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상지대학교 정상화의 길
  • 朴晟濬 기자 ()
  • 승인 1995.06.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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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감사가 학내 분규 불질러…‘도립 대학’ 방안 제시
93년 8월 출범한 `‘김찬국 총장 체제’에서 정상을 되찾아가던 상지대가 최근 들어 다시 혼란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체육학과 일부 학생들이 `‘총장 퇴진’을 요구하며 총장실을 점거해 농성을 벌이는가 하면 `‘상지대 정상화를 위한 모임’이라는 단체가 등장해 원주 시내 곳곳에 학교측을 비방하는 유인물을 뿌려 잡음이 외부로까지 번져 나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93년 3월 학교 운영 비리 문제로 실형을 선고 받아 재단이사장에서 물러났던 김문기 전 의원이 최근 복귀 움직임을 구체화하고 있고, 교육부가 실시했던 감사 결과가 학교측에 매우 불리하게 나와 교내는 벌집을 쑤신 듯 소란해졌다. 이 대학 총학생회·교수협의회·직원노동조합·총동문회 등은 최근 상지대의 미래와 관련해 김문기씨의 복귀 움직임과 정면 배치되는 ‘상지대 도립화안’을 내놓고 `제2의 학원 자주화 투쟁을 외치고 있다.

93년 3~6월 약 3개월 사이 이른바 `‘김문기 족벌 체제’가 공직자 재산 공개 때 퇴진하고, 교육부가 새로 관선 이사진을 파견했을 때에만 해도 상지대의 앞날은 밝아 보였다. 반면 그 이전 김문기 이사장 체제의 상지대 사태는 교수와 학생들에게는 물론 일반 국민에게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는 학력고사 점수 49점짜리가 응시생 중 1백64등의 성적으로 정원 52명인 학과에 당당히 합격하는 `상상도 못할 일이 비일비재했다. 대다수 교수들은 재단측에 의해 대학과 이 대학 병설 전문대학의 교수로 이중 임용되었으며, 봉급 포기 각서까지 쓰는 불이익을 당하기도 했다. 학생들이 낸 등록금 가운데 실험실습비나 장학금으로 배정됐던 예산을 이사장이 별도로 관리한 적도 있다.

93년 3월 김문기씨가 물러날 때까지 교수와 학생들은 근 1년간 농성과 수업 거부로 날을 지샜다. 93년 6월 교육부가 임명한 관선 이사들은 학원 정상화의 대업을, 92년 연세대 부총장을 끝으로 정년 퇴임한 김찬국 교수에게 맡겼다. 김교수를 상지대 운영의 총책임자인 총장으로 맞아들인 것이다. 김교수는 총장 취임에 즈음해 `‘이성적인 사고와 합리적인 대화로 난마처럼 얽힌 학내 문제를 차근히 풀어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개혁 총장’ 반대 세력의 진정서가 혼란 부채질

하지만 그의 말대로 `‘난마처럼 뒤얽힌’ 문제는 쉽사리 해결되지 않았다. 과거 청산 작업이 본격화하면서 상지대에 대화보다는 대결이 앞선 갈등의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던 것이다. 최초의 잡음은 94년 4월14일 김찬국 총장이 이사회에 입시 부정에 연루된 교수 6명을 직권 해임해 달라고 요청한 일로 거슬러올라간다. 94년 4월20일 체육학과 일부 학생들은 김총장이 직권 해임을 요청한 대상자 가운데 체육학과 박○○ 교수의 해임을 반대하는 연좌 농성을 벌였다. 당국에 의해 이미 사법 처벌을 받은 교수를 대학에서 해임까지 하는 것은 보복성이 있는 이중 처벌이라는 주장이었다. 이사회는 결국 대상자 가운데 2명이 빠진 4명에 대해 직권 해임을 의결했다.

그에 대한 반발이 지난 5월30일부터 6월2일까지 진행됐던 또 한번의 농성이다. 체육학과 학생들은 이번에는 좀더 과격한 형태로 자기네 의사를 밝혔다. 총장실을 점거하고, 그동안 상지대 구성원 사이에서 좀처럼 입에 떠오르지 않았던 `‘총장 사퇴’ 구호를 외치기 시작한 것이다.

상지대 내부 갈등이 본격적인 분규로 모습을 드러낸 시기는 지난해 11월 `‘상지대 정상화를 위한 모임’(상정모)이라는 단체가 등장한 것과 때를 같이한다. 상지대 일부 구성원이 중심이 된 것으로 보이는 상정모는 교육부에 김총장 체제에서 벌어진 학교 운영상의 잘못을 낱낱이 적어 진정서로 제출했다. 이른바 `‘개혁 총장 체제’에 대해 반대와 불신의 뜻을 분명히한 것이다. 교육부는 1차로 올라온 진정서 내용을 서류 작업을 통해 검토한 결과 `‘문제점 발견할 수 없음’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이같은 결과를 민원인인 상정모에 회신했다. 하지만 상정모는 물러서지 않았다. 자기네 주장의 타당성을 입증할 만한 증빙 서류를 보완해 올해 2월 또 한번 진정서를 제출한 것이다. 이것이 최근 김총장의 이사직 사퇴, 보직교수들의 무더기 사표 파동을 불러일으킨 교육부 특별 감사의 도화선이 됐다.
교육부가 상지대에 특별 감사를 실시한 것은 지난 4월10일께이다. 그리고 최종 감사 결과가 학교측에 통보된 것은 감사에 착수한 지 한달이 지난 5월10일이다. 문제는 감사 결과 지적된 내용이, 상정모가 앞서 교육부에 `학교측에 잘못이 있다며 진상 조사를 요구한 내용과 대부분 일치한 데에서 비롯됐다. 감사 결과, 상지대는 △신임 교수 등 교원을 신규 채용할 때 업무 처리를 부적절하게 하고 △교직원 인사 관리를 부실하게 했으며 △중앙도서관 등 교사 신축 공사를 벌이는 과정에서 발생한 발파석을 부당 반출하였고 △학교 정문 앞 토지를 매입하면서 사전에 이사회 승인을 받지 않는 등 모두 14건의 잘못을 저지른 것으로 지적됐다. 교육부는 `‘학교 운영에 철저를 기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총장을 비롯한 보직 교수들에게 경고와 주의 조처를 내리고, 이사회가 이들을 징계하도록 요구했다.

김문기 전 이사장 복귀 움직임

김총장을 비롯한 학교 당국은 행정 경험이 미숙해 행정 절차상 하자가 발생한 점은 인정하면서도, 교육부의 지시 사항이 상지대의 특수한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내려진 매우 과중한 징계라며 반발했다. “특감에서 지적된 내용은 교육부가 정한 교수 확보율, 대학시설기준령에 절대적으로 미달하는 교지 확보, 턱없이 부족한 강의실 및 실험 공간 확충 등 당국의 시책을 적극 수용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나온 실수임에도 보직 교수 19명을 무더기 징계하라고 지시한 처사는 지나치다”는 주장이다. 학교측은 행정상 착오가 발생하게 된 원인을 김문기 전 이사장에 의해 대학이 파행으로 운영되면서 학사 운영에 필요한 내부 규정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합리적·민주적인 절차와 관행을 확립하지 못한 탓으로 돌리며, 최근 감사 결과에 따른 교육부의 지시를 취소 또는 변경해 달라는 내용의 이의 신청서를 당국에 제출했다.

이에 대한 교육부의 입장은 단호하다. “정상화를 위해 몸부림치는 학교 당국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잘못은 잘못이므로 응분의 양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교육부 감사는 수면 아래 잠복해 있던 내부 대립을 표면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교육부 감사 결과, 상정모가 그동안 주장해온 김총장 체제의 학사 운영 잘못이 사실로 드러나자 침묵을 지키던 일부 교수들마저 상정모의 입장에 동조해 총장 퇴진 운동에 나서고 있다.

5월22일 교육부 감사 내용을 알리는 상정모의 유인물이 상지대와 원주 시내 곳곳에 대량으로 뿌려지고, 5월30일에는 교내 곳곳에 나붙었던 총장 담화문과 교무위원회 담화문, 교수협의회와 총학생회의 성명서가 일부 학생들에 의해 찢겨 나갔으며, 그 자리에는 총장 퇴진을 요구하는 교수들의 공동 성명서가 부착됐다. 또 같은 날 체육학과 일부 학생들이 총장실을 점거해 농성을 시작했다. 6월7일에는 일단의 교수들이 기존의 상지대교수협의회(상교협)와는 따로 상지대평교수협의회(상평협)를 조직하겠다고 밝혔다.

김문기씨는 94년 8월, 자신에 대해 이사장 승인을 취소했던 교육부의 결정을 다시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른바 ‘`재단반환청구소송’으로 알려진 이 소송은 오는 7월 선고 공판이 열릴 예정인데, 김씨는 자기에게 쏟아지는 `상지대 분규 개입설에 대해 공식 견해를 내놓지 않고 있다.

교육부 감사로 촉발된 상지대 분규는 앞으로 총장 지지파 쪽에서 내놓은 상지대 도립화안을 둘러싸고 더 격렬하게 대치할 것처럼 보인다. 상지대 도립화안이란, 총장 지지파가 `총장 사퇴는 곧 ‘김문기 재단 복귀’라는 등식에 따라 이를 저지하기 위해 내놓은 상지대의 미래 발전안이다. 총장 지지파들은 이같은 도립화안이야말로 고질적인 학내 분규를 방지하고 학교를 정상화할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총장 반대파들은 도립화안을 `학교 당국이 파행적인 학교 운영에 따른 비난을 회피하기 위해 마련한 ‘방패막이 대안’이라고 몰아붙이며 `총장 퇴진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김문기 전 이사장이 제기한 재단반환청구소송의 선고 날짜가 다가옴에 따라 양측의 공방이 더 치열해질 것은 불을 보듯 훤하다.

사태를 수습할 책임의 일단은 교육부에도 있다. 김문기씨가 물러나고 관선 이사가 들어선 93년 6월 이후, 상지대 운영권은 교육부의 손아귀에서 한시도 떠난 적이 없다. 그 권한을 행사할 임시 이사진은 지금 정상화를 계속하느냐, 또 다시 분규의 터널 속으로 들어가도록 방치하느냐 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중대한 선택의 갈림길에 접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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