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마가 토한 폐유로 환경 오염 심각
  • 丁喜相 기자 ()
  • 승인 1996.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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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청 기관차·객화차 사업소, 폐유·오수 무단 방출하는 ‘환경 사각지대’
그곳은 흡사 신이 저주를 내린 듯한 땅이었다. 행정구역상 서울 마포구 상암동과 수색동 일부에 걸쳐 있는 들판 약 50만평. 이곳 논둑을 따라 걷다 보면 누구나 기름진 토양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결코 옥토가 아니다. 기름(oil)에 전 시커먼 흙투성이이다.

논바닥에 듬성듬성 떠있는 기름띠, 온갖 악취와 기름 냄새가 진동하는 수로를 곁에 두고도 올해 벼농사철을 맞아 일손을 바삐 놀리는 농부들이 있었다. 마침 이곳 농토를 대대로 부쳐왔다는 김복진씨(54)를 만났다.

“기름요? 이제 만성이 되어서 항의조차 않고 삽니다. 그동안 서울시·환경부·농촌진흥청·철도청을 찾아다니며 수도 없이 진정을 내봤지만 달라지는 게 있어야지요. 우리나라 환경운동 하는 사람들은 다 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여기 흙과 물을 떠서 검사해 보려는 사람을 여지껏 본 적이 없습니다.”

그가 우리나라의 환경 정책은 물론 환경운동에 대해서까지 절망에 가까운 심정을 토로하는 사연은 이렇다. 약 30년 전 이곳 벌판 동편을 가로질러 서울지방철도청 산하 기관차사업소와 객화차사업소가 들어섰다. 그 뒤부터 이들 사업소가 마구 버리는 기름(폐유)으로 인해 벌판이 죽어가기 시작했다. 놀란 농민들은 줄기차게 철도청과 서울시에 대책을 호소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결국 30년간 흘러내린 기름은 이곳을 죽음의 땅으로 변모시켰고, 피해 농민들은 하나 둘 농사를 포기하거나 기름띠보다 높게 땅을 다져 논을 밭으로 바꾸었다. 그 결과 현재 이 벌판에는 무논이 만여 평 정도만 남았다. 그러나 기름으로 황폐한 토양과 그로 인해 매년 벼가 삭아 죽어가는 데 대해서는 아직까지 책임 소재 규명은커녕 실태조차 조사되지 않고 있다.
이곳 벌판을 죽음의 땅으로 만들었다는 서울지방철도청 산하 수색 기관차·객화차 사업소. 작업장은 벌판 가장자리를 따라 약 3㎞에 이르는 방대한 부지에 자리잡고 있었다. 겹겹이 놓인 철로 위에는 기름 제거와 물청소를 기다리는 기관차·객차 수십 량이 즐비했다. 작업장 앞쪽(고양시 방면)으로는 길다란 검수고(기관차 기름 제거와 물청소를 위해 설치된 지붕 얹힌 창고)가 5개 있었는데 이곳이 기관차사업소 작업장이다. 검수고 건물 밖에는 폐유 드럼통이 30여 개 어지러이 놓여 있고, ‘오물수거통’이라 쓰인 허리 잘린 드럼통에서는 관에서 떨어지는 기름이 넘쳐 그냥 흙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그 중 한 검수고에 들어가 보았다. 안에서는 기관차 2량을 세워두고 검수원들이 기름을 교환하는 동안 청소원들이 호스로 세찬 물을 뿜어 기름을 바닥으로 쓸어내리고 있었다. 마침 엔진 폐유를 빼내던 한 검수원은 그들의 일상적인 작업 내용을 이렇게 설명했다. “여기서는 하루 평균 1백10량씩 기관차를 정비한다. 폐유는 기관차 1량에 1드럼 정도 나오는데 우리가 드럼통에 담아두면 지정업체가 실어 간다. 문제는 누유인데, 대기하는 동안 기름이 땅바닥으로 흘러들기도 하고, 엔진을 청소하다 보면 바닥에 3㎝ 정도 기름이 남는다. 모두 물로 쓸어내는 수밖에 없다.”

사업소 관계자 “폐수 모두 정화되어 나간다” 강변

검수고 밖에서는 청소원들이 늘어선 객차에 세제를 바르고 물을 뿜어대는 식으로 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폐수는 그대로 땅에 떨어진 기름과 뒤섞여 빗물관으로 콸콸 흘러 들어갔다.

기관차사업소의 한 관계자는 기름 유출과 관련해 “그동안 기름물을 그대로 내버린다고 말썽이 많아 92년에 폐수처리장을 만들었다. 기관차 검수고에서 발생하는 기름찌꺼기들은 모두 폐수처리장에서 정화되어 나가므로 이제는 문제가 없다”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농토 주변에 흐르는 기름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기름 유출원을 추적해 나간 결과 폐수처리장 바로 옆에 있는 농토 주변에서 기름이 가득 차 흘러내리는 곳을 발견했다. 그런데 맨 상류가 막혀 있어 그 기름이 새나오는 곳을 알 수 없었다. 길다란 막대기로 너비 2m 가량의 ‘기름 개울’ 백여m를 쑤셔보다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눈에 띄지 않게 잡초더미에 은폐된 지름 50㎝ 가량의 낡은 콘크리트관이 나타난 것이다. 폐유는 여기서 나오고 있었다.

이 기름은 약 백m 하류에서 객화차사업소가 배출한 폐수와 합쳐져 한강 쪽으로 흘러갔다. 그 흐름을 따라가 보니 약 4㎞ 아래쪽이 난지 샛강이었다. 서부면허시험장 뒤편에 있는 너비 10m 가량의 난지 샛강 하류는 흐름이 멈춘 기름투성이 물이었다. 수색차량기지에서 유출된 기름은 농토만이 아니라 한강 하류 수질까지 오염시키고 있는 것이다.
서울에는 수색말고도 서울지방철도청 산하 기관차(동차) 사업소가 두 군데 더 있다. 청량리 기관차사업소와 용산동차사업소이다. 두 사업소 역시 수색과 똑같은 방식으로 기름 제거 작업을 한다. 그러나 용산과 청량리 사업소에는 주변에 별다른 민원 발생 대상이 없기 때문에 바로 지하에 매설된 하수관으로 기름을 흘려보내는 실정이다.

취재진은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먼저 용산구청 하수과를 찾았다. 이곳에서 확인하니 용산 지역의 모든 철도시설물이 배출하는 폐수는 전자상가 초입에 있는 ‘용산배수처리장’으로 쏟아져 들어간 뒤 덕천(원효로 지하를 따라 한강으로 흐르는 샛강)을 따라 나가고 있었다.

덕천의 종착지는 원효대교 북단 밑이었다. 굴 입구에 들어가 본 결과 덕천은 원래 빗물만 흘러나와야 하는 샛강인데도 한강물과 만나는 약 30m너비의 덕천 굴 끝에서는 온갖 오물과 기름띠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덕천 복개 도로를 따라 용산 배수펌프장으로 들어가 보니 이곳은 기름 폐수 농도가 훨씬 더 선명했다. 이곳 배수 펌프 시설을 관리하는 한 관계자는 “용산 차량기지의 모든 폐수는 이곳으로 흘러드는데, 원래 중앙은 빗물이 모여 한강으로 내려가고, 그 양쪽 콘크리트벽으로 칸막이된 관은 오폐수관으로서 고수부지에 설치된 오수관을 따라 난지도 종말처리장으로 가게 되어 있다. 그러나 콘크리트 벽이 오래돼 중간중간 허물어진 곳이 있어 사실상 오폐수 일부가 한강으로 흐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취재진은 용산 배수펌프장에서부터 기름 오염원을 가장 많이 배출하는 용산동차사업소까지 맨홀 뚜껑을 열어 확인하는 방식으로 거슬러올라갔다. 그 결과 기름물의 농도가 점점 더 짙어지면서 맨 위에서는 사실상 기름물인지 노천 송유관인지 분간하기 힘든 상황에 맞닥뜨렸다. 용산동차사업소 작업장 안에 있는 지하수 맨홀 뚜껑을 열었을 때는 시커먼 기름물이 보이고, 마치 유류저장소가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심한 기름 냄새가 코를 찔렀던 것이다.

용산동차사업소에서는 새마을호 기관차 검수와 기름 제거, 물청소 등을 담당하는데 하루 평균 30량 정도를 정비하고 있다. 이곳의 기름물 무단 방류와 관련해 용산동차사업소 기술과장은 “폐유는 작업상 부주의로 흘린 것이 많은데, 우리도 문제를 느끼고 작년에 오폐수종합처리장을 시공했다. 아직 시험 운전중이라 가동은 않고 있지만 문제를 보완하는 즉시 가동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물론 이곳 역시 폐수처리장은 검수고에서 발생하는 기름물만 처리하게끔 설계되어 있어 언젠가 가동하더라도 노지 작업으로 발생하는 오폐수는 사실상 계속 무단 방류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구청 단속은 약품 살포해 눈가림으로 넘겨

수색과 용산이 경부선·호남선·장항선 열차의 기관차 오폐수를 처리하는 곳인 데 비해 청량리기관차사업소는 중앙선 중 청량리-제천 구간 기관차와 경춘선·경원선(의정부-신탄리) 기관차를 담당하는 사업소이다. 규모가 용산사업소와 비슷해 하루에 처리하는 기관차가 30량 가량이다.

현장에 들어가 본 결과 청량리기관차사업소는 한마디로 우리나라 철도 환경 오염 방치 백년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축소판이라 할 만했다. 기름물을 청소하는 방식은 앞서의 두 지역과 다를 바 없었지만 시설은 훨씬 낙후해 있었다. 검수고 건물들은 20년대에 지은 것들로 콘크리트 벽이 떨어져 나간 채 철근이 흉물스럽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게다가 진입로인 회기역 방면부터 검수고까지 약 1㎞ 구간은 철로 주변 토양과 침목이 온통 기름으로 뒤범벅되어 있었다. 더러워진 모습을 한눈에 식별할 수 있을 만큼 심하게 오염되어 있었다. 즉 진입로에서는 짙은 기름자국으로 시작한 오염띠가 검수고 쪽으로 들어갈수록 기름 양이 많아지면서 검수고 앞 20~30m지점에 이르러서는 아예 철길안 침목이 잠겨 보이지 않을 만큼 곳곳에 흥건한 기름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그나마 청량리기관차사업소는 최근 1일 처리용량 50t에 이르는 폐수 처리 시설을 설치해 가동하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러나 이것으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도처에 널린 기름웅덩이가 폐수처리장으로 연결되지 않아 비가 오면 고인 기름이 곧바로 빗물을 따라 중랑천으로 흘러들고 있었다. 여기에 폐수처리장을 거친 물조차 지름 20㎝ 가량의 고무 호스 2개를 통해 아예 철로옆 빗물관으로 뽑아내 버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폐수처리장을 관리하는 담당자는 이곳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이렇게 말했다.

“보통 폐유수가 하루에 60t 정도 배출되는데 폐수처리장 용량이 50t에 불과해 넘치는 분량은 그냥 내보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비라도 조금 오는 날이면 배출량이 백t을 금방 넘어서서 사실상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무엇보다도 처리장이 수동식인 데다 폐기물 처리 자격증이 없는 우리가 관리를 하는 게 문제다. 동대문구청에서 가끔 단속을 나오지만 그런 날만 약품을 많이 넣어 눈가림 식으로 넘어가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곳 기름물은 빗물관을 따라 중랑천으로 곧바로 흘러들어 한강 오염의 한 주범이 되고 있다.

물론 이들 세 곳에서만기름물을 무단 방류하는 것은 아니다. 철도청 내부 자료에 의하면 이런 환경 오염은 전국 지방철도청 소속 모든 관련 기관들에서 벌어지고 있음이 확인되었다(표 참조).

문제의 심각성은 환경 보호에 모범을 보여야 할 정부기관인 철도청이 이처럼 엄청난 환경 파괴를 계속하고 있다는 데 있다. 더구나 일반 민간 사업장에서 배출되는 폐유 등 특정 폐기물은 폐기물관리법에 따라 엄격한 배출 규제와 정화 처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훨씬 많은 양을 배출하는 철도청만은 아직까지 이 법을 위반해도 별탈이 없었다(폐기물관리법 제25조, 제26조 4항, 제27조 등 위반).

물론 최근 환경 관련 법규가 갈수록 강화되면서 철도청이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4월 경영기획실 산하에 환경과를 신설한 것도 그 때문이다. 현재 환경과장을 맡고 있는 팽정광 서기관은 취재진이 들이민 철도 폐유 무단 방류 현장 실태와 관련해 이렇게 답변했다.

“사실 철도청도 환경 문제 1순위로 폐유수 문제를 꼽고 금년에 처리 시설 설치 비용으로 46억원을 투자할 계획이었는데 아직까지 예산이 확정되지 않았다. 내년부터 환경 개선 5개년 계획을 세우고, 현장의 문제를 정밀 조사해 근본 해결책을 강구하도록 하겠다. 지금까지는 철도가 환경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었지만 이제는 백년간 굳은 내부 의식부터 바꿔나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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