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국책 사업은 이권 사업인가
  • 朴晟濬 기자 ()
  • 승인 1995.1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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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책 대학원 선정 1차 심사 결과 석연찮아…첨단 분야 제외, 대학들 거세게 반발
올해 들어 교육부가 고등 교육 분야 국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사업이 있다. 국책 대학원 선정 사업, 정확히는 대학원 중점 육성 사업이 바로 그것이다. 이 사업의 주요 골자는, 국가가 장래성 있는 이공계 대학원을 집중 지원해 세계적 수준의 학문 기관으로 키운다는 것이다.

세부 계획을 살펴보면 95년 한 해에만 지원 단위(분야) 별로 2~4개 대학원을 선정해 2백억원을 집중 투자하고, 해마다 그 수를 늘려 오는 2000년부터는 최대 10개 대학에 지원금을 내겠다는 내용이다.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대학은 적어도 5년 이상 교육부로부터 최소 50억원에 이르는 지원금을 받는다.

그런데 이 사업을 둘러싸고 이권 사업 선정 과정에서나 나옴직한 ‘잡음’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 예정대로라면 올해 9월 말 이미 끝났어야 할 선정 작업이 12월 들어서도 끝나지 않은 채 진통을 거듭하고 있다. 로비에 의해 발표가 늦어진다는 ‘외부 압력설’까지 나돈다. 예심 성격이 짙은 1차 서류 심사에서는 이 사업을 위해 특별히 구성된 심사평가위원회가 뚜렷한 이유도 없이 특정 지원 단위(분야)를 빼버려 몇몇 대학이 낭패를 보는 일이 벌어졌다. 의욕과 능력을 두루 갖추고 계획서를 냈다가 탈락한 대학들은 교육부에 ‘갈라먹기 식의 선정 작업이 이뤄지는 것 아니냐’ 하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분노를 삭이지 못한 대학의 맨 앞줄에는 포항공대가 있다. 교육부가‘대학원 중점 지원 사업’의 개요와 신청 요령 따위를 소개한 안내 공문을 포항공대에 보냈을 때만 해도 학교측은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공문에는 선정 원칙과 기준으로‘국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교육·연구 시설을 확충하고 운영 체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대학’으로서 대학원 중심 대학을 지향하는 대학이면 어디든 신청할 수 있다고 밝혀져 있다. 지원 자격이나 분야를 제한하는 특별한 조건은 없다는 것이다. 정보·전자 쪽을 지원 신청 분야로 결정한 포항공대측은 5백 쪽이 넘는 방대한 계획서를 만들어 교육부에 보냈다.

“정치권 로비 가능성 있다”

이 대학 전자공학과는 92년 교육부가 실시한 학과 평가에서 전국에서 유일하게 학부·대학원 부문 모두‘최우수’ 평가를 받은 바 있다. 또 학교측은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이 미래의 핵심 기술 열 가지를 선정하면서 그 속에 음성인식 컴퓨터·광전자공학 등 정보·전자 관련 분야 기술 다섯 가지를 넣은 사실도 들었다.

교육부에 대한 기대가 분노와 허탈감으로 바뀐 것은 지난 11월 초이다.정보·전자 분야가 심사 대상에 포함되었더라면 43개 지원 신청 대학 가운데 유력한 선정 후보로 떠올랐을 포항공대가 서울대 공대를 비롯해 이 분야에 계획서를 낸 다른 대학과 더불어 본선에도 오르지 못한 채 탈락했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다. 11월9일 포항공대의 관련 교수들은 공개질의서를 작성해 교육부장관 앞으로 보냈다. ‘정보·전자 분야의 중요성은 삼척동자가 다 알 정도로 널리 알려진 사실인데, 문자 그대로 심혈를 기울여 작성한 계획서들을 한번 들춰보지도 않고 탈락시킨 이유는 무엇인가’고 따지는 내용이었다.

계획서 작업을 총괄한 이 대학 전자전기공학과 권오대 교수는 “예선도 거치지 못하게 이 분야를 원천 배제한 데에는 다른 요인이 작용했음이 틀림없다. 일부에서는 벌써부터 교육부가 특정 대학을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게 하려고 교묘한 수를 썼다는 소문까지 있다”라고 말한다. 지원 신청을 안내할 당시에는 아예 들어 있지도 않았던 특정 분야 배제 원칙이 등장한 데에는 정치권과 일부 대학측의 로비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였다. 민홍식 교수(서울대·전자공학)도 “국책 대학원 사업이 원래 취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며 이같은 시각에 동조한다.

교육부측은‘국책 대학원 선정 사업은 올해 안으로 분명히 마무리된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별다른 해명을 하지 않고 있다.‘10개 지원 단위로 실사가 이뤄졌다는 것 외에는 구체적인 내용을 절대 얘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는 사이 항간에서는‘이미 4~5개 지원 단위가 선정돼 발표만 기다리고 있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다. 모처럼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교육부의 ‘국책 사업’이 뚜껑도 열기 전에 의혹투성이‘이권 사업’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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