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탄현아파트, 시공사 · 조합원 3개월 분쟁 전말
  • 문정우 기자 (mjw21@e-sisa.co.kr)
  • 승인 2000.1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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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중공업, 아파트 분양대금 받고 사업 백지화 ··· 주택조합원 항의 사태 3개월째
지난 11월18일 오전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에서는 삼성그룹 창업자인 고 이병철 회장 13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추모식은 고인의 유족과 친지 그리고 국내외 인사 천여 명이 참석해 성대하게 치러졌다. 그런데 삼성측은 이 날 추모식에 참석하려는 불청객들을 막으려고 경기도 일산과 용인 그리고 서울 서초동 대로에서 일대 활극을 벌였다.

이 날 아침 어스름이 채 가시지 않은 6시께 일산 정발산역 근처 일산 삼성탄현아파트 주택조합 모델 하우스 옆에서는 관광 버스 2대가 시동을 걸고 서 있었다. 그 때 갑자기 대형 트럭 4대와 사람을 가득 태운 버스·승용차가 들이닥쳤다. 트럭 운전기사들은 순식간에 트럭을 몰아 관광 버스를 에워싸고 꼼짝 못하게 한 뒤 사이드 브레이크를 걸고 차에서 내려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버스와 승용차에서 내린 사람 3백여 명은 모델 하우스를 둘러쌌고, 그 중 몇몇이 품 속에서 무엇인가 꺼내들고 관광 버스의 백미러를 깨뜨렸다.

이 와중에 관광 버스를 타려던 삼성탄현아파트 조합원과 이를 저지하려는 사람들 사이에 충돌이 벌어져 조합 비상대책위 총무 윤현란씨(38·여)가 실신해 119 구급차에 실려갔다. 관광 버스 타기를 포기한 조합원 몇몇이 승용차로 용인을 향해 출발하자 그들을 막던 사람들도 차를 몰아 그 뒤에 바짝 따라붙었다. 모든 일이 벌어지는 동안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팔짱을 끼고 지켜보기만 했다.

이 날 관광 버스 봉쇄작전을 지휘한 사람은 삼성중공업(대표이사 권상문) 손득남 이사였다. 조합원들의 주장에 따르면, 투입된 사람의 상당수는 ‘중국 영화에 등장하는 무술 고수처럼 몸놀림이 날렵한 프로들’이었다. 이들은 관광 버스 운전기사들을 불러내 100만원씩 쥐어준 것으로 나중에 밝혀졌다.

비슷한 시각 서울 서초구청 앞에 서 있던 삼성탄현아파트 조합원들의 관광 버스도 삼성중공업 직원들로부터 습격을 받았다. 갑자기 관광 버스 3대가 앞을 가로막더니 그 안에서 점퍼를 입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그들 중 몇몇이 품 안에서 손도끼(삼성중공업 관계자는 망치라고 주장했다)를 꺼내들고 버스 유리창을 내려치기 시작했다. 그들은 버스 안에 사람이 타고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날리며 도끼를 휘둘러댔다. 그들의 능란한 도끼질에 공장에서 뽑은 지 며칠 되지 않았다는 새 관광 버스는 순식간에 폐차와 같은 몰골로 변했다.
삼성측 직원, 조합원 탄 버스에 손도끼 휘둘러

버스에 있던 조합원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7명을 서초경찰서로 연행했는데 그들은 모두 삼성중공업 직원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으면서도 조합원들에게 “우리가 잡혀 들어가면 나중에 가만 두지 않겠다”라고 계속 협박했다. 연행된 7명 중 직접 버스를 파손하는 데 가담한 4명은 조사를 받고 불구속 입건되었다. 삼성중공업측은 버스 기사들에게 상당한 액수의 손해배상금과 위로금을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산에서 승용차를 타고 용인으로 향한 조합원들은 에버랜드에 도착하기도 전에 삼성중공업 직원들의 제지를 받았다. 미리 무전기로 조합원들이 타고 가는 승용차 번호를 통고받은 삼성중공업 직원들은 마성 톨게이트에서부터 조합원들을 색출했다. 톨게이트에서 이들이 멋대로 차량을 통제하는데도 도로공사 직원들은 무력하기만 했다. 이들과 승강이하는 과정에서 여성 조합원 한 사람이 폭행당해 실신했다.

이들의 저지선을 용케 뚫고 에버랜드 근처에 도착해 플래카드를 거는 데까지 성공한 조합원 11명은 더 험한 꼴을 당했다. 그들은 삼성 직원들에 의해 버스에 강제로 태워져 근처 삼성 건물로 끌려가 추모식이 끝날 때까지 연금당했다. 몸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여성 조합원 1명이 또다시 실신했으며, 남성 조합원 1명은 플래카드에 목이 졸려 상처를 입었다.

세계 초일류 기업을 지향한다는 삼성이, 일 처리가 매끄럽고 세련되기로 소문난 삼성이 어째서 이같이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게 되었을까. 이 날 부녀자와 노인이 태반(토요일이었지만 아침 일찍 시위가 계획되어 남성 조합원들은 거의 시위에 참석하지 못했다)인 삼성탄현아파트 조합원들에게 보여준 삼성중공업 직원들의 행태는 1970년대 재개발 지역을 횡행하던 해결사들과 다름이 없었다.

1999년 5월11일 삼성중공업·중양컨설팅·산전건업 3자는 일산구 탄현동 107번지 외 45필지에 조합아파트를 짓기로 합의하고 약정서를 체결했다. 삼성중공업은 공사 시공과 모델 하우스 건립 그리고 자금 및 품질을 관리하기로 했으며, 산전건업은 사업부지 제공과 인허가 획득, 중양컨설팅은 조합설립인가 획득 및 설계와 감독 등을 맡기로 했다. 이 약정에 따라 1999년 11월 삼성탄현조합아파트 분양 모델 하우스를 짓고 조합원을 모집해 삼성중공업측이 조합원들로부터 1백14억원을 받았으나 현재 이 사업은 백지화한 상태이다.

삼성중공업 계좌에는 조합원들이 낸 돈이 한푼도 남아 있지 않다. 사업이 백지화한 까닭은 인근 군부대가 군 작전상 문제의 땅에 아파트를 지을 수 없다고 거듭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 날 고 이병철 회장 추모식에 참석해 시위하려다 봉변한 사람들은 바로 삼성탄현아파트 조합원들이었다.
1백14억원의 행방은?

그간의 경위를 살펴보면, 조합원들이 고인의 추모식에까지 쳐들어갈 정도로 독한 마음을 먹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조합아파트는 보통 집 없는 조합원들이 모여 먼저 조합을 결성하고 시공사를 선정하는 경우와 시공사가 주도해 조합을 결성하는 경우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조합장이 돈을 횡령하는 사례가 빈발해 최근에는 후자를 많이 선호한다. 이름 있는 대기업이 나서 조합을 관리하면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탄현아파트가 바로 전형적인 후자의 경우이다. 거의 모든 조합원은 이름도 모르는 산전건업이나 중양컨설팅이 아니라 삼성 브랜드를 보고 조합에 가입하고 돈을 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삼성은 자기 브랜드에 걸맞는 사전 조사와 사후 관리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우선 문제의 부지는 애초부터 아파트를 지을 수 없는 땅이었다. 군부대는 이미 1998년 주택공사의 질의에 ‘절대 아파트를 지을 수 없다’고 답변했다. 군부대와 고양시는 삼성중공업과 조합이 조합원을 모집하고 돈을 걷어들이는 동안, 또 그 이전부터 수 차례 구두와 문서로 경고했지만 이를 무시했다. 그리고 올해 6월 이후 사업을 계속하기 어렵다고 결론이 났는데도 조합원들에게 사실을 고백하지 않았다. 공사가 까닭 없이 지연되는 데 불안을 느낀 조합원들이 고양시와 군부대에 문의해 실상이 알려지게 된 것이다.

현재 조합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최운관)와 삼성중공업은 3개월째 협상을 하고 있다. 그런데 삼성중공업은 ‘원금은 최대한 보장하겠다’는 구두 약속만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11월18일 일어난 불상사도 조합의 문서 약속 요구를 삼성중공업이 거부해 촉발된 것이다. 최운관 비상대책위원장은 “이제 찾아다니며 협상하지 않겠다. 삼성이 찾아와 협상하자고 애걸할 때까지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 진상을 알리겠다”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강경론자들이 국면을 파국으로 몰아간다고 불평한다. 그러나 한 조합원은 “대주주(이재용)의 상속 지분을 늘리려고 수천억원을 손해보는 삼성이 깡패를 동원해 서민들이 평생 모은 돈을 떼먹으려고 덤비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느냐”라고 반문한다.

피해자 조합원이 만든 사이트 게시판에 실린 글이 인상적이다. ‘전 돈 받으면 이 나라 뜰 겁니다. 우리나라 최고 재벌이 서민을 사기쳐서 먹고 사는 나라에서 무엇을 더 바라고 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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