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석7조 첨단 신분증, 전자주민카드
  • 張榮熙 기자 ()
  • 승인 1995.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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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등록증·운전면허증·의료보험증 등이 카드 1장에…국민 통제하는 ‘리모컨’ 될 수도
주민등록증이 첨단 전자 카드로 바뀐다. 내무부 공무원들이 효과적인 주민 관리 시스템이라고 하여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치적으로 꼽는 주민등록증 제도가 꼭 30년 만인 98년께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신분증 제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국가기관이 발행하는 모든 신분증과 증서가 카드 1장에 통합되어 한 사람의 모든 신상 정보가 집적되는 새로운 신분증 시대를 맞을 전망이다.

내무부는 지난 3월 ‘주민등록 경신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이어 4월에는 심의 조정 기구인 관계기관합동협의회를 구성하고, 5월에는 실무 작업을 위해 6개 기관으로 이루어진 합동추진기획단도 설치했다. 이 기구들에는 국가안전기획부와 경찰청이 참여하고 있어 흥미롭다. ‘신분증=국가 보안’이라는 이 사업이 지닌 일단의 성격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증을 제조·발급하는 기관으로는 일찌감치 조폐공사가 지정되었다. 종합 데이터 베이스와 온라인망을 구축하고 발급 및 운용 소프트웨어 개발과 보급 업무를 수행할 전산망 사업자는 공개 경쟁을 통해 96년에 뽑을 예정이다. 내무부는 12월1일부터 한두 달 동안 과천시 중앙동 주민들을 대상으로 시범 사업을 벌일 계획인데, 시범 사업자로 계약된 데이콤이 전산망 사업자로 선정되는 데 유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내무부는 이 사업에 총 2천7백35억원을 쓸 작정이다. 재정경제원 예산실을 설득해 96년 예산에 3백억원을 배정받았다. 돈이 꽤 많이 드는 이유는 증 제작과 발급에 무려 총예산의 80% 가까운 돈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주민등록증은 시장·군수·구청장이 주민 등록이 된 사람 가운데 만 17세 이상자에게 발급하고 있다. 현재 전국민의 73.5%인 3천3백44만6천명에게 주민등록증이 발급돼 있다. 따라서 주민증 변경은 국민 대부분의 이해 관계가 걸린 사안일 수밖에 없다. 주민등록증의 주요 기능은 물론 신분 확인에 있다. 내무부가 주민등록증을 일제히 전자주민카드로 바꾸겠다고 하는 데에는 몇 가지 타당한 사유가 있다. 우선 종전의 주민등록증이 너무 낡고 촌스러워 어떤 형태로든 모양 바꾸기가 필요하다. 주민등록증이 최초로 발급된 것은 68년 11월이고 마지막 경신 작업은 83년 11월에 있었다. 12년이나 지난 것이다. 내무부는 현재의 주민등록증이 그동안 바뀐 얼굴 모습을 반영하지 못하는 등 신분증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간 7천억원 절약·공무원 5천명 감축 효과

증이 훼손·변질된 경우도 많다. 위·변조가 비교적 쉬워 범법 행위에 빈번히 악용되는 현실도 정부로서는 두통거리였다. 또 주민등록증은 제도적으로는 등·초본을 대신할 수 있게 되어 있지만 실제 쓰임새는 본인 확인 정도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가족 사항· 주소 이력 등이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전국민이 항상 소지해야 하는 중요성에 비해 기능이 단순해 활용률이 미미하다.

내무부 노장탁 주민과장은 “위·변조를 막으면서 정보화·세계화 시대에 걸맞는 다기능 신분증을 만들 수 없을까 고심했다”며, 이것이 전자주민카드로 전환하게 된 배경이자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플라스틱 카드에 IC(집적회로) 칩이 부착된 전자주민카드(스마트 카드)에는 주민등록증·운전면허증·의료보험증·국민연금증서 등 네 가지 증명서가 통합되며, 주민등록 등·초본과 인감증명서의 정보도 입력된다. 여기에 신용카드 기능까지 추가될 경우 이 카드 1장에 한 사람의 모든 공적 정보에서부터 재무 정보까지 담기게 되는 것이다(56쪽 상자 기사 참조).

국가가 발행하는 신분증을 전자 카드라는 형태로 통합할 경우 이에 따른 기대 효과는 상당히 클 것으로 보인다. 우선 현재 읍·면·동이 발급하고 있는 주민등록 등·초본과 인감증명서가 전자 카드로 대체되므로 민원인은 굳이 동사무소에 갈 필요가 없어진다. 아무 때나 편한 시간에 가까운 곳에 설치된 IC 판독기를 이용하면 된다. 개인의 인적 정보를 언제나 자신이 갖고 다니게 함으로써 민원 사항인 증명서 교부 제도를 주민 편의 위주로 개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일선 지방 행정 업무도 70∼80% 가량 줄일 수 있으며 운전면허·의료보험·국민연금 등 관련 업무의 인적 사항과 현주소를 전자 카드 1장에 모두 담았기 때문에 업무 처리가 빨라질 수 있을 것이다. 내무부는 국가 전체적으로 연간 7천억원이 절약되고 공무원 5천명을 감축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산한다.

한국인으로 태어나면 그 때부터 고유 번호가 부여되는 한국의 주민등록 제도는 세계적으로 거의 유례를 찾기 어렵다. 유럽연합 (EU)과 미국 등 구미 여러 나라들은 대부분 사회보장카드와 운전면허증 같은 증명서를 통해 주민을 간접으로 관리하는 체계를 갖고 있을 뿐이다. 주민등록 제도의 직접성 때문에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는 강력한 국민 통제 수단으로 악용되는 측면도 없지 않았다. 전자주민카드에 대해서는 많은 정보가 한 곳에 집적된다는 점에서 더욱 강력한 새 통제 수단이라는 주장도 없지 않다. 그러나 내무부의 생각은 정반대다. 전자주민카드는 민주적 관리 형태로 옮아가는 분수령이 된다는 것이다.

기술적인 측면을 거론하는 전문가도 있다. IC 카드는 최첨단 기술이며, 국가 신분증을 IC 카드로 만드는 것은 세계 최초이다. IC 카드가 없으면 전화도 걸 수 없을 정도로 대중화 단계를 걷고 있는 프랑스도 국가 신분증에 IC 카드를 활용하지는 않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초기 시범 단계에 그치고 있다.

그러나 역시 전자주민카드 도입을 둘러싼 최대 쟁점은 사생활을 침해할 가능성에 모아지고 있다. 정보 집적은 여러 가지 점에서 편리함과 경제적 효과를 가져올 것이지만, 역으로 누군가가 어떤 개인의 정보를 꺼내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가 차단 장치를 마련한다 해도 그 보호벽을 그리 신뢰할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김문환 교수(국민대·법학)는 “고도로 발전해가는 전자 기술과 컴퓨터 범죄 수법의 추세를 감안하면 일단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큰 혼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걱정했다. 김교수는 또 한국이 선진국에 비해 개인의 사생활 보호에 대한 인식이 엷고 법적 장치가 미흡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아직도 공권력은 개인 비밀 보호에 무감각”

그러나 절대 안전하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협의회의 일원인 서울대 IC연구센터 탁승호 소장은 “전자주민카드에는 다중의 특수한 암호 체계(알고리즘)가 쳐져 있다. 들여다볼 자격이 없는 사람은 절대 이 거대한 암호벽을 뚫을 수 없다”며 가장 안전한 사생활 보호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탁소장은 “현행 컴퓨터는 ‘사탄’ 같은 소프트웨어의 힘을 빌리면 제3자가 사용자번호(ID)와 비밀번호(password)를 얼마든지 도둑질할 수 있지만 IC 카드의 암호 체계는 스니커든 해커든 침투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물론 위·변조도 불가능하다고 한다.

공권력이 자의로 정보를 활용할지 모른다는 불신감도 만만치 않다. 한 익명의 법학자는 “금융실명제 실시 후에는 달라졌지만 실시 전에는 마구잡이로 금융 정보를 뒤졌다. 국가기관이 개인을 특별한 이유 없이 발가벗기는 사례가 드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피해 의식의 소산일지 모르지만, 공권력이 개인의 비밀 보호에 대해 무감각하다는 현실을 우려하는 것이다.

국가기관뿐 아니라 정보가 집적되어 있기 때문에 무차별로 노출될 수 있다는 걱정도 없지 않다. 가령 의사는 카드 소지자의 의료보험 내역·병력 등 진료에 필요한 정보를 꺼내 볼 수 있어야 하는데 그 때 다른 신상 정보도 같이 보게 될 가능성이 없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내무부의 한 관계자는 “하나의 기록을 방이라고 한다면 방과 방 사이에는 차단벽이 있어 절대 넘나들 수 없다”고 주장했다.

대검찰청 정진섭 검사(전산담당관)는 전자 카드를 도입하기 앞서 제도적 미비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자 주민등록증은 공신력이 있고 증명력이 높은 공문서로서 단연 첫손에 꼽히는데 아직 법률적으로는 문서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전산망 보급 확장 및 이용 촉진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이를 인정하려는 시도가 막 진행되고 있을 뿐이다.

중요한 신상 자료들을 통합 데이터 베이스를 통해 손쉽게 조회할 수 있다면, 최소한 그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면, 끔찍한 <1984년>식 사회가 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삼풍백화점과 같은 보이는 구조물이 무너지는 것 못지 않게 보이지 않는 ‘전자 구조물’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것 역시 무서운 일일 것이다. 전자주민카드의 성패는 안전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을 완전 제거하는 데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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