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들 '생물산업 키우기' 열풍
  • 광주·羅權一 주재기자 ()
  • 승인 2000.06.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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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단체들 생물산업 육성 붐···지속적 투자 · 연구가 성패 관건
요즘 자치단체마다 생물산업(Bio Industry) 붐이 일고 있다. 생물산업이란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생물(동식물·미생물)을 유전공학이나 생명공학 방법을 활용해 상품으로 만들어내는 산업을 일컫는 말이다. 이는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정보통신산업을 뛰어넘을 미래 산업으로 꼽힌다.

생물산업이 발전하면 인간의 장기를 가진 돼지를 길러 망가진 장기를 대체할 수 있다. 특수한 젖소를 복제해 의약 성분이 들어 있는 ‘약용 우유’를 생산할 수도 있고,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라는 다수확 신품종 작물과 기능성 쌀을 식탁에 올릴 수 있게 된다.

응용 분야 광범위…21세기 산업으로 꼽혀

생물산업은 응용 분야가 의약·화학·환경·식품·농업·해양·바이오 에너지 등 8개 부문에 이를 만큼 광범위하다. 현재는 미국·일본·유럽이 세계 시장의 90%를 장악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최근 산업자원부가 생물산업 육성을 국가 전략 산업으로 내걸면서 대기업에 이어 자치단체들이 너도나도 생물산업에 뛰어들고 있다. 자치단체마다 ‘정보기술(IT) 산업은 한물 갔다. 21세기는 생물산업(BT)이다’라고 외치며 앞다투어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현재 생물산업에 투자하거나 투자를 준비하고 있는 자치단체는 인천·대전·강원·전북·전남이다. 생물산업에 가장 먼저 뛰어든 강원도의 경우 춘천시가 지난 5월15일 서울에서 시제품 발표회를 열었다. 이 발표회에서는 춘천벤처지원센터에 입주한 14개 업체 가운데 8개 업체 제품이 선보였다. 아가리쿠스 버섯에서 추출한 면역 활성제 ‘화인 아가리쿠스 골드’를 비롯해 번데기 동충하초, 눈꽃 동충하초, 전립선암 진단시약 등이 공개되었다. 이 제품들은 유전공학 기술로 처리하거나 동식물에서 추출한 특수 성분을 활용한 것으로, 우리나라 자치단체가 개발한 생물산업 최초의 결과물인 셈이다. 김영호 산업자원부장관은 발표회에 참석해 생물산업 육성에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춘천시는 특히 생물산업 추진 전담 부서인 생물산업지원과를 설치할 정도로 생물산업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인천과 대전 역시 생물산업 중 의약·화학 분야에 중점 투자하고 있다. 인천은 송도지식정보산업단지 내에 생물산업벤처센터를 설립할 예정이고, 대전은 대덕연구단지의 풍부한 인력을 바탕으로 지난 6월2일 ‘바이오 테크놀로지 벤처센터’를 건립해 본격적인 연구·지원에 들어갔다. 충청북도와 경상북도도 생물산업단지와 바이오 테크노 벨트를 구성해 생물농업과 생물식품 육성에 매달리고 있다. 경상남도는 진주에 생명공학산업단지를 조성한 뒤 2백억원을 들여 생물산업지원센터를 세울 예정이다. 전라북도도 국비 50억원을 포함한 1백27억원을 투자해 전주시에 생물산업벤처기업지원센터를 건립할 계획이다.

전라남도는 한 발짝 더 나아가 내년부터 2005년까지 3천9백억원을 투자해 생물산업을 미래 산업으로 집중 육성한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전라남도의 생물산업 담당자는 “산업자원부가 부산의 신발산업, 대구의 밀라노 사업 , 창원의 기계산업, 광주의 광산업에 수천억원대를 투자할 예정이다. 전라남도 역시 지난해 산업자원부와 기획예산처의 조언을 받아들여 생물산업을 대규모 지역 특화 사업으로 키울 계획을 세웠기 때문에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기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전라남도는 나주에 생물산업단지를 조성하고 광주·목포·순천권에 생물산업을 육성해 농업·의약·해양 분야를 집중 개발할 생각이다.

생물산업에 대한 자치단체의 이같은 관심과 열기는 산업자원부의 권유에 힘 입은 바 크다. 산업자원부는 특히 지난 2월 생물산업발전 종합대책을 발표해 자치단체들의 생물산업 키우기에 불을 댕겼다. 연내에 ‘생물산업 발전 기반 조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생물산업 육성을 위해 전문 기금을 조성해, 2010년까지 세계 6위권의 생물산업 선진국으로 도약한다는 목표이다. 또 생물산업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 ‘생물산업상’을 제정하고, 정부의 연구개발 예산 가운데 생물산업 지원 비중을 2005년까지 10% 이상으로 끌어올려 21세기 바이오 사회(Bio Society)를 구현하겠다는 계획이다.

생물산업 관련 전문가들도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생물산업에 대한 자치단체의 투자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금호생명환경과학연구소 정창호 박사는 “자치단체뿐 아니라 기업들도 생물산업에 뛰어들어야 한다. 생물산업은 미래 산업으로서 무궁무진한 분야이다”라고 말했다.
‘묻지마’ 투자·중복 투자 부작용도

그러나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최근 동신대 동물복제연구소와 손잡고 (주)바이오 크리에이트라는 생명과학 회사를 창립한 정호선 전 의원은 “자치단체가 생물산업에 뛰어드는 현상은 바람직하다. 문제는 흐름에 처지지 않으려고 무턱대고 뛰어든다는 것이다. 고비용·고수익 벤처 산업이기 때문에 충분한 준비와 끈기가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완벽한 준비와 장기적 투자 계획이 뒤따라야 성공할 수 있다는 충고이다. 춘천시 생물산업지원과 담당자는 “춘천시는 5년 전부터 생물산업의 가능성을 보고 투자해 올해 겨우 시제품을 내놓았다. 끊임없는 연구·개발이 이루어질 토대를 자치단체가 연구진에게 마련해 줘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문제는 또 있다. 정부의 지원 약속에 따라 자치단체마다 서로 생물산업 육성 계획을 세워 대규모 국고 지원을 요구하고 있지만 산업자원부가 감당할 재원은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국고를 배분할 기획예산처가 예산 집행의 효율성을 따지고 드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문제이다. 실제로 지난 3월 진 념 기획예산처장관은 전라남도가 생물산업 육성 연구기반 조성비 명목으로 국비 3백75억원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한 것과 관련해 “사전 연구 없이 민자나 외자 유치 노력도 하지 않고 무작정 정부에 예산만 요구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자치단체들로서는 산업자원부만 믿고 거창한 계획을 세워놓았다가 정작 국고가 지원되지 않으면 냉가슴 앓을 처지가 될 수 있다.

게다가 중복 투자 우려도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실제 생물산업에 뛰어든 자치단체 가운데 생물농업 분야의 경우 전남·전북·경북·충북이 서로 자기네가 최적임자라며 밀어붙이고 있다. 이들은 국고 지원을 받아 생물산업지원센터 하나라도 더 건립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산업자원부 화학생물산업과 김창로 과장은 “정부는 여건을 갖추고 특성화한 분야에 연구 기자재 등 필요한 설비를 골고루 지원할 방침이다. 조건과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주먹구구식 계획을 세워 국고를 요청한다면 지원하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산업자원부는 생물산업에 멍석을 깔아준 것이고, 나머지는 자치단체가 알아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 생물산업 업체와 전문가들로 구성된 ‘한국생물산업협회’(회장 조완규) 김문기 부장도 자치단체들의 생물산업 투자 붐에 대해 “지역별 여건과 특성에 맞게 특화해야 한다. 꾸준한 연구와 투자가 필요하고 인내력이 요구되는 미래 산업이기 때문에 분위기에 편승하는 일시적인 붐은 바람직스럽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결국 생물산업이 21세기를 주도할 미래 산업으로 부각되고 있지만 성공 여부는 자치단체의 노력과 단체장의 의지에 크게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처럼 자치단체가 일시적인 붐에 의지해 연구 기반만 조성해 놓고 지속적인 투자와 관심을 기울이지 못할 경우 앞으로 예산만 낭비한 중복 투자였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생물산업은 벤처 산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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