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모악산 할퀴는 개발의 삽질
  • 전주·나권일 광주 주재기자 ()
  • 승인 1995.1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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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모악산에 인접 자치단체 앞다투어 사업 벌여… 환경단체 “위락시설 설치 안된다”
전 라북도 도립 공원이자 전주의 대표적 명산인 모악산(母岳山)이 김제시와 완주군 등 인접 자치단체들의 무분별한 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러자 전북 지역 환경단체들이 주도하는 범도민적인 ‘모악산 살리기 운동’또한 거세지고 있다. 게다가 최근 완주 군청이 발주한 ‘모악산 관광지 조성 사업’이 이창승 전주시장(50)까지 개입한 입찰 비리 사건으로 이시장이 구속되고 공사가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해 모악산 개발을 둘러싼 공방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모악산 관광지 조성 공사는 완주군(군수 임명환)이 지방 재정을 확충하려고 구이면 모악산 자락 4만5천여 평에 2001년까지 1백70억원을 들여 호텔·수영장·골프 연습장·상가를 갖춘 대단위 관광단지로 개발하려는 야심찬 사업이다. 완주군은 지난해 12월 전북도로부터 관광지 지정을 받아 올해 1차로 32억원을 들여 상가·주차장·화장실 등 기반 시설을 갖추기로 하고 공사에 들어갔으나, 이번 입찰 비리 사건으로 중단된 상태다.

완주군과 함께 김제시(시장 곽인희)도 금산사 입구인 금산면 모악산 기슭 임야 2만여 평에 올해부터 97년까지 1백62억여 원을 투입해 썰매장과 공연장 등 각종 놀이시설과 가족 호텔을 갖춘 대단위 관광휴양단지‘모악랜드’를 조성할 계획이다. 김제시는 이를 위해 93년 시와 지역 중소기업이 공동 투자(김제시 51%, 민간 49%)한 제3섹터 방식의 ‘김제개발공사’를 설립해, 현재 부지의 80%를 매입하여 연말께 착공할 예정이다. 모악산 개발 바람이 일자 인접한 전주시도 모악산 등산로인 중인동 지역을 개발해야 한다는 여론이 이는 등 모악산은 최근 수난을 겪어 왔다.

완주군은 전주시장까지 개입된 입찰 비리가 밝혀지자 지난 10월18일 서둘러 시공업체인 우성종합건설에 공사 중지 명령을 내렸다. 말썽 많던 모악산 관광단지 개발 공사는 결국 진입로와 토목공사 등 전체 공정의 10%가 진행된 상태에서 중단됐다. 이에 따라 50만 전주 시민의 휴식처인 모악산은 재판 과정에서 유·무죄가 가려질 때까지 주변 야산과 진입로가 파헤쳐진 상태로 마냥 방치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완주군이 추진하고 있는 모악산 개발 공사가 중단되자 전북 지역 환경운동 단체들은 모악산 개발을 전면 재검토하라고 요구하였다. 이들은 YWCA·흥사단 등 시민단체와 연대해 공동대책위를 꾸리는 등 범도민적인 ‘모악산 살리기 운동’의 불을 다시 지필 기세이다. 또 범도민서명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관련 지방자치단체장들과 면담을 추진하고, 지리학자 최창조씨와 김지하 시인 등을 초청해 대중 강연도 실시할 예정이다.

김제시와 완주군 등 모악산을 끼고 있는 자치단체와 전북 지역 환경단체들은 지난해부터 모악산 개발을 둘러싸고 지방자치단체들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여 왔다. 전북환경운동연합·황토현문화연구회·한국자연보존협회 전북지부·전북산악연맹 등 네 단체는 ‘우리 산하를 살리는 모임’을 결성해 지난 9월17일 모악산 정상에서 ‘모악산 살리기 범도민 결의대회’를 열고 지방자치단체들의 무분별한 개발에 제동을 걸었다.

“생태·유적 탐방지로 개발해야”
‘모악산은 미륵 불교의 본산인 금산사가 깃들어 있고, 동학과 증산교 등 수많은 민간 신앙과 사상을 태동시킨 전북 명산이며, 식물 4백40여 종과 동물 4백48종, 곤충 수백 종 등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고 있어 생태계 보존이 꼭 필요한 지역이므로 환경을 고려한 개발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이 단체들이 반발하는 이유이다.

모악산 살리기 운동이 벌어지자 각지에서 동참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김지하 시인은 ‘母岳을 훼손하면 七山바다가 검게 물들 것/… 모악은 靈胎를 모셨다/어머니의 배를 가를 셈인가’라는 자작시를 보내와 모악산 개발에 반대하는 뜻을 전했다. 20여 년 동안 무궁화보급운동을 펴온 조용조씨(49·김제시 금산면)는 느릅나무 묘목 만그루를 환경단체에 기증하고 느릅나무가 잘 자라는 모악산에 심어달라고 부탁했다.

모악산 살리기 운동을 벌이고 있는 전북환경운동연합 유영전 사무국장은 “모악산은 전문가와 시민들의 공청회를 거쳐 자연 환경과 문화 유산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개발해야 한다. 먹고 마시고 노는 위락시절 위주의 개발보다는 모악산 환경에 맞게 식물원·자연박물관·자연학습교육장 등 생태관광(eco-tour) 형태나 역사·문화 유적 탐방지로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발 7백94m의 전북 도립 공원으로 전주시·김제시·완주군에 걸쳐 있는 모악산은, 수려한 자연 환경과 문화 유산으로 매년 40만 탐방객이 줄을 잇고 있는 명산이다. 계룡산과 함께 ‘민족 종교의 메카’로 꼽히는 모악산이 자연과 조화를 이룬 최소한의 개발로 보존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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