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탄 현지 취재] 미군 기지촌의 두 얼굴
  • 주성민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0.06.29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군들, 달라진 세태에 씁쓸···인근 주민들에게는 주요 수입원
실탄이 장전된 베레타 권총을 허리에 찬 여군 하사관이 남자 군인들과 팀을 이루어 시내에서 밤거리를 순찰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 공군 헌병인 SP(Security Police)들이다. 얼룩무늬 전투복에 검은 베레를 쓴 금발 여군 헌병이, 위압적인 자세로 군화를 뚜벅거리며 거리를 휘젓고 다니는 이곳은 7공군이 있는 경기도 송탄의 오산 에어베이스(OSAN AB)이다.

주 5일 근무하는 미군은 주말인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오전 2시까지 귀대하면 되지만 보통 때 귀대 시간은 밤 12시다. 만일 늦으면 SP에게 걸려 당장 불이익을 보게 된다. 몇분이라도 늦으면 경고를 받고, 또 늦으면 미군이 가장 싫어하는 감봉이 따르며, 그래도 늦으면 계급이 강등된다.

오산AB는 이름 탓에 흔히 오산 기지로 착각하지만 송탄에 있다. 이곳에 사령부가 있는 7공군은 육군의 8군과 함께 주한미군의 핵심을 이룬다. 7공군은 일본 주둔 5공군과 함께 하와이의 히캄 에어포스 베이스에 본부를 둔 태평양 공군 산하 부대다. 팩에프(PACAF)라 불리는 태평양 공군에는 히캄AFB를 포함해 한국의 오산AB·군산AB, 일본의 요코타AB·미자와AB·가데나AB, 괌의 앤더슨AFB, 알래스카의 아일슨AFB·엘멘도프AFB까지 기지가 9개 있다. 미군은 본토의 기지를 에어포스 베이스(AFB), 해외 기지는 에어베이스(AB)로 구별하고 있다. 유럽에는 미국의 핵심적 이해 관계가 걸린 곳이 없지만, 전략 가치가 높아지고 있는 아시아에서는 육군보다 공군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으며, 7공군 사령관이 주한미군 사령관이 될 가능성도 있다.
“언론이 사실 과장” 주한미군도 불만

이 땅에 주둔하는 미군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대체로 언론 보도를 통해 미군을 이해한다. 그런데 미군 관련 기사는 주로 범죄를 저질렀을 때 언론에 보도된다. 지난 5월14일 대구의 미군부대 캠프 헨리 정문 앞에서 시민과 시민단체에 구청장까지 합세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미국인 군속이 초등학교 아이들을 성추행한 일이 벌어진 데다, 미군 장교가 클럽에서 일하는 여인을 두들겨패고 아들과 번갈아 성폭행한 사건(나중에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짐)까지 일어나자 시민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이렇듯 드러난 면만 보면 미군에게 곱지 못한 시선을 가지기 쉽고 심지어 적대감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군의 추한 면만 보아서는 곤란하다. 그래서는 미군을 이해할 수도, 우리의 이익을 제대로 챙길 수도 없다.

주한미군도 언론이 사실을 과장해 갈등을 증폭시킨다면서 불만이 많다. 지난 1월 파주의 미군부대가 폭탄 테러 협박을 받았을 때, 언론은 미군이 먼저 내뺀 것처럼 보도해 비난을 받게 했다. 실은 미군의 통보를 받고도 합동참모본부와 정부가 신속히 대응하지 않았던 것이다.

매향리 사건도 마찬가지이다. 미국 공군이 전투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두 말할 나위 없이 공대지 사격장이 필요하다. 그 때문에 가까이 사는 사람들이 피해를 보았다면 마땅히 정부가 개입해 벌써 해결했어야 했다. 그러나 정부에게는 매향리 사람들의 고통이 ‘강 건너 불’이었다. 반미 시위가 계속되는 현실의 책임은 변화를 합리적으로 수용하지 못한 미국에도 있다. 하지만 피해자인 힘 없는 소시민의 안타까운 요구를 외면한 무능한 정부에도 책임이 있다. 미국과 한국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한·미 연합 전력은 전쟁 억지력의 핵심이며, 우리는 안전을 위해 그들이 필요하고 미국은 세계 방위 전략을 위해 한반도를 필요로 한다. 미국은 해외 시장의 절반 이상이 아시아에 있고, 동북아시아에서 전략적인 우위를 확실하게 다지기 위해 한국과 일본에 미군을 주둔시킬 필요가 있다. 형편이 이렇다면 그들을 무턱대고 비난하기보다는 그들로부터 실리를 얻어낼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용산 미군기지 유치하려 로비하기도

송탄은 시내에서 자동차로 5분만 달려도 논과 밭, 과수원과 목장을 만날 수 있는 작은 전원 도시이다. 미군이 송탄에 활주로를 개설한 것은 1952년이었다. 처음 그들은 이곳을 K-55라고 불렀고, 4년이 지난 1956년부터 오산AB라는 정식 명칭을 붙였다. 미군이 송탄에 주둔한 지도 어느덧 50년이 되어 간다. 주둔 역사가 긴 만큼 이들의 존재는 이곳 사람들의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지역 경제에 미친 영향도 만만치 않아 많은 사람이 직접이든 간접이든 삶의 고리가 미군과 연결되어 있다.

오산AB의 메인 게이트 앞 쇼핑몰에는 일반 상점 3백50여 개, 미군 클럽 40개, 부대와 계약한 호텔 16개 그리고 관광호텔 2개를 포함해 미군을 고객으로 하는 가게가 5백여 개 있다. 오산AB에 근무하는 한국인도 천명이 넘는다. 택시를 몰거나 카페테리아·장교 클럽·세탁소 등 여러 곳에서 일하고 있다. 이 숫자는 공식 근무자일 뿐이며, 패스를 발급받아 일하는 계약직까지 합하면 4천명 이상이 오산AB에서 일한다. 뿐만 아니라 부대 바깥에서 사는 미군이 2천명이 넘어, 집을 가진 사람들은 이들에게서 비싼 월세를 받고 있다. 미군은 송탄 주민에게 가깝고 익숙한 존재이며, 경제적 도움을 주는 홀대할 수 없는 이웃이다. 미군이 영외 거주를 하려면 커맨드 스폰서(Command Sponsor)가 있어야 한다. 커맨드 스폰서는 지휘관이 결정하며, 자격만 되면 월세 전액을 부대가 지불한다.

송탄 사람들은 오산AB를 통해 달러를 얼마나 벌고 있을까. 미군을 상대로 영업을 하는 이 지역 상인들이 지난해 은행과 환전소에서 바꿔간 달러는 정확하게 3억4천1백94만 달러,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3천8백36억원에 이른다. 쌍용자동차는 송탄 공장에서 지난해에 무쏘·코란도·이스타나·체어맨을 9만8천1백92대 생산해 1조3천5백95억원 매출을 올렸다. 변변치 않아 보이는 가게를 가진 상인들이 쌍용자동차 판매고의 30%쯤을 벌어들인 셈이고, 그것은 모두 달러였다. 미군이 현금보다 크레디트 카드를 많이 쓰고, 환전되지 않은 채 빠져나가는 달러가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액수는 이보다 훨씬 많다. 사정이 이쯤 되니 1990년 용산의 미군기지를 옮기겠다는 발표가 나왔을 때, 송탄 상인들이 시정자문위원회와 연대해 용산 기지를 유치하겠다고 로비한 사정을 알 만하다. 대략 이 정도면 송탄에서 오산AB의 존재 가치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전국에 주둔한 미군으로부터 얼마를 벌어들이는지, 또 서비스 질을 개선하면 얼마나 더 이득을 볼 수 있는지 계산조차 하지 않는 실정이다. 우리는 대체로 미군의 과소비나 퇴폐 풍조가 주둔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본다. 자녀 교육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그들의 저질 문화가 우리네 건전한 문화를 오염시키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그러나 이런 염려는 송탄에서만큼은 ‘기우’이다. 오산AB에는 미군과 미국인 군속이 6천8백여 명이나 있지만 8군 2사단의 보병에 비해서는 양질이다. 술 마시다 저희들끼리 주먹을 날리기도 하지만 한국 사람을 때리는 일은 거의 없다. 오히려 필자는 술취한 미군이 한국인 깡패에게 얻어맞아 줄행랑을 놓는 광경을 목격한 적이 있다. 미군이 대체적으로 저질이며 폭력적이라는 생각은 분명 편견이다. 미군 내부의 규율도 생각보다 엄격한 편이다.
고막을 때리는 엄청난 굉음과 함께 랜딩 기어를 내린 1백70t짜리 전략수송기 C 5가 오산AB의 활주로를 향해 고도를 낮추며 접근하고 있다. 괌의 앤더슨AFB나 하와이 히캄AFB에서도 날아오는 수송기들은 예전에 화물을 적재하고 남은 공간에 단돈 10 달러만 받고 휴가 떠나는 미군들을 태워주었다. 이런 항공기를 스페이스 어배일러블(Space Available)이라고 부른다. 몇년 전만 해도 주말이면 일본이나 괌에서 미군들이 10 달러짜리 수송기를 타고 오산AB로 앞다투어 왔다. 다른 나라에 비해 싼값으로 쇼핑하고, 음식과 술을 들며 여가를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산AB 기지 사령관이던 크리스 쇼 대령이 1996년 5월에 서명한 자료를 보면, 1995년에만 C 5, C 17, C 141 수송기를 타고 오산AB의 항공 터미널을 통과한 관광객이 8만명을 넘었다. 그러나 좋은 시절은 갔다. 지금은 물가가 비싸고 재미가 없어 그 절반도 오지 않는다. 상인들은 전에 비해 반도 못 버는 처지가 되었다. 달러를 아낌없이 내놓고 가던 그들은 물가가 여전히 싼 태국이나 중국으로 행선지를 바꾸었다.
비싼 물가에 시설 빈약해 관광객 ‘뚝’

스필버그가 만든 영화 한 편이 한국이 자동차를 1년간 수출해 번 것보다 많이 번다지만, 천하의 스필버그도 따라갈 수 없는 최고의 시장이 관광산업이다. 전국에는 관광특구가 20개 있고, 특구를 만든 목적은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해 달러를 많이 벌자는 것이다. 1997년에 관광특구가 된 송탄은 고객의 대부분이 외국인이고, 제주도와 이태원 다음으로 달러 수입이 많은 곳이다. 송탄은 관광특구로서 손색이 없는 곳이지만, 오산AB 앞의 쇼핑몰만 넓어졌을 뿐 3년이 지났어도 특별히 달라진 것이 없다.

10 달러짜리 항공기는 지금도 날아온다. 다만 23 달러 40 센트로 값이 올랐을 뿐이다. 이 돈만 내면 미국 어디든 갈 수 있어 거저나 다름없고, 미국만 아니면 전세계 어느 미군 기지에나 무료로 간다. 하와이의 미군보다 두 배나 쇼핑을 많이 하는 주일미군은 공짜 비행기를 타고 언제든 오산AB로 날아올 수 있다. 하지만 와 봐야 비싸진 물가와 더 봐줄 것이 없는 빈약한 시설에 실망할 일밖에 없다.

송탄에는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고 미국 풍물에도 익숙한 사람이 많다. 상인들은 달러 거래에 능숙하다. 지난해에 3억4천만 달러를 번 이들은 비즈니스를 위한 인적 자원과 능력이 있으며, 더 벌 테니 지원해 달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정부는 지원을 위한 시행령이 없다며 이들의 정당한 요구에 특구라는 타이틀만 달아주고 무대책을 대책으로 삼고 있다. 달러를 더 버는 방법은 없을까. 질 좋은 상품을 개발해 싸게 공급하고, 시설에 투자하고, 면세 혜택을 주어 이곳을 쇼핑 천국으로 만들면 된다. 그러면 전세계 미군들이 주말마다 스페이스 어배일러블을 타고 날아올 것이다.

금요일 오전 10시, 오산AB 곁의 양복점 케이씨 앞에서 처음 이곳에 배치받아 온 남녀 미군이 ‘다운타운 오리엔테이션’이라는 교육을 받고 있다. 유창한 영어로 미군을 교육하는 사람은 역대 7공군 사령관들이 단골로 이용하는 케이씨의 주인 이경추씨다. 그는 미군들에게 ‘케이씨 리’로 통하며 7공군의 명예 특무상사 명단에 이름이 올라 있다. “여기는 뉴욕이나 LA 한복판이 아니라구. 여기선 한번 사고 나면 환불이란 없는 거야, 알겠어?” 미군들이 저마다 고개를 끄덕인다. “놀러갔다가 택시 타고 오산 가자고 하면 실수한 거야. 오산에서 다시 오자면 10 달러 한 장을 또 써야 하니까. 송탄이라고 해, 송탄.” 당장 써먹을 교육을 받은 이들은 금세 적응해 가지만 사실 명색이 관광특구라면 이런 교육은 필요 없어야 한다. 택시 기사들이 신병의 고충을 숙지하고 있어야 마땅한 일이다. 바비큐를 지독하게 좋아하는 미군은 주말마다 모여 갈비와 닭고기와 소시지에 소스를 발라 굽는다. 기름 냄새가 묻어나는 숯불 연기에 미군의 입맛을 당길 수 있는 간단한 음식만 개발해도 한몫 단단히 잡을 수 있는 곳이 송탄이다.
주한미군 조종사들 고충도 이해해야

7공군은 주력인 제51전투비행단을 선두로 제5정찰단·제31특수작전항공단·제303정보단·제631공수기동지원단·제33구조단 6개 부대로 구성되어 있다. 51전투비행단은 F 16 전투기 30대와 대전차 공격기 A 10 21대가 공격력의 중심을 이루며, 미국 공군에서 전략적으로 최전선에 배치된 전투단이다. 제5정찰단은 스파이 항공기 U 2R를 고공에 띄워 평양을 들여다보고 있다. 콜사인이 ‘드래건 레이디’인 3백30억원짜리 고도 정찰기는 2만4천m 고도에서 휴전선을 따라 비행하며 북한을 100㎢ 넘게 촬영해내는 주한미군의 눈이다.

1999년 6월 서해에서 해군 초계함이 북한 해군 8전대의 경비정에 76㎜ 함포를 발사해 격침하던 그 시간, U 2R가 고공에서 북한을 감시하고 있었다. U 2R가 고성능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을 전자 신호로 바꾸어 지상국인 오산AB의 중앙방공통제소로 보냈고, 전투작전정보지원센터가 다시 영상으로 바꾸어 용산 한미연합사 지하 벙커 CC SEOUL의 초대형 스크린에 똑같은 시간대로 전송했다.

제31특수작전항공단은 일본 가데나AB에서 파견 근무를 하고 있다. 이들은 미군 헬리콥터 중에서 가장 크고 강력한 MH 53J 페이브로 5대를 가지고 있고, 극도의 비밀을 유지하며 적지에 침투해 수색 임무를 수행하는 미국 공군의 비밀 특수부대이다. 특수작전사령부 소속인 이들은 7공군 휘하에 있지만 지휘 체계는 다르다. 불타는 석양을 배경으로 페이브로 헬기를 타고 줄지어 날아가는 광경은 장관이다. 이들 외에도 오산AB에는 패트리어트 미사일부대가 있고, 우리 공군의 작전사령부와 30전투비행단, 그리고 방공포대도 같이 있다. 미군의 새로운 전략은 지상군 교전 능력보다 공군력과 첨단 병기를 중심으로 속전속결의 전격전(Lightning War)을 목표로 한다.

7공군은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도, 전쟁을 막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워싱턴에는 링컨기념관 부근에 한국전쟁 기념비가 있는데, 무명 용사들의 동상이 늘어선 이곳에는 이런 헌사가 새겨져 있다. ‘잘 알지도 못하는 나라와, 만나본 일도 없는 사람들을 지켜주기 위해, 국가의 부름에 따른 이 나라의 아들과 딸들에게 영광이 있기를.’

매향리 사건으로 언론으로부터 융단 폭격을 받은 7공군의 미군 조종사들은, 한국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현실에 심한 회의감을 느끼고 있다. 이들에게 화살만 쏠 것이 아니라, 이들의 고충도 한번쯤 돌아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