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 불안, 주범은 취업난”
  • 차형석 기자 (papapipi@sisapress.com)
  • 승인 2004.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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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에서 가장 높게 지목…경기 불황 등 경제 요인이 다수 차지
‘하나의 유령이 한국을 배회하고 있다. 실업이라는 유령이.’ 최근 출간된 김만수 박사(사회학)의 <실업사회>는 마르크스의 명구를 패러디하며 시작한다. 그가 보기에 한국은 산업 사회이자, 실업 사회이다.

김만수 박사는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가 급격하게 실업사회화하고 있다고 규정한다. 그에 따르면, 실업 사회는 고용 불안이 만연한 사회로 실업이 ‘직업’으로 자리 잡는 사회이다. 그는 취업난의 근본 원인을 자본의 구성 비율 변화에서 찾는다. 그는 “산업 별로 한국의 총자본과 가변자본 비율을 분석해보면, 가변자본 비율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알 수 있다. 임금으로 쓰이는 가변자본 비율이 계속 하락한다는 것은 실업이 불가피하게 창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말했다.

최근 발표된 한 심리학 연구는 실업사회화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불안을 잘 보여준다. 지난 5월24일 연세대 인간행동연구소의 실태 조사 ‘한국 사회 얼마나 불안한가’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서 불안을 야기하는 주범은 ‘취업난’이었다.
5월3일부터 12일까지 전국의 1천2백1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취업난(8.44)이 가장 심각한 사회 불안 요인으로 드러났다(0:전혀 불안하지 않다. 10:매우 불안하다). 취업난 다음으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불안정한 고용(7.60), 경기 침체·내수 부진 등 경기 불황(7.56), 불법적인 개인 정보 유출과 이로 인한 범죄 증가(7.20), 빈부 격차 및 빈곤층 증가(7.12) 등 대부분 경제 이슈였다. 이처럼 이번 설문 조사 결과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취업난·고용·경기 불황 등 경제 때문에 우리 사회가 불안하다는 응답이 많았다는 점이다.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 사람들은 한국 사회에 대해 대체로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평균 6.88). 특히 사회가 매우 불안하다(8점 이상)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27.6%에 이른다. 여자들의 불안 수준이 남자들의 불안 수준보다 약간 높게 나왔다.

응답자들은 경제 문제가 한국 사회를 가장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일 뿐만 아니라 발생 가능성도 매우 높다고 인식했다. 응답자들은 한국 사회가 취업난·빈부 격차 등을 해결하거나 통제할 가능성을 각각 38.15%, 33.66%로 낮게 평가했다. 국민들이 취업난에 대한 통제 가능성을 낮게 평가하는 것은 취업난으로 인한 사회 불안 수준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조사를 진행한 홍영오 박사는 이번 조사의 또 다른 특이점으로 개인 정보 유출로 인한 불안감이 상당히 높게 나왔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는 “실제 학교 수업을 하면서 답안지에 e메일 주소를 기입하라고 해도 잘 써놓지 않아 정보 유출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는 것을 느끼긴 했지만 이렇게 높게 나타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한국 사회가 다른 사회에 비해 정보화가 급속하게 진행되어 편리를 누리면서도 ‘디스토피아적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번 조사에서 연령별 사회 불안 수준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반면 사회 경제적 지위에 따라 느끼는 불안 수준은 상당한 차이를 보여 흥미롭다. 자신이 경제적으로 상류층에 해당한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불안 수준이 낮은(6.13) 반면, 경제적으로 하류층이라고 대답한 사람들의 불안 수준은 높게 나타났다(7.17). 특히 하류층은 불안 수준이 높을 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사회 개혁이 성공할 가능성도 낮게 보고 있었다.

응답자들은 우리 사회가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로 경제 불안(42.7%)을 꼽았다. 그 다음 개인적으로 불안한 미래(14.4%)를 꼽았고, 13.0%는 정치 불안을 꼽았다. 연구팀에 따르면, 경제 불안을 해소해야 한다는 응답에는 성별·학력별·계층별 차이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전쟁 위협을 해소하는 것을 시급한 과제라고 대답한 사람은 2%에 불과했다. 연구팀은 김대중 정부 이후 남북 관계가 진전함으로써 남북한의 전쟁 가능성을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만수 박사는 이번 사회 심리 조사 결과에서 한국 사회의 모순된 의식이 드러난다고 지적한다. 한국 사회에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이유를 기회 불균등(30%)과 배경·인맥 부족(20%)에서 찾으면서도 그 해결책으로 ‘실력을 쌓아야 한다’(46%)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김박사는 “80 대 20 사회는 앞으로 확대될 것이다. 실업 문제에 직면한 개인이 80에서 20으로만 가려고 노력할 것이 아니라 80들의 사회적 연대를 통한 해결을 고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연구책임자인 송관재 박사(사회심리학)에 따르면, 불안에는 건강한 불안과 불건강한 불안이 있다. 건강한 불안은 사람들로 하여금 앞으로 닥쳐올 위협에 대비하게 하고, 개인으로 하여금 더욱 노력하도록 동기화하는 불안이다. 불건강한 불안은 수면 장애나 강박적 사고를 가져오거나 사회적 상황을 회피하게 만드는 불안을 말한다. 송박사는 “미국의 경우 조직 변화를 위해 일부러 불안감을 퍼뜨리는 회사도 있다. 이런 건강한 불안과 달리 취업난으로 야기된 사회적 불안은 해결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불건강한 불안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최근 정부와 재계는 일자리를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번 조사는 고용 상황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뿌리 깊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문제는 국민 대다수가 전쟁이나 안전 사고보다 경제 불안과 정치 불안을 더욱 시급하게 개선해야 할 문제라고 보는 반면, 정치 개혁과 경제 개혁의 성공 가능성을 매우 낮게 보고 있다는 점이다. 연구팀은 한국 사회의 불안을 건강한 불안으로 만들려면 우선 정부가 중단 없는 개혁으로 신뢰감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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