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기 참사 이후 여행사 '썰렁'
  • 成耆英 기자 ()
  • 승인 1997.08.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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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이후 괌 여행 시장 얼어붙어… 싸구려 상품·바가지 쇼핑도 악영향 미쳐
한여름 여행업계에 때아닌 한파가 몰아닥쳤다. 본격 휴가철이 막 시작된 지난 8월6일 괌 니미츠 힐에 추락한 KAL기와 함께 괌 노선 예약률도 덩달아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결국 이번 참사는 올 여름 최대 휴가지로 꼽히던 괌의 여행 특수를 동강내 버렸다.

각 여행사에 하루 20건이 넘게 걸려오던 괌 여행 관련 문의 전화는 아예 끊겼고, 예약한 여행객의 30% 가량이 이를 취소하거나 사이판· 동남아 등 가격대가 비슷한 다른 노선으로 ‘비상 탈출’해 버렸다.

일부 여행사에서는 거의 매일같이 내는 신문 안내 광고에서 괌 상품을 아예 없애기까지 했다. 여행사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에게 괜히 이미지만 나쁘게 할 것이라는 판단에서이다(여행사의 신문 광고는 그 날의 예약률을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 괌을 비롯한 남태평양 지역은 KAL기 참사 직전까지만 해도 한국인 해외 여행의 30% 정도를 차지해 관광 목적 여행으로는 가장 큰 시장을 이루고 있었다. 특히 괌의 경우는 사고 전까지도 하루 평균 4백명 가량이 찾을 만큼 단일 관광지로는 가장 각광을 받아왔다.

왜곡으로 얼룩진 관광지 괌

괌의 처지에서도 한국은 가장 큰 고객 가운데 하나였다. 전체 인구가 14만명인 괌에 지난 한 해에만 관광객이 1백36만여 명 입국했는데 그 중 한국인 관광객이 19만5천명이었다. 괌을 찾은 관광객의 14.3%를 차지해 일본 다음으로 2위였다. 게다가 한국인 관광객 숫자는 92년 이후 해마다 거의 두 배씩 증가해 왔다.

구티에레즈 괌 지사가 한국인 유족이 가 있는 곳마다 찾아가 머리를 조아리는 것에는 사실 이런 배경도 무시할 수 없다. 주민 총생산의 3분의 2 가량을 관광 수입에 의존하는 괌으로서는 일본 다음으로 큰 고객인 한국인 관광객이 빠져 나가는 것을 어떻게든 막아야 하는 것이다.

더욱이 괌 여행 상품은 이번 사고가 나기 이전에도 이미 어느 정도 찬바람을 맞고 있던 터였다. 관광객 숫자가 지난해 초부터 주춤거리기 시작하더니 올해 들어서는 전년과 비교해 뚜렷한 감소세를 보인 것이다.

KAL기 사고가 난 지난 8월 초순은, 괌 여행객 숫자가 올해 들어 15~20%씩 줄어들기 시작하자 여행업계가 휴가철에 여행객 숫자를 늘려 보려고 안간힘을 다하던 시기였다. 경기 불황으로 인한 해외 여행 위축과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각 기업의 위로성 여행, 즉 인센티브 여행이 줄어들면서 울상을 짓던 해외 여행업계는, 여름 휴가철 특수를 발판으로 하여 신혼 여행 상품이 증가하는 9월 이후 가을 시장으로 ‘안정 진입’하려고 노리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번 사고가 하향 곡선을 긋기 시작한 괌 관광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사고 원인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면서 괌 공항의 관제 결함 등이 잇달아 지적되는 것도 여행업계의 가슴을 졸이게 한다. 괌 공항의 시설 미비가 사고 원인으로 드러나면 괌 운항 노선 자체가 영향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한항공의 야간 운행 중단 조처까지 나오자 이번에는 여행객들로부터 그동안 ‘공포의 노선’에 탑승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과 배신감마저 표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습한 열대성 기후 탓에 야간에 기상이 급격히 나빠지는 일이 잦은데도 야간 운항을 강행한 것은 경비 절감을 통해 저가 상품으로 승부한다는 여행사들의 전략 탓이었다(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그동안 대부분의 여행사가 무조건 물량 위주의 마케팅 전략에 근거해 ‘더 싸게, 더 싸게’만을 노리면서 여행 시장을 왜곡해 왔다는 지적은 소비자뿐만 아니라 업계 내부에서도 제기되어 왔다. 괌 노선을 담당하는 여행업계의 한 관계자는 “괌이야말로 지난해부터 한국인들에게 왜곡으로 얼룩지기 시작한 대표적인 관광지이다. 20만원대 덤핑 가격으로 괌에 다녀오고 나면 ‘호텔 시설이 다른 관광지에 비해 형편없고 주로 한국인 상점에서 하는 쇼핑은 비싸기 이를 데 없다’는 불평만 늘어놓게 된다”라고 말한다. 결국 소비자들의 이런 인식은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가격을 오히려 불신하게 만드는 결과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행사간 경쟁이 격화하면서 이런 식의 ‘출혈 경쟁’에 아무도 제동을 걸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번 괌 참사의 여파를 놓고 여행업계에서는 다른 분석을 내놓는 사람들도 있다. 92년부터 지난해까지 연인원 60만명이 넘는 한국인이 괌을 다녀왔기 때문에 괌 여행은 이미 ‘상한가를 쳐서’ 관광객이 더 이상 늘지 않으리라는 전망이 그것이다. 이런 전망을 내놓는 사람들은, 지난해부터 괌 노선에 가격 파괴 경쟁이 시작된 것을 이 노선이 하향길로 접어든 증거로 들기도 한다. 그러나 어쨌든 괌 관광이 내리막길을 걷는 데 이번 참사가 액셀러레이터 구실을 하리라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여행업계에 충격과 교훈 남긴 참사

여행사 관계자들은 시간이 가기만 기다릴 뿐 아무런 대책이 없다고 한숨만 내쉬고 있다. 9월에 접어들어 신혼 여행이 몰릴 때가 되면 자연스레 사정이 조금 나아지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이번 참사가 가뜩이나 위축된 해외 여행 시장에 더 큰 한파를 몰고 오는 전주곡이 아니냐는 성급한 관측도 나온다. 지난해 말부터 해외 여행 업계에 불길한 징조가 나타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행업계는 지난해 말부터 극심한 고객 감소 현상을 겪어 왔다. 경기가 전반적으로 침체해 해외 여행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정부도 각급 기관에 공문을 보내 해외 여행을 자제하라고 지시했다. 지난해 10월까지만 해도 20%가 넘는 성장률을 보이던 해외 여행이 11월을 기점으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데는 이런 요인들이 작용했다. 이런 마당에 이번 참사가 다른 노선에 대한 심리적 불안감으로 번지는 사태를 막기 위해 여행 관계자들은 노심초사하고 있다.

여름 휴가가 절정을 향해 치닫던 순간에 터진 이번 사고는 여행업계에도 충격과 함께 적지 않은 교훈을 남긴 것으로 보인다. 무리한 야간 운항과 덤핑 경쟁 등이 사고의 한 요인이라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여행사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KAL기 추락 현장인 니미츠 힐에 세운다는 한국인 희생자들의 위령탑이 앞으로 괌을 찾는 한국인들에게는 또 하나의 필수 관광 코스가 되겠지만, 한국인 관광객들은 이 위령탑 앞에서 이번 사고가 남긴 우리 관광산업의 치부를 먼저 반추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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