 자리를 옮겼다.

안기부에게 내외통신은 버리기에 아깝고 먹자니 먹을 것은 없는 계륵(鷄肋) 같은 존재이다. 그러나 최근 북한 관련 정보에 목말라 하는 사람과 기관이 급증하고 있어 계륵을 계륵으로만 둘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 지금과 같아서는 내외통신이 북한 관련 뉴스 전문 통신사로 자리잡기 어렵다. 때문에 △유가지 생산 전문 통신사로 재편해 경영에 효율성을 기해야 한다 △북한 관련 뉴스를 다룬다는 특성을 감안하면서도 안기부에 예속되는 것을 어느 정도 줄이기 위해 국회 정보위나 연합통신에 북한 관련 전문 부서로 들어가는 것이 좋다는 것 등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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