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주범만큼 무거운 ‘하수인’의 죄
  • 崔 進 기자 ()
  • 승인 1996.0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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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광주’ 하급 지휘관·사병도 책임…목격자들 “그들은 인간 사냥꾼”
왜찔렀지! 왜 쏘았지!… 5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피, 피, 피! 비호남 사람들에게는 다소 소름 끼치게 들리는 <5월의 노래> 일부이다. 그러나 얼룩무늬 복장의 공수부대가 곤봉과 대검으로 남정네의 머리를 내리찍는 참상을 수없이 목격한 광주 시민들에게 ‘피의 노래’는 광주 사태의 진실 그 자체일 뿐이다. 그로부터 16년이 흐른 지금, 역사 청산 작업이 대대적으로 진행되면서 진압군 수뇌들은 속속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그러나 현 정권이 광주 학살자들을 단죄하면서 간과하고 있는, 그러나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부분이 있다. 다름 아닌 공수부대 하급 지휘관 처리 문제다. 위관급(소위·중위·대위) 장교나 하사관·사병 등 하급자들은 비록 지휘 계통의 말단에 있었다고는 하지만, 어찌 되었든 무고한 양민을 찌르고 쏜 당사자들이다.

그렇다면 역사 청산의 칼은 이들 하급자들의 목까지 베어야 하는가. 하급 군인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우리는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 우리가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상대방(시민들)을 죽여야 했다.” 일종의 정당방위 논리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당시 광주 시민의 눈에 비친 공수대원은 상관의 명령을 마지 못해 수행한 ‘소극적인 가해자’가 아닌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가해자’였다. 한마디로 인간 사냥꾼들이었다. 공수부대는 부대 특성상 하급 지휘관이나 장병들에게도 상당한 재량권을 준다. 그래서 그들에게도 일정한 책임이 있다는 여론이 최근 높게 일고 있다.

회사원 조정석씨(35·당시 대학 1년)는 지금도 그때를 회상하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광주공원 근처를 걷던 조씨는 착검한 M16 자동 소총을 든 공수대원 2명으로부터 ‘이유 없는 추격’을 받았다. 필사적으로 도망친 그가 겨우 몸을 숨긴 곳은 남의 집 창고 속 연탄더미 뒤였다. 거기까지 쫓아와 연탄더미를 칼로 일일이 찔러보던 공수대원은 퇴각 명령을 듣고서야 “아까운 사냥감 하나 놓쳤다”고 말하며 철수했다. 광주에서 그 정도는 얘깃거리조차 못된다. 유언비어라는 이름으로 떠도는 학살극만 해도 부지기수다. 그러고도 공수부대가 앵무새처럼 되뇌는 소리는 자위권 발동이라는 ‘공자님 말씀’이다.

대다수 광주 시민들은 이들 하급 지휘관이나 장병들도 반드시 색출해 단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명백한 살인 행위를 저지르고도 단지 계급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역사적·사법적’ 책임을 비켜 가는 것은 난센스라는 얘기다. 물론 현행 5·18 특별법은 하급 장교나 하사관 들을 처벌하기에는 다소 맹점이 있다. 사법 처리 대상이 주로 내란 음모 수괴와 주요 종사자 등 고위 지휘관에 맞춰져 있고, 부화뇌동자(하급자) 처벌 부분은 다소 모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5·18 전문가로 통하는 송선태 광주시청 전문위원(서기관)은 “광주 진압군 가운데 당시 하급 장교나 하사관에 관한 자료가 국방부에 보관되어 있다는 군 고위 관계자의 국회 증언이 있다. 정부의 의지만 확고하다면 그동안 미확인된 5·18의 실체를 많이 파헤칠 수 있다”고 말했다.

“양심 선언이 죄책감 벗는 길”

현재 검찰이 조사하는 학살극 중에는 하급 지휘관이나 사병의 진술 없이는 진상을 규명하기 어려운 사건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또 그 과정에서 살인마의 낙인을 피할 수 없는 극악한 범법자도 적지 않다. 가령 80년 5월23일 주남 마을에서 18명을 집단 사살한 11공수부대, 거기서 생포한 민간인 3명에 대해 “없애버려”라며 즉결 처분 명령을 내린 11공수 아무개 소령, 칼로 찔러도 안 죽자 확인 사살한 공수요원, 계엄군에게 손을 흔들던 국교 4년생을 3m 앞에서 난사해 사살한 11공수부대원, 술에 취한 채 진압 작전에 나선 7공수부대원의 경우 검찰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그들의 소재를 파악해 소환 조사할 수 있다.

여기서 또 하나, 5·18 진실을 규명하는 데 기대되는 것은 관련자들의 양심 선언이다. 당시 광주에는 3·7·11 공수여단 10개 대대 3천여 공수부대원이 투입됐지만, 현재까지 양심 선언한 군인은, 주남 마을 양민 학살을 증언한 최영신 중사(7공수 33대대), 교도소앞 암매장 사실을 폭로한 정규형 하사(3공수 11대대), 전두환씨가 광주를 방문했다고 주장한 문광식씨(전교사 운전병) 등 5명을 넘지 않는다. 그들의 몇 마디 증언은 광주의 진실을 파헤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대다수 공수대원들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말한다. “역사의 죄인으로 숨어 살지 말고 양심 선언을 하고 떳떳히 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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