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원의 원장 사퇴 반려 운동
  • 朴晟濬 기자 ()
  • 승인 1995.06.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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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철 원장 ‘공금유용’ 보도 후 전격 사퇴…노조 등 ‘원장 복귀·명예 회복’ 청원운동
‘한국 과학·기술의 본산’인 대덕연구단지 한쪽 귀퉁이가 소란해지고 있다. 대전시 유성구 구성동에 자리잡은 국내의 대표적 과학·기술 연구 및 교육 기관인 한국과학기술원이 최근 개원 이래 최대의 수치스러운 파문에 휘말린 것이다.

발단은 영수증 처리 안된 천만원

71년 이공계 교육·연구 중심의 특수 대학으로 출발한 한국과학기술원은 지금까지 박사 2천2백명, 석사 8천7백여 명, 학사 2천6백여 명을 배출하는 등 국내 과학·기술 분야의 고급 두뇌를 양산하는 중추 기관 구실을 해 왔다. 파문이 ‘수치스러운’ 까닭은, 이 기관을 대표하는 현직 원장이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고 자리를 물러났기 때문이다. 파문이 `개원 이래 ‘최대’인 까닭은, 이 기관이 다가올 21세기에도 과거 또는 현재의 영광스런 신화를 재현할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그대로 주저앉고 말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원장을 중심으로 나름대로 의욕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시점에서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파문은 기관 운영을 총책임진 심상철 원장을 전격 사퇴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한 언론사의 한국과학기술원 관련 보도에서 비롯했다. 5월26일자 〈ㅈ일보〉 지방판 사회면에는 ‘과기원장, 공금 수천만원 유용’이라는 제목의 특종성 기사가 실렸다. 기사의 주요 내용은, 한국과학기술원 심상철 원장이 이 기관의 운영 자금으로 비자금을 수천만원 조성해 관·업계 로비 자금으로 사용한 사실이 감사원의 특별감사 결과 밝혀졌다는 것이다. 감사원의 한 고위 관계자 설명을 인용해 이같은 사실을 보도한 이 기사는‘감사원은 내달 중순까지 비자금 전체 규모를 밝히는 실무 작업을 마치고 전체 감사위원회를 열어 파면·해임 등 심원장에 대한 징계 처분을 결정한 뒤 사법 당국에 고발할 방침’이라며 감사원의 사건 처리 계획까지 상세하게 소개했다.

첫 보도가 나간 다음 날인 5월27일, 이번에는 다른 언론사들이 취재·보도 경쟁에 나섬으로써 파문은 더 크게 번지기 시작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또 다른 〈ㅈ일보〉 기사. 〈ㅈ일보〉는 앞서의 〈ㅈ일보〉 기사를 받아 사건을 보도한 뒤 ‘심원장이 2010년까지 1조원 규모의 한국과학기술원 발전기금을 모으는 과정에서, 공무원과 기업 관계자들에게 로비 자금을 뿌린 의혹을 사고 있다’며 공금 유용 사건이 발생하게 된 배경 설명까지 덧붙였다. 물론 이번에도 공금 유용 부분에 대한 취재원은 감사원 고위 관계자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원장 계좌를 추적한 결과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이 확인됐다’는 식으로 이른바 비자금 부분에 대한 감사원의 추적 경로를 앞서의 기사보다 더 구체적으로 밝힌 것이다.

공금 유용의 원인을 제공한 `‘발전기금’은 한국과학기술원이 오는 2010년까지 세계 10위권내 이공계 대학으로 발전한다는 ‘톱10 계획’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모으기 시작한 돈이다. 한국과학기술원은 과거에 비해 △조직 규모가 확대됐고 △조직내 각 부문 목표가 다원화됐으며 △다른 연구 중심 대학이나 전문 연구기관의 수준이 향상됐고 △기관에 대한 국가의 요구 사항도 변화했다는 자체 판단에 따라 이같은 계획을 세웠다. 한국과학기술원이 조성키로 한 발전기금 총액은 1조원으로, 본격적인 모금 운동은 문제가 된 심원장 체제가 들어선 이후 시작됐다. 결국 기사대로라면, 심원장이 엄청난 규모의 발전기금을 조성하기 위해 욕심을 부린 나머지 `‘비정상적이고 불법적인’ 모금 수단을 동원했다는 얘기다.

연일 이어진 언론 보도로 파장은 더욱 커졌다. 특히 `‘공금 유용’의 주인공이 된 심원장이 자진해 사표를 제출하면서 분위기는 절정에 올랐다. 심원장의 사표 제출은, 심원장 스스로 공금을 유용한(또는 불법적으로 로비를 벌인) 잘못을 순순히 시인하는 뜻으로 비쳐 충격을 주었다. 심원장은 지난해 3월 한국과학기술원 사상 처음으로 교수들이 직접 선출한 이른바 `‘직선제 원장’이다. 5월26일, 즉 공금 유용 혐의가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로 그 날, 심원장은“본의 아니게 원의 명예를 실추시킨 데 대해 도의적 책임을 통감한다”는 말을 남기고 감독 관청인 과학기술처에 사표를 제출했다.

하지만 이같은 내용이 세상에 알려짐과 거의 동시에, 한국과학기술원 안팎에서 ‘`언론의 보도 내용이 사실과 크게 다르다’는 정반대 주장이 제기되면서부터 사태는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언론이 말하는 비자금이란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며, 공금을 유용해 로비를 벌였다는 말도 터무니없이 과장된 표현이라는 것이다. 문제가 된 돈 3천만원은 심원장이 발전기금을 모금하는 과정에서 기부금을 낸 기업체에 사례비로 지급한 것으로 밝혀졌다. 물론 화근이 된 부분은 그 중 일부인 천만원 가량에 대해 영수증 처리가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같은 내용이 세상에 알려짐과 거의 동시에, 한국과학기술원 안팎에서 ‘`언론의 보도 내용이 사실과 크게 다르다’는 정반대 주장이 제기되면서부터 사태는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언론이 말하는 비자금이란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며, 공금을 유용해 로비를 벌였다는 말도 터무니없이 과장된 표현이라는 것이다. 문제가 된 돈 3천만원은 심원장이 발전기금을 모금하는 과정에서 기부금을 낸 기업체에 사례비로 지급한 것으로 밝혀졌다. 물론 화근이 된 부분은 그 중 일부인 천만원 가량에 대해 영수증 처리가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비교적 조심스러운 이의 제기는, 사건이 터지던 날 원장 자신의 입을 통해서도 나왔다. 과학기술처장관에게 사표를 제출하고 돌아온 직후 심원장은 출입 기자들과의 간담회를 갖고 “기관 운영 자금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영수증 처리를 하지 않고 지출한 돈이 있었다”며 `‘공금 유용’이라고 보도된 일부 기사 내용을 바로잡았다. 그는 또 “영수증 처리가 안된 기관 운영 자금 3천만원과 학교 직원 한 사람이 개인적으로 지출한 2백만원 등 총 3천2백만원을 최근 개인적으로 변제했다”는 해명도 덧붙였다. 신중한 표현이기는 했지만 전체로 보면 공금 유용 혐의를 부인하는 내용이었다.

“심원장 체제에 불만 가진 측이 꾸민 것”

이보다 훨씬 강도 높은 이의 제기는 이른바 ‘과기원 식구들’이 한목소리로 심원장 사퇴의 부당함을 호소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이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이 한국과학기술원의 노조·원생회·총학생회를 중심으로 구성된 `‘심상철 원장의 사표 반려와 과기원 명예 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의 반박이다. 심원장 사퇴 소식이 알려짐과 동시에 구성된 공대위는 5월29일 긴급 모임을 갖고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 내용은 사실을 과장 보도한 언론의 보도 태도를 비판하고 심원장의 사표를 반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공대위는 “업무 추진 과정에서 발생한 단순한 실수를 마치 비자금을 조성해 관계 기관과 유착한 것으로 보도한 언론의 태도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과기원 식구들’이 심원장의 결백과 기관의 명예 회복을 주장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심원장 체제에 불만을 가진 내부 구성원 중 누군가가 ‘악의에 찬 투서’를 관계 기관에 보내 특별감사의 원인을 제공하고 사태를 악화시켰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국과학기술원은 지난해 심원장 체제가 출범하면서부터 교수진과 행정직 간에 갈등을 빚어온 것으로 알려진다. 새로 취임한 심원장이 전통적으로 행정직 출신을 임명해온 행정처장 자리에 관례를 깨고 현직 교수를 임명했기 때문이다. 한국과학기술원 내부의 일반적 견해는, 감사원 특별감사를 유발한 투서가 심원장 취임 후 인사 때 불이익을 당한 쪽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물론 감사원측은 특별감사가 투서에 의존하는 바람에 처음부터 방향이 잘못됐다는 주장을 일축한다. 애초에 투서라는 것은 없었으며, 감사 방향이 잘못된 것처럼 알려지게 된 것도 언론의 과장 보도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감사원 5국 4과 이인환 과장은 “항간에 특별감사의 발단이 익명의 투서라는 소문이 있는데 근거 없는 추측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심원장의 징계 처분 요청을 결정한 뒤 사법 당국에 고발할 방침이라는 언론 보도도 사실과 거리가 멀다. 감사는 아직 진행중이며, 심원장에 대한 사법 처리 여부는 감사가 끝나면 자연히 결정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한국과학기술원은 6월5일 임시 이사회를 열고 윤덕용 교수(재료공학과)를 새 원장에 선임했다. 한편 한국과학기술원에서는 교수·학생·직원 모두가 연구·실험·지원 업무에 매달렸던 일손을 놓고 심원장의 결백을 주장하는, 개원 이래 보기 드문 운동을 벌이고 있다. 원대한 의욕을 가지고 기관의 도약을 위한 정지작업을 벌이다가 본의 아니게 저지른 원장의 행정상 실수를 바깥 세상이 증폭시켜 나가면서 연구기관으로서의 공신력과 도덕성 자체를 뒤흔드는 결과를 빚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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