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 호남의 온천 개발 공방
  • 부산·박병출 주재기자 ()
  • 승인 1996.07.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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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황령산 온천 ‘맹물’ 보도로 (주)라이프 플랜·<부산일보> 격돌…시민 단체 “개발 정책 재고하라”
 
지금 부산에서는 황령산(금련산) 온천 개발을 둘러싸고 논란이 한창이다. 부산진구·남구·연제구 등 부산의 부도심 세 구에 걸쳐 있는 황령산은 울창한 숲과 맑은 물로 유명한데, 이곳에서 94년 3월 온천이 발견되었다. 부산시 도시 계획 사업 체육 시설 시행 업체인 (주)라이프 플랜(대표 신주용·39)이 지하수를 탐사하다가 온천을 발견했다며 남구청에 온천 발견 신고서를 낸 것이다. 지난해에는 체육 시설 지구 4만여 평을 포함한 주변 지역 31만평이 부산시로부터 온천 지구로 지정받았다.

부산 남구청은 이 일대를 2000년부터 2007년까지 연차적으로 개발하기로 했다. 온천 개발 사업자 지정은 내년 7월로 예정되어 있지만, 부지 소유자이자 온천 발견 신고자인 라이프 플랜이 사업자로 지정될 것이 확실해 보인다.

그러던 차에 지방 유력지인 <부산일보>가 온천 개발과 관련한 의혹들을 집중 보도하자, 온천 개발 논란은 법정 싸움으로 변질되는 복잡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라이프 플랜은 지난 3월 부산일보사와 사회부 이병철 기자를 상대로 무려 8백억원을 청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황령산 맹물 온천’등 35회에 걸친 허위 보도로 인해, 정신적·물질적 피해를 보았다는 것이다.

<부산일보>는 지난 2월21일 ‘황령산 온천은 보통 지하수’라는 제목으로 ‘지하 6백26~6백80m에서 뽑아 올린 물이 (수온이) 겨우 27.03℃, 총 고용 물질이 1백21~1백37ppm밖에 안되어 인근 지하수보다 못한 ‘맹물’이며, 동래온천 67.7℃ 7백ppm, 해운대 온천 60.5℃ 4천8백70ppm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라는 내용을 보도한 바 있다.

<부산일보>가 황령산 온천 기사를 처음 내보낸 때는 95년 2월이다. ‘금련산에 온천 발견’이라는 당시 기사는 ‘지하 6백80~7백m 용출 온도 27~28.5℃로 온천법 충족’‘국내 3~4개 온천에서만 볼 수 있는 중조천(Na­HCO3 泉)으로 해운대 동래 지역 온천보다 수질 우수’등으로 되어 있다. 둘 다 한국자원연구소 보고서를 인용하면서도, 1년 사이 완전히 상반되는 논리를 편 셈이다.

라이프 플랜측은 바로 이 점을 ‘악의에 찬 왜곡’의 증거로 제시한다. 이 회사 장 아무개 기획실장은 “2월21일이 설날 연휴 다음날임을 주목해 보라”며 ‘악의’의 발단이 설날과 연관되었다고 암시했다. <부산일보> 측은 그같은 발언이야말로 ‘악의에 찬 모략’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최초 보도 이후 취재 기자가 바뀌었고, 19회에 걸쳐 황령산 개발의 부당성을 보도한 후 문제의 본질에 눈을 돌려 ‘새롭게 찾아낸’ 사실이라는 주장이다.

<부산일보>는 ‘맹물 온천’ 기사에 이어, 부산시가 온천 지구로 지정하기 직전에 라이프 플랜사가 해당 지역 임야를 대규모로 편법 매입했다고 폭로했다. 내막은 더 놀랍다. 수사에 나선 부산 남부경찰서는, 회사측이 현재 체육 시설을 조성하고 있는 4만여 평도 시설 지구로 지정되기 전인 90년에 미리 사 둔 사실을 밝혀냈다.

황령산 일대 1백76만평은 72년 건교부(당시 건설부)에 의해 유원지 지구로 고시되어 있는 상태이다. 따라서 세부 시설지구로 결정되지 않은 지역은 개발이 불가능해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라이프 플랜은 당시로는 아무 쓸모없는 땅덩어리 4만평을 27억원이나 주고 매입했다. 부산시는 4개월 후 이 일대를 체육 시설 지구로 추가 고시했다. 라이프 플랜이 땅을 매입하면 부산시가 따라다니며 시설 지구에 끼워 넣고 온천 지구로 지정해 준 결과가 되었다.

공무원과 결탁한 사실도 드러났다. 남구청의 김 아무개 토지관리과장(52·퇴직), 부산시청 공원과 박 아무개씨(40) 등 4명은 라이프 플랜이 사전 매입한 4만평을 사업 인가하는 과정에서 각종 문서에 ‘운동 시설’을 자치 단체가 시행하는 ‘공원 시설’인 양 허위 기재해 토지 거래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도록 만들어 준 것으로 밝혀졌다. 정 아무개 녹지사업소장(52) 등 3명은 경비를 부담해 이식하는 조건으로 허가된 운동 시설 지구의 수목 2천여 그루를 ‘기증’ 받아, 이식 비용 7천2백만원을 시 예산으로 집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공무원 8명과 회사 대표 신씨를 무더기 입건한 데 이어 지난 6월 25일 라이프 플랜사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 받아 자금 추적 등 전면 수사에 들어갔다.

<부산일보>와 라이프 플랜 간의 온천 싸움이 계속되는 가운데 부산 환경운동연합·부산 경실련 등 시민단체들은 6월21일 ‘황령산 온천 개발 반대 범시민 대책위원회’(공동대표 이종석 외)를 구성하고, 23일 황령산 봉수대에서 ‘부산·광주·충주 온천 개발 반대 시민연대회의’를 개최했다. 해당 지역 환경단체 대표와 시민 등 4백여 참석자들은 국회와 내무부에 온천법 개정을 요구하는 공개 청원서를 채택했다.

보도 활동 관련, 최초로 기자 자택 가압류

황령산 온천 사건은 현재 3차 심리까지 진행됐다. <부산일보> 이병철 기자는, 피소된 후 환경운동연합이 선정한 ‘한국의 환경 파수꾼 50인’에 드는 ‘영예’와 라이프 플랜사에 의해 17평짜리 아파트가 가압류되는 ‘불명예’를 함께 경험했다. ‘언론사상 최고액 소송’ ‘보도 활동 관련 최초로 기자 자택 가압류’ ‘단일 사안 관련 보도 최다 횟수’등 신기록을 양산한 사건답게, 이 사건 공판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환경관련 전문가들은 재판 결과와 상관없이 근본 문제를 부산시의 개발 위주 정책에서 찾고 있다.

부산시는 황령산을 유원지 지구로 지정한 이후 20년 넘게 방치하다 84년 골프연습장·동·식물원·휴양 시설 등 12개 시설 지구를 고시했다. 전망대와 도로, 라이프 플랜이 시행 중인 체육 시설 지구가 추가되어 현재는 시설 지구 면적이 15개소 1천1백60㎢에 달한다. 온천 지구로 지정된 31만평까지 개발되면, 훼손 면적은 더욱 늘어난다. 특히 도로(너비 8~12m, 총연장 16, 24㎞)는 계획 지구가 해발 2백m가 넘고 사유지가 대부분을 차지해 공영 개발이 어렵기 때문에 부산시가 민자를 유치하기 위해 시비로 건설하고 있다. 황령산 온천은 ‘상 차리자 떡 들어오는’격이 된 셈이다. 온천 발견자인 라이프 플랜 대신 남구청이 예산 1억8천만원을 들여 온천 개발 계획을 발주한 점에서도, 부산시의 ‘심중’을 읽을 수 있다.

결국 황령산에서 벌어진 ‘온천 싸움’은 개발 이익과 세수 증대를 노리는 ‘경제 논리’와 여론을 앞세운 언론사의 ‘환경 논리’가 맞붙은 한판으로 요약된다. 시민단체들의 우려는, 이번 일이 ‘한 언론사와 한 기업 간의 문제’로 종결되어 본질이 물타기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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