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척 사업에 망가지는 연안 어업
  • 제주·경기 화성/成耆英 기자 ()
  • 승인 1997.1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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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분별한 간척·남획으로 해산물 고갈…정부 투자·기술 지원 절실
몇년 전 이맘때면 그 개펄에는 발디딜 틈도 없이 많은 아낙들이 몰려나왔다. 그러나 경기도 화성군 송교리 화성·옹진 지구(일명 화옹지구)를 간척지로 만드는 물막이 방조제 공사(총연장 9.8㎞)가 5㎞ 가량 진행된 지금, 그 개펄에는 죽어버린 조개며 바지락만 그득하다.

8m가 넘는 간만의 차 덕분에 이곳은 방조제 공사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서해안에서 가장 뛰어난 패류 생산지였다. 그러나 지금은 굴 양식을 위해 바다 속에 던져 넣은 머리통만한 돌들에 붙어 있는 굴 가운데 살아 있는 굴은 찾아보기 힘들다. 평소에는 바닷물에 잠겨 있다가 물이 빠지고 나면 모습을 드러내, 개펄 작업을 나가는 사람들과 생산물을 실어 나르던 바닷속 진입로는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이곳에서 1㎞ 정도 떨어진 곳의 김 양식장도 쓸모가 없어지기는 마찬가지이다.

이곳에 방조제 공사가 시작된 것은 93년. 트럭들이 돌과 흙을 실어 나르면서 매년 전국 수산물 증산왕을 내다시피 했던 이곳의 개펄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바닷물의 흐름이 가파르게 바뀌면서 깎여 나간 곳은 깎여 나간 대로, 새로 쌓인 곳은 쌓인 대로 조개나 굴 같은 패류를 품어 주지 못했다. 이같은 ‘몰락’은 겨우 3년 남짓 동안에 일어났다.

현재 대규모 간척 사업이 벌어지고 있는 곳은 화옹지구 외에도 많다. 80년대 중반부터 시작한 시화지구 간척지 조성 사업은 방조제를 쌓으면서 형성된 시화호 물이 ‘썩은 물’로 변하면서 이미 골칫덩어리로 낙인 찍혔다. 정부로서도 어찌할 도리 없이 시화호 안에 괸 오수를 때때로 흘려보낼 따름이다.

군산 앞바다를 막아 약 4만ha의 농지를 조성하겠다는 새만금 간척 사업도 벌써부터 연안 어장 파괴를 우려하는 목소리에 부딪혀 있다.

먹이 사슬 파괴되고 날씨도 ‘파괴’

박종수 교수(군산대·해양생물학과)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라북도에서 생산하는 수산물의 양은 95년 이후 40%가 줄어들었다. 경기·인천 지역을 대상으로 한 같은 조사에서보다는 적은 수치이지만, 수확량 감소는 대규모 간척 사업의 영향에 따른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개펄에서 생산되는 가무락·맛·동죽 등 맛있고 비싸게 팔리는 조개류의 씨가 마른 것은 물론이고, 꽃새우·대하·꽃게 따위 갑각류도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개펄의 패류가 줄어들면서 먹이사슬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화성군 서신면에서 30년 가까이 수산업에 종사해온 최효수씨는, 개펄이 죽어가면서 연안 어업 전체가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최근 들어 누구보다 절감하고 있다. 예전에는 썰물 때 4∼5시간 작업해 바지락 60㎏ 정도 따는 것이 식은 죽 먹기였는데, 방조제가 들어서기 시작한 뒤부터는 아예 개펄에는 나와 보지도 않기 때문이다. 색깔이 변하거나 까맣게 죽어 버린 조개무덤을 바라보아야 하는 일은 여간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다.

최씨는 “이 마을 1백30여 가구 중 농업과 어업을 함께 해온 80가구 정도를 빼고 나머지 50여 가구는 개펄이 망가지면서 날품팔이를 나간다. 개펄 덕분에 자녀들을 도시에서 공부시킬 수 있었던 시절은 이미 끝났다”라며 한숨을 몰아쉬었다.

화옹지구 대규모 매립의 영향은 먹이사슬 붕괴에만 그치지 않는다. 간척 사업이 간척지 인근 대도시의 기후마저 바꾸어 놓았다는 주장도 있다.

건국대 지리학과 이현영·이승호 교수가 95년부터 2년간 시화지구와 서산 간척지가 있는 천수만 A·B지구, 새만금지구 등 서해안 간척지 인근 도시인 수원·군산·서산 등의 기후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수원은 70년대에 연평균 기온이 11℃를 유지하다가 시화지구 간척 사업이 시작된 87년 이후 꾸준히 올라 96년에는 12℃로 상승했다. 새만금지구를 끼고 있는 군산도 80년대 중반 연평균 강설 일수가 50일이었는데, 지난해에는 40일로 줄어들었다. 물론 이러한 기후 변화가 전적으로 바다를 매립한 탓이라고 단언하기는 힘들다. 대도시에 들어선 공장이나 주택 단지에서 뿜어내는 대기 오염 물질의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규모 간척 사업으로 인해 개펄 생물이 멸종해 가기 전부터 이미 연안 어업의 기반은 흔들리고 있었다. 94년 유엔 해양법협약이 발효하면서 세계 각국이 ‘바다 전쟁’ 태세를 갖추어 동북아 지역에도 머지 않아 배타적 경제 수역이 획정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들어 일본은 한·일 어업협정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려고, 자국 근해에서 조업하는 한국 어선을 잇달아 나포하는 등 ‘시위’를 하고 있다.

‘총어획량 관리제’ 실시 시급하다

남해에서 중국 어선의 조업을 실질적으로 막지 못하는 것도 연안 어업을 위축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정부는 해경과 해양수산부가 함께 단속을 펼치고 있다고 말하지만, 제주도 최남단인 남제주군 안덕면 사계리 어촌계장 송 만 씨는 “최근에도 해상에서 중국 어선과 충돌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라고 전했다.

이래저래 수산업은 걷잡을 수 없이 빈사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소비자들의 입맛이 고급화하면서 생선회를 비롯해 수산물 전반에 대한 수요가 점점 늘어가는 것과는 정반대 현상이다. 국민 1인당 연간 수산물 소비량이 70년 17㎏에서 90년 36㎏, 95년 46㎏으로 계속 늘어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결국 밀려드는 외국 수산물에 시장을 내줄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마저 고조되고 있다. 지난 7월 외국 수산물 수입이 개방되었기 때문에 머지 않아 개방의 여파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게다가 어업 가구 수와 어업 인구도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32쪽 도표 참조)

그런데도 수산업은 여전히 ‘서자’ 취급을 받고 있다. 96년 정부 총예산 67조원 중 농업 부문 예산은 약 13.5%에 달했지만, 수산업 부문 예산은 단 1%였다.

대규모 간척 사업으로 인한 개펄 파괴, 무분별한 어획 등으로 인한 어족 자원 멸실은 결국 연안 어장 축소를 불러온다. 그러나 어장 축소에 대한 보전 대책은 아직 별로 없어 보인다. 농지를 전용(轉用)할 때 ㎡당 적게는 3천6백원에서 많게는 1만2천원까지 대체 농지 조성비를 부담시키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자원은 줄어드는 반면 수요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당국이 효율적으로 어획량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도 수산업의 장래를 어둡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손가락만한 치어까지 마구잡이로 ‘싹쓸이’ 해 버린다면 어족 자원은 급격히 감소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온 것이 총어획량 관리제(TAC : Total Allowable Catch)이다. 어획 방법이나 어획 기간을 규제하는 것만으로는 어족 자원 보호 효과가 미흡하다고 판단해 갈치·고등어·오징어·명태 등 대표 어종 12개에 한해 시범 실시한다는 구상이다. 이는 어장 보호를 위한 간접 관리 방식을 직접 관리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므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전국의 모든 수역에서 총어획량 관리제를 실시할 경우 어민들의 반발이 예상되고, 일본·중국 등 인접국과의 수역 확정 문제와도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올해부터 이 제도를 시행할 방침을 세웠으나 아직까지 실시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도 사정은 마찬가지. 해양수산부 박재영 어업진흥국장은 “총어획량 관리제는 불가피하게 한·일 어업협정과 연계되어 있다. 따라서 일본이 실시하는 것을 보고 나서 신중하게 결정할 문제다”라고 말했다.

결국 무분별한 조업 행위를 얼마나 적절히 통제하고 이를 위해 어선 숫자를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에 수산업이 회생할 가능성이 달려 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김정봉 연구위원은 지난 7월 ‘21세기 해양수산 비전 공청회’에서 “자원 남획이나 어획 강도가 지나치게 높고 경영 상태가 부실한 업종을 우선 감축하고, 대량의 치어가 함께 잡히는 어종도 과감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 또 선령 16년이 넘은 노후 어선을 경제성 어선으로 대체하고 기관과 장비를 대체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의 의지가 중요하다. 관건은 기술 지원과 투자 자금이다. 옥돔을 제주도의 상징으로 상품화하는 데 성공해 전국에서 가장 모범적인 수산단지로 손꼽히는 수협 제주도지회 양영웅 지회장의 말을 들어보자. “외국 수산물이 몰려오기 시작하면 국산품의 품질을 고급화해 시장을 지키는 수밖에 없다. 관건은 선도를 유지하기 위한 저온 시설인데, 이는 어민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내륙으로 물을 끌어들여 광어를 기르는 양식도 어촌 소득을 올리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양식은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므로 정부의 획기적인 지원 없이는 발전할 수 없다.”

면적당 생산력, 바다가 육지보다 훨씬 높아

어민들의 이해를 일선에서 대변하는 수산업협동조합을 중심으로 수산업발전기금을 조성하자는 안은 그래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수협중앙회는 지난 9월 해양수산부에 수산업발전기금 설치를 건의했다. 공유 수면 매립을 허가할 때 수수료를 받는다거나, 각종 해양 개발 이익금과 정부 출연금 등을 기초로, 약 3조원 규모로 기금을 조성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수산업 관계자들의 이런 구상이 실현될지는 매우 불투명하다. 우선 70종이 넘는 각종 기금을 운용하느라 골머리를 썩고 있는 정부가 또 하나의 기금을 설치하는 일에 찬성할 가능성이 낮다. 돈줄을 틀어쥐고 있는 재정경제원은 그동안 정부 차원의 기금을 새로 설치하는 문제에는 예외 없이 난색을 보여왔다.

해양수산부의 한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수산업발전기금 조성을 추진한다는 방침은 섰지만 기금 신설에 대한 재경원의 반대 입장이 완고해 성사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해양수산부 박재영 어업진흥국장은 “면적당 생산력은 바다가 육지보다 훨씬 높다. 개펄이 환경 오염을 자체 정화하는 것까지 감안하면 그 생산성은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바다의 생산력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에서부터 수산업 진흥의 열쇠를 찾아야 한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전제가 흔들리면 세계 10위 수산물 생산국이라는 한국의 지위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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