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병원들 건강검진으로 돈번다
  • 朴晟濬 기자 ()
  • 승인 1995.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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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급여 대상’인 종합건강검진 서비스 상품 등 개발…검사 고급화하면서 수진료 올려
‘건강한 사람의 발길을 붙잡아라’. 대형 병원간 경쟁 양상이 변모하고 있다. 단순히 병원을 찾아온 환자를 치료하는 차원에서, 정상인의 건강을 정확하게 검진하고 적절하게 관리해 줌으로써 질병을 조기 발견해 조처하거나 사전 예방하는 차원으로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종합 건강 검진 분야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경쟁은 그 중 대표적이다.

최근 가열되고 있는 건강 검진 서비스 각축에 본격 경쟁의 불을 붙인 곳은 삼성의료원·서울대병원·서울중앙병원·연세세브란스의료원 등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형 병원들이다. 물론 과거에도 이들 병원을 제외한 중·소 규모 병원과 다른 종합 병원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건강 검진을 실시하기는 했다. 최근 불고 있는 건강 검진 서비스 경쟁의 두드러진 특징은, 검진 항목이 크게 늘고 수가가 예전에 비해 훨씬 높아졌으며, 몇몇 대형 병원을 중심으로 경쟁이 진행된다는 점이다.

특히 대형 병원 가운데 지난해 개원한 삼성의료원은 특기할 만하다. 병원을 짓는 데 무려 5천억원을 쏟아부어 화제가 됐던 삼성의료원은, 병원 개원과 동시에 병원 내에 건강의학센터를 개설하면서, 시설과 검진 항목·가격 면에서 종래 다른 병원이나 건강검진센터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파격적인 내용의 서비스를 시작했다.
의료 서비스 내용 왜곡할 소지 다분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검사 항목 면에서의 혁신이다. 검사 항목이 기존 병원의 일반 건강진단 검사 항목과는 비교할 수 없이 세부화한 것이다. 현재 이 병원이 실시하고 있는 건강 검진 항목은 정밀 검진, 종합 검진, 스포츠의학 검진 등 세 종류이다. 그 가운데 정밀 검진의 총 검사 항목 수는 1백2개다. 정밀 검진에서 직장경 검사나 치과 X선 촬영, 골밀도 검사 등이 빠진 종합 검진의 검사 항목이라고 해도 그 수가 72개에 이른다. 이와 별도로 운동부하 능력과 고관절 기능 등을 검사해 자신의 체력을 정확하게 측정·관리할 수 있는 스포츠의학 검진의 검사 항목 수도 59개에 이른다(47쪽 도표 참조).

과거 일반 병원에서 40~50개 안팎에 불과했던 검사 항목 수를 파격적으로 늘리면서 수진 가격도 크게 뛰었다. 정밀 검진 수진 가격은 98만원, 종합 검진 수진 가격은 40만원에 이르는 것이다. 패키지 프로그램에는 빠져 있으나, 고객이 원할 경우 선택적으로 검사 받을 수 있는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검사 등 고가 검사 항목을 추가하면 검진 수가는 1백50만원에 육박한다는 것이 의료계 종사자들의 설명이다.

첨단 시설을 갖추고 검사 항목을 대폭 늘리면서 건강 검진 서비스 수준을 한 차원 높인 삼성의료원은, 검진 시설 면에서도 `‘혁신’을 이룬 셈이지만 수가의 고가화 바람을 주도했다는 비판 여론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현재 일반 병원의 기본 건강 검진 수가는 평균 20만~30만원 선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병원의 건강증진센터 문 앞에는 수진을 기다리는 사람이 장사진을 이룬다. 이 병원 홍보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소요 시간이 다섯 시간 걸리는 정밀 검진 코스에 6월 현재 2천5백명이 예약한 상태다. 정밀 검진 수가보다는 약간 값이 싼 종합 검진 코스에는 예약 대기 인원이 4천8백명을 넘어섰다. 집단 예약 취소 사태가 나지 않는 한, 현재 예약 대기중인 고객은 올해 안으로는 건강 검진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이 병원 홍보 관계자는 이처럼 자기네 병원에 건강 진단 수요가 폭발적으로 몰리는 원인에 대해 “인력·시설·장비 어느 면에서도 국내 최고 수준임을 인정 받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건강 검진 상품의 고급화 노력 면에서는 지난 5월 초 문을 연 서울대병원 건강증진센터도 뒤지지 않는다. 다양한 검사 항목(오른쪽 도표 참조)을 빼고서도, 이 센터가 내세우는 자랑거리에는 교수 주치의제와 평생건강관리회원제가 있다. 건강 진단을 받은 사람을 회원으로 등록시켜 평생건강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 분야에 전문 교수를 배치해 예진에서부터 판정 진료에 이르기까지 최고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서울대병원측은 이같은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건강증진센터 건물을 따로 마련하는 외에, 위장 촬영을 위한 리모트컨트롤 X선·골밀도 촬영기 등 최신 검사 장비를 새로 들여왔다.

서비스의 질에 상응하는 값을 매기는 것은 당연하다. 서울대병원 건강증진센터가 실시하는 건강 검진 수가는 기본이 40만원으로 역시 종래의 건강 검진 수가보다 높은 편이다. 이 센터 홍보 담당자 최정욱씨는 “내용을 들여다보면 결코 비싸지 않다. 특히 우리 센터에서는 다른 병원이 대부분 선택 항목으로 분류해 따로 돈을 받는 유방 X선 검사와 골밀도 검사 등을 기본 검사 항목에 넣어 필수화했다”고 설명한다.

대형 병원에서 고가 건강진단 서비스 상품이 쏟아져 나온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건강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높아진 데다가, 의료 서비스의 개념도 질병에 대한 `‘사후 치료’ 못지 않게 `‘사전 예방’을 강조하는 쪽으로 변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수요와 공급이 건강 검진 서비스라는 지점에서 맞아 떨어진 셈이다. 하지만 의료계 일각에서는 이같은 추세를 매우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병원이 본연의 임무를 방기하고 돈벌이에 나섬으로써 의료 서비스 내용을 왜곡할 소지가 있다는 비판이 그중 하나다.
항목 줄이고 효율 높여야

이같은 비판의 근거는 건강 진단 분야가 현행 규정상 의료보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가 정한 의료보험 관련 규정에 따르면, 건강 진단 항목은 입원 기간의 식대와 상급 병실료 차액, 미용과 관련된 간단한 성형수술 비용 등과 함께 `‘비급여 대상’으로 분류되어 있다. 비급여 대상이란 쉽게 말해 환자들이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부분이다. 결국 진료에 드는 비용에 대해 병원측이 한푼도 부담하지 않아도 되므로 건강 검진 서비스로 벌어들인 돈을 고스란히 챙기게 되는 셈이다.

대형 병원의 건강 검진에 대한 또 다른 비판은 건강 검진 자체의 신뢰성과 관련이 있다. 병원들이 저마다 첨단 의학 시설과 최고 수준의 진료 능력을 내세워 건강 검진의 실효성을 홍보하고 있지만, 여러 가지 검사를 `한데 묶어 실시하는 건강 진단은 수진자의 상태를 계통적으로 살피지 못하기 쉬워 그 자체로 정확한 판단을 끌어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게다가 검사 결과 나온 수치도 수진자의 상태가 정상인지 비정상인지를 판단하기에 애매한 경우가 많다는 전문가의 지적도 있다. 예컨대 간 질환의 경우 실제로는 질환이 진전된 상태임에도 혈액 검사 수치로는 ‘`정상 범위’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런저런 비판을 모으면 결론은 하나로 귀결된다. ‘건강 검진은 낭비적인 요소가 많을 뿐 아니라 실효성 면에서도 맹목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병원측의 반박 논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 건강 검진의 주요 대상이 되는 성인병은 일단 발병하면 아무리 돈을 쏟아 부어도 치료하기 힘든 만큼 건강 진단을 통해 질병을 조기 발견하는 일이 질병을 키웠다가 사후 치료하거나 재난을 당하는 일보다 비용 면에서 오히려 싸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측이 무증상 성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조사 결과, 건강 검진이 충분히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입증한 적도 있다. 91~93년의 조사 결과, 겉으로 보면 멀쩡한 정상인들에게서 위암 12례·자궁암 8례 등 모두 30례의 암을 조기 진단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같은 검진 기관의 설명을 수긍하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검사 항목 수를 크게 늘리는 유행이 계속되는 한, 수가 인상을 초래해 결과적으로 의료 소비자가 `더 많은 ‘부담’을 떠안게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최현림 교수(경희의대·가정의학과)는 “현행 건강 검진은 검사 항목이 너무 많아 담당하는 의사들조차 때때로 어떤 종류의 검사를 왜 하는지 모를 때도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가능한 한 검사 항목을 최소화하면서 효율을 높이는 일이다”라고 말한다. 획일적으로 검사가 진행되는 현행 건강 검진 상품에 개선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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