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운동 도울 민간 지원기금 생겼다
  • 朴晟濬 기자 ()
  • 승인 1995.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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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운동지원기금 창립…배달녹색연합 등 18개 단체 첫 혜택
의정부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려는 목표로 지난해 출범한 ‘의정부 시민광장’(시민광장·회장 이덕근)은 최근 희색이 만면하다. 빠듯한 살림살이 때문에 좋은 계획을 세워 놓고서도 정작 실천에 옮기는 데 필요한 돈이 모자라 애를 먹어온 이 단체에 얼마 전 뜻하지 않은 데에서 지원 자금이 들어오기로 결정됐기 때문이다. 시민광장이 세운 좋은 계획이란 ‘의정부시 주민생활 최저선 확보를 위한 정책 조사 및 발표 토론회’이다. 지원 받는 자금 규모는 이 단체 한달치 살림살이 비용과 맞먹는 1백50만원. 시민광장 이병수 사무국장은 “하마터면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거나 빚을 잔뜩 질 뻔했다”며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의욕은 있지만 재정난으로 정책 실현에 어려움을 겪는 모습은 비단 시민광장에서만 목격되는 일이 아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전 사무총장 서경석 목사는, 잘 나간다는 시민운동 단체에서마저 재정난은 아무리 해결하려고 발버둥쳐도 해결하지 못하는 고질 문제라고 말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시민운동 단체가 입안한 사업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그것이 돈을 내려는 사람의 이해와 직접 연결되지 않는 한, 기부자의 호주머니에서 돈이 나오기를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기업이 자유롭고 떳떳하게 시민운동에 돈을 기부할 수 있게끔 제도적 장치가 정비되지 못한 현실도 재정난을 가중시킨다.

“겉치레 사업에는 돈 못댄다”

하지만 앞으로 시민운동 단체가 돈 때문에 사업 계획을 묵히는 일은 사라질지 모른다. 기업으로부터 돈을 거둬 공정한 심사를 거친 뒤 각종 시민단체에 골고루 나누는 일만 전문으로 하는 민간 기구가 국내 처음으로 출범했기 때문이다. 서영훈(신사회공동선운동연합회장) 김진현(전 과기처장관) 이효재(한국여성단체연합 고문) 김재기(사랑의각막은행장) 씨 등 뜻있는 인사들이 중심이 돼 설립한 사단법인 시민운동지원기금(시민운동기금)이 바로 그것이다. 5월17일 서울 앰배서더호텔에서 정식 발족한 시민운동기금은 ‘재정이 빈약해 사업을 적극 펼치지 못하는 시민단체를 지원해 시민운동을 자율화·활성화하는 데 이바지한다’고 선언했다. 말 그대로 시민운동의 ‘물주’ 노릇을 자임한 셈이다.

시민운동기금이 시민단체를 지원하는 데에는 일정한 기준과 원칙이 엄격하게 지켜진다. 시민단체가 지원해 달라고 신청한 사업이 미래지향적이어야 하고, 시의 적절해야 하며, 파급 효과가 있고, 다른 단체의 사업에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것 등이다. 시민운동기금의 실무를 책임진 이정자씨(우리민족하나운동 회장)는 “겉치레 성격이 엿보이는 사업에는 절대로 돈을 쓰지 않겠다는 것이 제일 원칙이다. 또 조성한 기금이 한 단체에 치우치지 않고 골고루 쓰일 수 있도록 ‘소액 다수 분배 원칙’도 세워 놓았다”고 밝혔다.

시민운동기금은 이미 기업 모금 3억원을 목표로, 제1기 지원 사업의 세부안까지 확정했다. 지난 4월15일부터 5월2일까지 시민·사회 단체가 제출한 사업 40개에 대한 심사 작업을 거쳐 ‘될 성부른’ 사업 18개를 선정해 지원금을 보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의정부 시민광장이 받게 될 1백50만원도 그 중 일부다. 이밖에도 시민운동기금은 배달녹색연합(대표 장 원)의 ‘깃대종 보전 안내서 제작 및 세미나’, 녹색교통운동(대표 김관석)의 ‘자전거타기 시민운동 캠페인’ 등 각 단체의 사업에 적게는 1백50만원에서 많게는 천만원까지 내놓기로 했다.

시민운동가들은 시민운동기금이 출범한 것을 계기로 앞으로 국내 시민운동의 질적 수준이 한 차원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본다. 이제까지 몇몇 시민운동 단체가 정부 지원에 기대다가 자율성을 침해 받아 운동의 취지를 살리지 못해온 현실을 개선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당초 시민운동기금 이사장으로 선출됐다가 최근 교육부장관으로 자리를 옮긴 박영식 전 연세대 총장은 “민주 사회에서 시민운동의 요체는 자율과 자립에 있다. 그런 면에서 시민단체 스스로 돈을 모아 운동 단체를 지원하려는 시민운동기금 발족은 매우 의미 있는 사건이다”라고 자평한다.

시민운동기금은 시민운동을 돕는 ‘큰 손’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이 다짐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삼위일체가 돼야 한다. 시민운동기금측의 헌신적인 노력, 기업측의 적극적인 참여, 시민운동 단체의 성실한 운동 자세가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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