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공 분야 가르치는 전문대 교수 140명
  • 朴晟濬 기자 ()
  • 승인 1995.10.05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문대 교수 1백40여 명, 전공·강의 불일치…산업체 1년 이상 근무자 34.5%뿐
흔히 잘 쓰는 4자 성어 가운데 명실상부(名實相付)라는 말이 있다. 이름과 그 이름이 규정하는 내용이 같다는 뜻이다. 교육법 제128조 2항에 따르면, 전문대는 ‘사회 각 분야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과 이론을 교수·연구하고 재능을 연마하여 국가 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중견 직업인을 양성함을 목적으로’한다. 전문대 설립 목적을 규정한 이 조항은 명실을 따질 때 전문대의 ‘명’에 해당한다.

실업고등전문학교에서 전문학교로(70년), 다시 전문 대학으로(79년) 명칭이 바뀌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전문대는 교육법에 규정된 명에 걸맞는 내용, 즉 ‘실’을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눈에 띄는 성과도 있다. 최근 몇년간 4년제 대학 졸업생들이 극심하게 취업난을 겪는 모습과 대조적으로 전문대 졸업생들은 해마다 높은 취업률을 기록해 왔다. 95년 7월1일 현재 전문대 졸업생 취업률은 84.6%이다.

허점투성이 중견 직업인 양성

하지만 명실이 진짜 일치하는지는 의문이다. 최근 국회에서 나온 전문대 교육의 난맥상을 보여주는 조사 자료는, 그러한 의문에 상당한 근거가 있음을 보여준다. 국회 교육위 홍기훈 의원(민주)은 최근 국정감사용으로 〈산업발전과 전문대학>이라는 정책 보고서 형식의 단행본을 펴냈다. 교육여건·재정·교과과정 등 전문대 교육 전반의 문제점을 짚은 이 책자에 따르면, 현행 전문대 교육 실상은 교육법상 규정된 전문대 교육 목표를 달성하기에 크게 미흡하다.

홍의원 책에서 눈에 띄는 부문은 전문대 교수들의 자질·능력에 대해 조사한 대목이다. 전문대 교수 요원 가운데 꽤 많은 수가 전공과 무관한 과목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다. 홍의원이 교육부 관련 부서의 도움을 받아 전국 1백45개 전문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공과 실제 강의 과목이 ‘현저하게’ 다른 교수 수는 1백40여 명에 이른다.

전문대 교수들의 전공·강의 불일치 실태가 전문대 전체를 대상으로 비교적 소상하게 조사·보고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예컨대 경남전문대 이 아무개 교수는 대학에서 일반사회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사회학으로 석사 학위를 땄지만 실제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과목은 응용 미술이나 실용 공학에 가까운 제품디자인 과목이다. 김천전문대 방사선과 박 아무개 교수는 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보건행정학 분야 석사 학위를 갖고 있지만 실제로는 방사선 촬영을 강의하고 있다.

이밖에도 이번 조사에서 전공·강의 불일치 사례는 전문대에 개설된 모든 학과에 골고루 나타났다. 전공 불일치를 극히 일부 학과에 국한된 예외적인 것으로 치부하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현상이다. 심지어 교육학과 교육행정을 전공한 사람이 치과방사선 실습을 맡아 가르치는 사례도 있다. 동남보건전문대의 황 아무개 교수가 대표적이다. 황교수의 대학 시절 전공은 교육학이고 대학원에서는 교육행정을 전공해 석사학위를 땄다. 조사 실무를 맡은 홍기훈 의원실 전병선 비서관은 “전공·강의 불일치 현상은 문서상 나타난 것보다 훨씬 심각할 가능성이 높다. 대개 한 교수가 여러 과목을 맡고 있는데, 이번 조사는 그 중 담당 교수의 대표 과목으로 교육부에 보고된 것만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전문대 교수를 임용할 때 매우 중시되는 자격 가운데 하나인 ‘현장 경험’을 살펴보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교육법상 강제 규정은 아니지만 전문대가 교수를 뽑을 때 1차로 고려하는 심사 분야가 대상자의 현장 경험이다. 93년 3월 기준으로 전문대에 재직 중인 교수 요원 수는 모두 7천4백4명이다. 이 가운데 ‘1년 이상’ 산업 현장 경력이 있는 교수는 모두 2천5백61명으로 전체의 34.5%에 지나지 않는다.

전문대에서 산업체 경력이 특별히 중시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전문대의 존립 이유 자체가 산업·기술 분야에 당장 활용할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다. 전문대가 일반 대학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수 학과를 많이 개설해 가르치는 까닭도 바로 이 때문이다. 판매관리과·세무회계과·관광통역과 등은 4년제 대학에서는 찾아볼 수 없지만 전문대에서는 오히려 보편화한 학과들이다. 이론보다는 실무 능력이 뛰어난 고급 인력 양성에 딱 알맞는 학과들인 것이다.
최근 몇년 사이에 전문대에 새로 개설됐거나 개설을 추진하고 있는 학과목을 살펴보면 명실을 일치시키려는 학교 당국의 노력이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경북 칠곡군 동국전문대에는 전통발효식품과·문화환경관리학과·약용식품과·포장과·장신구디자인과·향장공업학과 등이 있다. 대전시의 충남전문대는 92학년에 노사조정과를 신설해 지난해 첫 졸업생을 배출했다. 경북실업전문대에는 부동산 실무를 가르치는 지적과 외에도 호텔조리과·자동차학과 등 이색 학과를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문제는 홍의원의 실태 조사 결과가 교육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기울이고 있는 학교 당국의 노력과 상반되는 의미를 전달해 준다는 사실이다. 홍기훈 의원은 국정감사 질의문을 통해 “교수 요원의 현장 근무 경험은 전문대가 교수 채용 때 필수로 참고해야 할 사항이다. 그런데도 현직 전문대 교수 가운데 현장 경험 1년 이상인 사람이 34.5%밖에 안된다는 사실은 전문대 교육이 얼마나 파행으로 이뤄지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라고 지적했다.

이같은 전문대 파행 교육의 1차 책임은 ‘아무나 데려와 강의를 맡기는’ 학교 당국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95년 7월 한국전문대교육협의회가 4년제 대학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대학평가인정제를 전문대에도 도입하고, 불필요한 학과는 전문대 전체 차원에서 ‘폐과 조처’를 검토하는 등 자구책을 모색하는 모습이 이를 반증한다. 이 협의회 김민유 총무부장은 “빠르면 내년, 늦어도 내후년까지는 실시한다는 목표로 대학평가인정제를 도입하기 위한 준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고 소개한다. 모두 방만한 학교 경영을 스스로 개선해 교육의 질을 높여 보자는 내용이다.

‘부실 교육’ 부추기는 정부

하지만 더 큰 책임은 정부에게 돌아가야 마땅하다. 말로는 현장·실무 중심 교육으로 전환한다고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예산 지원은 고사하고 전문대와 기능 면에서 크게 다를 것이 없는 기능 대학을 따로 설치하기로 결정하는 등 정책 수행에 일관성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 94년 현재 전문대 재학생 1명에게 지원되는 공부담 교육비는 4년제 대학의 4분의 1인 32만원에 불과하다(도표 참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정부는 노동부 주관으로 전문대와 기능이 유사한 기능 대학 설립 주체를 현재의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에서 공공직업 훈련 실시자와, 교육법에 의해 대학을 설치·운영할 수 있는 자로 확대 변경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기능 대학의 다기능 기술자 과정을 졸업한 사람은 전문대 졸업자와 동등한 학력을 인정 받게 된다. 이같은 계획이 실현되면, 정부의 산업·기술 인력 육성책은 전문대와 기능 대학으로 이원화돼 예산의 중복 투자를 피할 수 없게 된다. 그 과정에서 산업인력 육성 정책의 혼선과 전문대 교육의 파행이 초래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산업 기술의 고도화·전문화·다양화는 정부가 큰 목소리로 주창해온 국가 목표이고, 전문대 활성화는 현행 고등교육 제도에서 이같은 목표를 이루는 데 매우 유력한 대안일 수 있다. 홍기훈 의원은 “산업체가 필요로 하는 기술 인력을 적절히 배출하지 못해온 원인은 학교에 문제가 있기보다, 학교가 인재를 배출할 수 있는 여건을 정부가 갖춰주지 못한 데 있다”며 지원을 촉구했다. 정부의 자세 전환 없이는 전문대 교수가 전공과 동떨어지는 내용을 강의하는 현상 등 명실이 따로 노는 파행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