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농촌 통합의 빛과 그늘
  • 羅權一 광주 주재기자 ()
  • 승인 1998.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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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여천시·군 ‘거대 여수시’로 4월 출범… 무안반도 결합은 무산, 지역 갈등 후유증 심각
지방 행정에도 구조 조정 바람이 불고 있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낙후했던 호남 지역이 도·농 통합을 통해 지역 발전을 모색하고 있다.

이미 도·농 통합이 이루어진 순천시(순천시·승주군) 광양시(동광양시·광양군) 나주시(나주시·군)에 이어, 지난해 9월 여수시와 여천시·군을 하나로 묶는 ‘3려 통합’이 성사해 4월1일 ‘통합 여수시’가 탄생한다.

또 지난 3월 세 차례 시도했다가 무산되었지만, 목포·무안·신안을 통합하자는 ‘무안반도 통합’도 불씨가 여전히 살아 있다. 이밖에 전주시와 완주군을 통합해 전주시의 발전을 꾀하자는 통합 운동도 구체화하고 있다.

권역 별로 2∼3개 자치단체를 하나로 묶는 통합 운동은 생활권이 같은 군소 자치단체를 묶어 행정 인력과 비용을 절감하고, 자치단체가 규모의 경영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그러나 그에 따른 후유증도 만만치 않다. 특히 지난 3월 통합 시도가 무산된 무안반도 통합의 경우, 힘의 논리로 밀어붙이는 바람에 시·군 지역 주민들 간에 불신의 골만 깊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통합 운동의 성공 사례로 꼽히는 ‘3려 통합’으로 오는 4월1일 출범하는 여수시는 전남 지역 제1 도시로 발전한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면적 4백97.5㎢ 인구 34만명의 거대 도시가 된 여수시는 한 해 예산 규모 3천8백66억원에 재정 자립도 39%를 유지하게 된다. 여수시는 또 8백85㎞의 해안선과 1천6백만평인 여천·을촌 산업공단이 있어 수산 및 공업 도시로 거듭날 조건을 갖추게 되었다.

통합 여수시, 지역 이기주의 버려 성공

여수시 출범은 현재 ‘통합 여수시 설치 준비단’(통합준비단)이 주도하고 있다. 통합준비단은 공무원 정원을 2천44명에서 1천7백22명으로 감축하고, 1읍 6면 21개 동으로 이루어진 행정 조직을 개편하면서 통합 여수시 출범 기념 행사 준비에 한창이다. 통합 이전 각각 3명이었던 단체장과 부단체장도 1명씩으로 줄었다. 통합준비단의 한 관계자는, 통합에 따라 방만해진 행정 인력을 조정하는 일과 관련해 “3려 시·군 어느 한쪽도 지나친 혜택이나 피해가 없도록 공무원 인력 조정을 진행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3려 통합을 주도한 한 시민단체 간부는 “통합을 추진한 주체는 시민이었는데 지금은 공무원이 모든 것을 주도해 통합 정신이 바래고 있다. 공무원들의 자리다툼과 살아 남기 전쟁이 치열해 행정 조직 감량이나 합리적인 인력 배치가 이루어질지 의문이다”라고 지적했다. 회사원 이명우씨(52·여수시 안산동)는 “통합 여수시 출범이 시민에게 불편을 줄지 모른다. 예전에는 민원을 해결하러 시청에 한 번만 가면 되었지만, 이제는 시청이 1·2·3 청사로 나뉘어 있어 사안에 따라 1·2·3 청사를 번갈아 출입해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전남 동부권의 중추 도시로 발전할 기틀을 다진 3려 통합은, 특정한 지역이나 권력층의 일방적인 통합 추진이 아니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지역 이기주의를 버린 것이 성공 요인으로 평가된다. 과거 여천시 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두 차례나 실패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여천 지역의 시민단체들이 통합 운동을 주도했고, 각 기관 단체장과 시장·군수 들의 협조·양보와 함께 상대적으로 낙후한 여천군 지역에 대한 배려가 뒤따랐기 때문에 통합이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여수 지역과는 반대로 세 차례에 걸친 통합 추진이 지난 3월 수포로 돌아간 무안반도 지역은 통합 실패의 후유증이 채 가시지 않고 있다. 통합 찬성보다 반대 여론이 훨씬 많았던 무안군과 목포·신안 지역의 갈등과 반목이 특히 심하다.

목포·신안과 함께 통합을 적극 추진했던 새정치국민회의 무안군지구당(위원장 배종무 의원)은, 3월 초 통합에 반대했던 서삼석 전남도 의원을 비롯한 당원 12명을 제명 처리했다. 무안지구당의 한 관계자는, 당명에 따르지 않거나 당을 음해하는 당원이 당에 남아 있을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에 대해 ‘무안 신안 목포 네 번째 통합 결사 반대 대책위원회’(위원장 최병상)는 무안지구당 위원장인 배종무 의원을 퇴진시키자며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최병상 대책위원장은 “배종무 의원이 지난 선거 때 주민들이 동의하지 않는 한 목포권과의 통합 논의에 절대 참여하지 않겠다고 공약해 놓고도, 무책임하게 말을 바꾸어 통합에 앞장선 것 자체가 명백한 사퇴 이유다”라고 주장했다.

찬반으로 갈린 두 진영의 불신은 상당하다. 무안 지역에서 통합 운동에 앞장섰던 국민회의의 한 관계자는 “그토록 험악한 분위기는 6·25 이후 처음이다. 통합에 찬성하는 말을 하려고 하면 반대 진영이 몸싸움으로 저지하고, 동등하게 통합 찬성을 홍보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라며, 무안 지역 기득권층과 주민 이기주의를 자극한 막무가내식 반대를 비난했다.

이에 대해 통합반대대책위의 한 관계자는 “통합을 찬성하는 진영이 김대중 대통령 사진을 트럭에 내걸고 통합 찬성을 홍보하고 다니면서, 통합에 반대하는 대책위 사람들을 ‘악의 무리’라고 비난했다. 도대체 자유로운 주민 의견을 묻는 도·농 통합과 김대통령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대책위 관계자는 또 “주민 의견 조사를 며칠 앞두고 3개 시·군 단체장들이 만나 합의했다는 내용의 홍보물에 적힌 김홍일 의원과 권이담 시장의 사인은 위조되었다. 합의된 내용도 여차하면 약속을 지키지 않겠다는 얘기에 불과하다”라며 홍보물을 증거 자료로 제시하기도 했다.

무안반도 통합, 도시가 ‘힘’ 앞세워 실패

이렇듯 갈등과 반목이 계속되고 있는 무안반도 통합 후유증은, 힘의 논리를 앞세운 도시 지역의 일방적인 통합 운동이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분석이다. 특히 무안반도의 경우 주민들의 여론을 무시하고 정치권 등 상층부와 언론이 통합의 당위성만을 강조하며 바람몰이를 하다가, 무안군 지역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통합 운동 과정에서 무안반도 통합의 당위성을 강조했던 김정인 교수(목포대·지역개발학과)는 “여수반도의 통합에 자극된 목포권이 지나친 낙관으로 성급하게 추진한 것이 실패 이유다. 찬반 진영 사이의 불신을 해소하려는 노력들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통합 긍정론에도 불구하고 ‘3려 통합’으로 이 지역이 전남 동부권에서 급성장하는 것에 자극된 전남 서남부 목포권 주민들의 경쟁심과, 무안 지역민들의 지역 이기주의를 설득하지 못한 채 성급히 추진하려던 과욕이 후유증을 낳았다는 지적이다.

호남 지역의 여수반도와 무안반도 통합 운동 사례는 최근 시·군 통합을 추진하고 있는 전주·완주 지역과 청주·청원 지역 등 전국의 통합 운동에 좋은 교훈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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