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속 없는 대기업의 밥장사 '패밀리 레스토랑'
  • 金恩男 기자 ()
  • 승인 1995.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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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브랜드 패밀리 레스토랑 투자액 크고 실속은 적어
93년 5월5일 어린이날, ‘T.G.I.프라이데이즈’라는 생소한 외국 브랜드 식당(서울 양재점)이 하루 매상고 3천6백만원을 올리는 ‘기록적인 위업’을 달성했다. 이 사건은 한국 외식업계 판도에 일대 변화가 있을 것임을 암시했다.

T.G.I.프라이데이즈의 성공에 고무된 기업들은 앞을 다투어 식당을 차리기 시작했다. 스카이락·LA 팜즈·데니스·시즐러·플래닛 헐리우드 등 이름난 외국 브랜드 식당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들어섰다. 93년 3∼4개이던 외국 브랜드 식당은 95년 6월 말 현재 10여 개로 불어났다. 이들을 흔히 ‘패밀리 레스토랑’이라 부른다.

패밀리 레스토랑이라는 이름은 미국 외식업계의 분류에 따른 것이다. 미국에서는 가격대와 서비스 특성에 따라 일반 음식점을 패스트푸드 레스토랑, 패밀리 레스토랑, 캐주얼 다이닝 레스토랑,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으로 분류한다.

한국에 들어와 있는 외국 브랜드 중 ‘가족 식당’으로서의 의미가 강한 패밀리 레스토랑이라 할 만한 곳은 코코스와 스카이락 두 군데 정도이다. 나머지는 패밀리 레스토랑에 오락 요소를 가미한 캐주얼 다이닝 레스토랑으로 분류할 수 있다. 지난 5월 개업할 때 할리우드 스타가 여럿 출동해 화제를 모았던 플래닛 헐리우드나 특이한 실내 장식으로 유명한 LA 팜즈는 각각 영화 테마 레스토랑, 스포츠 테마 레스토랑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는데, 이들도 캐주얼 다이닝 레스토랑의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아직 약속된 분류 방식이 없으므로 편의상 이들을 모두 패밀리 레스토랑이라 부른다.
철저한 고객 서비스는 본받을 점

이국적인 분위기와 호텔 못지 않은 서비스를 강점으로 내세우는 패밀리 레스토랑은 일단 한국 외식 문화의 수준을 한 차원 높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철저한 고객 중심 서비스는 우리 외식업체가 반드시 본받아야 할 점으로 지적된다.

대기업들이 패밀리 레스토랑 시장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는, 그것이 급속도로 성장하는 유망 업종이기 때문이다. 한국 외식 시장 규모는 87년 5조원을 넘어선 데 이어 지난해 18조원, 올해는 20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그 중에서 특히 패밀리 레스토랑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올해 예상되는 패밀리 레스토랑의 시장 규모는 1천억∼1천2백억원 정도이다.

외식산업 컨설팅 전문 업체인 (주)한국외식산업정보 박형희 대표는 “외국의 예를 볼 때 포화 상태에 이른 패스트푸드 업체가 퇴조 경향을 보이면 패밀리 레스토랑이 그 뒤를 잇는다. 패밀리 레스토랑은 앞으로 10년간 최고로 유망한 사업이 될 것이다”라고 전망한다.

실제 연평균 30%대로 고속 성장하던 패스트푸드 업계는 93년부터 성장률이 20%대로 떨어져 주춤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반면 패밀리 레스토랑 가운데 개별 점포당 최대 매출액을 기록하고 있다고 알려진 T.G.I.프라이데이즈의 경우 매출액이 92년 46억원에서 93년 74억원, 94년 1백75억원으로 이어지는 초고속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현재 패밀리 레스토랑 사업에 뛰어든 대기업은 10개 정도이다. 88년 미도파가 패밀리 레스토랑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코코스’를 들여온 것을 필두로, 제일제당은 일본 최대의 패밀리 레스토랑인 ‘스카이락’을, 일경식품은 87년 이태원에 문을 열었다가 시장 미성숙 요인으로 실패한 미국의 유명 패밀리 레스토랑 ‘데니스’를 지난해 다시 들여 왔다.

T.G.I.프라이데이즈를 운영하는 (주)아시안스타는 LG카드 이재현 부회장의 차남 이재용씨가 대표이사로 있으며, ‘LA 팜즈’를 운영하는 (주)화영인코포레이티드는 고 장기영 <한국일보> 회장의 외동딸 장일희씨 소유이다. 대한제당은 지난해 계열사인 동진건설을 통해 미국의 스테이크 전문점인 ‘시즐러’를 들여와 운영하고 있다. 이밖에 동양제과가 미국 ‘베니건스’, 대한방직이 미국 ‘칠리스’, 타워호텔이 미국 ‘토니로마스’와 가맹점 계약을 체결한 상태이다.

이러한 대기업의 움직임에 대해 ‘대기업이 밥 장사에까지 끼여드느냐’고 못마땅하게 여기는 시각이 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시각이 현실을 도외시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패밀리 레스토랑의 최대 성공 요인으로 꼽히는 넓은 주차 공간 확보와 종업원 서비스 교육을 위해서는 상당한 자본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대개의 패밀리 레스토랑은 50대∼150대를 수용할 수 있는 주차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종업원 초기 교육비에만 1억원 이상을 투입하는 업체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박형희씨는 “앞으로 외식업체는 거대 자본이 주도하는 기업형과 개인이 주도하는 소점포형 두 가지로 재편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진단한다.
외국 브랜드 패밀리 레스토랑 오픈비 30억원

그러나 최근 들어 긍정적 측면 못지 않게 부정적인 측면도 드러나고 있다.

문제는 외국 브랜드를 무분별하게 도입하는 일이다. 대기업이 외국 브랜드 도입에 경쟁적으로 매달리는 이유는, 잘 알려진 브랜드를 수입하는 것이 새로운 브랜드를 개발하는 것보다 위험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서울 대학로에서 국산 브랜드 패밀리 레스토랑인 ‘골드 러쉬’를 운영하고 있는 고도윤 사장은 “대기업들이 한국적인 경영 노하우를 축적하는 데에는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으면서 ‘손 안대고 코 푸는’ 격으로 안전한 외국 브랜드를 수입하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다”고 비난한다.

대기업들의 외국 브랜드 도입 경쟁은 상상을 넘어선다는 것이 한국외식산업연구소 김의근 소장의 지적이다. ‘이런 기업까지 외식업을 하겠다고 나서나’ 할 정도로 의외의 기업체까지 외국 브랜드를 도입하기 위한 로비를 은밀하게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일본의 3대 패밀리 레스토랑 중 하나인 로얄호스트와 브랜드 계약을 맺기 위해 기업들이 벌인 경쟁은 관계자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다. 그 중 가장 적극적인 로비를 펼쳤던 ㄷ사는 결국 ‘사업을 이끌어 나갈 전문 인력이 없다’는 이유로 로얄호스트로부터 거부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ㄷ사는 올해 다시 미국의 ㅎ사에 로비를 전개해 계약을 따냈다.

로비 경쟁이 치열할수록 손해를 보는 것은 한국 쪽이다. 한국 기업들 간의 ‘제살 깎아 먹기’ 경쟁은 초기 가입비(franchise fee) 상승과 불리한 계약을 초래한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패밀리 레스토랑의 객단가(손님 1인당 평균 음식비)는 보통 만원을 웃돈다(아래 표 참조). 이 가격은 일본이나 미국에 비해 비싼 값이다.

비용을 상승시키는 요인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싼 임대료와 인건비도 소비자의 부담을 부추긴다. 그렇다 해도 “강남에 외국 브랜드 패밀리 레스토랑을 오픈하려면 30억원 가량이 든다. 그러나 국산 브랜드일 경우 임대료까지 모두 포함해도 7억원이면 충분하다”는 한 외식산업 컨설팅 관계자의 이야기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이처럼 초기 투자 비용이 크기 때문에 외국 브랜드 패밀리 레스토랑들은 바깥으로 드러나는 매출액과 관계없이 상당 기간 적자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김의근 소장은 “일반적으로 직영점이 15개 이상은 되어야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중·저가 레스토랑을 표방했던 ㅅ사는 누적되는 적자로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다른 패밀리 레스토랑 관계자 또한 ‘호황이 아닌 허황(虛況)’이라는 말로 그같은 분석을 간접으로 인정한다.

이웃 일본의 경우 70년대 초반 시작된 패밀리 레스토랑 붐이 90년대 들어서면서 사그라들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국의 경우는 그 사이클이 7∼10년으로 훨씬 짧아지리라는 것이 박형희씨의 분석이다.

그래도 대기업들은 패밀리 레스토랑에 대한 미련을 쉽게 버릴 것 같지 않다. 무엇보다 패밀리 레스토랑은 당장 현금 회전이 가능하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이 있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대기업이 토지초과이득세를 피하기 위해 편법으로 대형 패밀리 레스토랑 수를 늘리고 있다는 비판도 하고 있다.

대기업들이 패밀리 레스토랑 시장에 참여하는 것을 계기로, 외국 기업의 노하우를 우리 것으로 만들어 한국의 외식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한 이같은 비판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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