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민 정부 들어 더 심해진 대미 무기 종속
  • 김 당 기자 ()
  • 승인 1997.07.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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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민 정부 들어 의존도 더욱 커져…군사 교역 적자도 38억 달러로 증가
70년대 초반 미군 철수 움직임이 일자 박정희 대통령은 ‘자주 국방’ 기치를 내걸었다. 80년대 후반 노태우 정부는 냉전 체제 붕괴와 북방 정책 추진에 맞추어 ‘무기 수입 다변화’를 모색했다. 그러나 오는 7월의 임시국회를 준비중인 임복진·천용택 의원(국민회의) 등 군 출신 국방위원들의 상임위 요구 자료에 따르면, 오히려 문민 정부를 자처한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미국에 대한 무기 체계 종속이 더 심해진 것으로 드러났다.

두 의원이 국방부에 요구한 관련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90년대 미제 무기 의존율은 △90년 76% △91년 79% △92년 73% △93년 86% △94년 90% △95년 90% △96년 90%(추정치) 등으로 오히려 김영삼 정부 들어서 더 커졌다. 한국은 지난 72년 자주 국방을 내세우며 전력(戰力) 증강사업을 시작한 이래 해외 무기 체계 구입에 쓴 12조원 가운데 10조원(83%) 가량의 무기를 미국에서 사들여 왔는데, 문민 정부 출범 이후에는 미국 무기 의존율이 90% 대로 높아졌다. 이처럼 미국 무기 체계에 절대적으로 종속된 나라는 지구상에서 한국뿐이다.

또 연도별 군사 교역 추이를 보면, 지난 5년간 해외에서 구매한 무기 수입 총액이 40억9천5백만 달러인데 비해 수출 총액은 2억9천5백만 달러로 수입액의 7.2%에 불과해 군사교역 적자액이 38억달러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아래 표 참조). 이에 대해 임복진 의원은 “무역 수지 적자가 늘고 경제 위기가 심해지는 가운데 군사 교역 적자가 국민 경제에 갈수록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군사 교역 적자의 주범은 김영삼 정부 들어 해외 무기 도입액의 90%를 차지하는 미제 무기로 인한 군사 교역 적자이다”라고 못박았다.

이같은 해석은 대미 군수품 수출이 88년 당시 7천6백만달러 수준이었는데 95년에는 2백80만달러로 7년새 무려 27배가 감소한 것으로도 입증된다. 특히 이같은 결과는 그동안 국방부가 대응 구매, 절충 교역 등을 통해 수출 촉진 정책을 추진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나타난 결과여서 더 충격적이다. 한편 미국의 기술을 도입해 만든 한국산 무기 수출에 대한 미국의 동의율을 보면, 83∼96년에 우리가 요청한 총 3백46건 6억3천만 달러 중에서 3천3백만 달러(5.2%)만 동의했는데, 90년대 들어서는 동의율이 액수 기준으로 1%도 안될 만큼 굴욕적인 수모를 겪고 있다. 이는 과거 군사 정권 때보다 문민 정부 들어서 한국 무기의 제3국 수출이 미국으로부터 더 철저히 봉쇄당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국 무기 체계, 美 5대 메이저 손안에”

한편 미국의 특정 군수업체에 한국의 무기 체계가 종속되는 현상도 문제이다. 천용택 의원은 “90년 이후 미국 5대 군수업체의 한국 조달 계약은 4조원을 넘어 총 해외 구매액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한국 무기 체계가 5대 군수 메이저의 손안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지적했다.

사실 한국 정부는 80년대 말부터 무기 수입 다변화를 조심스럽게 모색해 왔다. 한·미 연합방위체제라는 조건에서 어느 정도의 미국 무기 체계 의존은 불가피한 현상이지만 무기 수입 다변화를 모색한 데는 냉전 체제 붕괴와 소련 및 동유럽 몰락, 노태우 정부의 북방 외교 추진이라는 시대적 상황 변수가 작용했다. 또 통일 이후 및 21세기 한·미 동맹 체제가 변화할 가능성과 주변 강대국과의 지역연합 체제 안보 협력 상황을 염두에 둘 때도 무기 다변화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정권의 정통성을 사실상 미국으로부터 추인받았던 군사 정권 때보다 대미 관계에서 훨씬 더 자유로운 문민 정부 들어 왜 무기 체계 종속이 더 심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일까(이를테면 국방연구원 서주석 박사는 <한·미 안보협력 50년의 재조명>이라는 논문에서 ‘미국은 80년대 초 한국의 유신 이후 정권이 출범하는 과정을 추인하는 입장을 계속 견지했고 이는 그후 한국 내에서 크게 번진 반미 감정의 주요한 요인이 되었다. 미국은 한국의 신군부 정권과 군사적 결속을 강화했고 한국 정부는 신장된 경제력을 바탕으로 하여 주로 미제 무기로 충당된 군 전력 증대사업, 즉 율곡사업을 적극 추진했다’고 분석했다).

이에 대한 해답은 일단 냉전 체제가 붕괴한 이후 세계를 지배하는 국익 우선의 경제안보 논리에서 찾을 수 있다. 최근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발표한 <1996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은 전세계 무기 수출액의 44%를 차지했다. 그러나 지난해 전세계에 수출한 2백29억 달러(90년 가치 기준)는 87년의 4백40억 달러에 견주면 절반밖에 안된다. 그만큼 전세계 무기 시장의 규모가 줄어든 것이다. 또 클린턴 행정부의 국방비 감축 정책에 따라 미국의 국방 예산은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지난해 미국은 군사비에서 95년 대비 5% 감소한 2천2백54억 달러를 지출했다.
미국, 한국의 러시아 무기 구입에 신경 곤두세워

결국 내수 시장이 줄고 있는 미국 군수업체들이 살 길은 자국 내에서 사면초가에 몰린 미국 담배처럼 공격적으로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 것밖에 없는 셈이다. 특히 전통적인 분쟁 지역인 중동에 평화 무드가 조성된 이후 미국 군수업체들은 아시아 시장에 눈독을 들여 왔다. 그 결과 96년 재래식 무기 수입국 현황을 보면 △대만 32억3천4백만 달러 △중국 19억5천7백만 달러 △한국 17억2천7백만 달러 순으로 아시아 국가들이 세계 무기 시장의 최대 고객으로 떠올랐다. 전세계 무기 거래에서 아시아 시장이 차지하는 규모는 48%이고, 한국을 포함한 무기 수입 최대 3국의 수입 규모가 전세계 거래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은 특히 북한의 위협을 고리로 삼아 한국에 자국 무기를 판매하는 데 국방장관까지 나설 만큼 이를 ‘사활적 이익’이 걸린 문제로 간주하면서 공격적인 로비 행태를 보여 왔다. 캠벨 아태담당 부차관보는 지난 3월 방한 직전 기자회견에서 한국이 러시아제 대공 미사일을 구매할 것이라는 보도와 관련된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한반도의 불확실성에 따라 비무장지대 이남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과 높은 상호 운용성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긴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이 주한미군과 일치하는 무기류를 구입하는 것이 긴밀한 동맹 관계를 위해 중요하다고 본다. 따라서 우리는 이와 관련해 러시아측과 협상이 진전되는 것을 반대하고 한국이 우리측과 협력하기를 원한다는 입장을 서울의 담당자들에게 매우 강력히(very strongly) 표명했다.”

3월 하순에 방한한 캐민스키 획득기술 차관의 공식적인 방한 목적은 ‘한·미 방산기술협력 증진’이었다. 따라서 한국측은 캐민스키 차관에게 고등 훈련기(KTX2) 사업과 관련해 비용 절감, 기술 통제 완화, 수출 환경 개선 등 협조를 당부했다. 고등 훈련기 사업은 한국이 미국에서 F16 전투기를 도입할 때 절충 교역의 일환으로 기술 이전에 합의한 것이므로 미국측에 의무 이행을 촉구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미측은 이같은 협조 요청에 대해서는 ‘제3국 수출은 국무부 소관’이라고 비켜가면서 상호 운용성을 강조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러시아제 무기 구입과 관련된 직접적인 언급이 없었다는 당시 국방부 발표 및 언론 보도와 달리, 캐민스키 차관은 한국 국방 차관을 예방한 자리에서 “미제 패트리어트 미사일은 수명 주기·비용 및 한·미 상호 운용성 기술 수준 평가에서 우수하며, 러시아제 S300 미사일은 구식 기술인 데 반해 패트리어트(PAC3)는 미래 기술이다”라고 경쟁국 무기를 노골적으로 폄하하는 발언을 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코언 국방장관도 지난 4월 초 방한을 앞두고 미국 언론을 통해 한국 방문 기간에 한국 정부가 러시아제 지대공 미사일 구매하지 않도록 압력을 가하겠다고 공언했다. 한·미 간의 마찰을 우려한 한국측은 그가 공언한 대로 방한 기간 중에 구매 압력을 가했는지에 대해 언급하기를 회피했다. 그러나 그가 방한 중에 한국이 구매를 검토한 러시아제 S300 대신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구매할 것과, 차세대 전투기(FX) 사업 기종과 관련해 러시아 수호이 전투기나 유럽 4개국이 공동 개발한 ‘유러파이터’를 배제하고 자국의 F15 전투기를 선정해 달라고 강력히 요구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군사 전문가들에 따르면 80년대 후반 이후 미제 일변도의 무기 체계 종속에서 벗어나 다변화를 모색해 그 이후 러시아 프랑스 영국 이스라엘 등에서 다양한 무기가 들어오고 있지만, 미제 위주의 국내 무기 체계나 한·미 연합작전 능력에서 강조되는 이른바 상호 운용성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라는 평가이다. 따라서 미국 국방부 수뇌부의 이같은 일련의 발언은 직접적으로 패트리어트 미사일 판매를 겨냥한 것이지만, 지난 4월에도 사업비 2백83억원이 집행된 육군 ‘불곰사업’에 대한 견제 성격이 강한 것으로 관측된다. 한국의 무기 수입 다변화 국가 중에서 미국으로서는 가장 신경이 쓰이는 국가가 러시아이기 때문이다.

‘불곰사업’이라는 암호명을 붙인 데서 알 수 있듯, 국방부는 그동안 러시아에 제공한 차관을 무기로 상환받는 이 사업을 조심스럽게 추진해 왔다. 그러나 이에 대한 국방부의 공식 입장은 ‘전력 증강을 위해 방위력 개선사업(율곡사업)으로 러시아제 무기 구매를 결정한 바는 없다’는 것이다. 즉 한국 정부로부터 꾼 돈을 갚을 길이 없는 러시아가 돈 대신에 무기로 갚겠다고 해 이를 받아들인 정부의 결정에 따라 국방부는 러시아제 무기를 받은 것뿐이라는 논리이다. 또 국방부가 러시아제 무기를 전력 증강 목적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성능 및 전략·전술 연구용’이라고 강조하는 것도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력 증강 목적의 방위력 개선 사업이 아니라면 굳이 암호명을 붙일 까닭도 없지만, 불곰사업은 국방부 방위력개선추진위원회가 사업의 소요 타당성 등을 최종 심의·승인하는 방위력 개선 사업으로 분류되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책 결정권자들의 미제 선호 경향도 문제

국방부가 이처럼 쉬쉬 하면서 불곰사업을 추진하는 까닭은, 러시아제 무기가 우수한 성능에 비해 가격 조건이 미제보다 훨씬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러시아 경협 차관에 대한 구상 무역 형태로 도입한 러시아 무기는 모두 2억달러어치로 탱크(T80U), 전투용 장갑차(BMP3), 휴대용 대공미사일(IGLA) 등인데 대부분 성능 및 전략·전술 연구용으로 들여온 것이다. 이 가운데 러시아가 자랑하는 T80U 탱크는 5km 이내 상공의 헬기 요격 능력까지 갖춘 최신예 무기로, 북한의 주력 탱크(T62)보다 성능이 훨씬 더 뛰어나 당장 전력화해도 손색이 없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러시아도 15년치 포탄과 부품에 대한 애프터서비스와 승무원 교육까지 책임질 만큼 탱크 판매에 의욕적이다.

군사 전문가들에 따르면, 소련을 종주국으로 한 동유럽 블록 해체 이후 무기 수입 다변화는 국제적 추세이다. 특히 과거와 달리 국방부·합참의 영관급 장교들은 무기 수입 다변화를 지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미제 무기 체계 종속이 더 심해진 데는 미국측이 주한미군의 존재와 무기 체계의 상호 운용성을 내세워 한국에 판매 공세를 펴온 탓이 크다(44쪽 상자 기사 참조).

그러나 ‘선택적 동맹 관계’라는 관계 설정에까지 이른 한·미 관계에 비추어볼 때 ‘남의 탓보다는 내탓이 더 크다’는 지적도 있다. 즉 미국의 압력 못지 않게 군 내부의 정책 결정권자들이 미제를 선호하고 있어 미국 무기 체계의 독점적 영향력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는 지적이다. 상명하복의 위계 질서가 철저한 군 조직에서 실무 장교들이 ‘무기는 미제가 최고’라는 해묵은 논리로 무장한 상관을 설득해 정책 노선을 바꾸기에는 힘이 부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실무 장교들 가운데는 “정책 결정권자들의 선호도나 국방부 공식 입장도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미제 무기)’이기 때문에 기종 선택을 할 때부터 미제를 제외한 외국 무기는 구색 맞추기로 세운 들러리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그렇게라도 해서 콧대 높은 미국 무기 값을 조금이라도 깎고, 기술 이전을 더 받으면 성공 아니냐”라는 것이 이들의 솔직한 고백이다.

한반도 남쪽이 미국 무기 전시장이 된 데는 네탓(북한의 위협과 미국의 압력)도 크지만 의사 결정을 자주적으로 못하는 내탓도 그에 못지 않다. 결국 자주 국방의 첫걸음은 의사 결정의 자주화에 달려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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