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강 뱃길 다시 열자”운하 건설 여론 비등
  • 나주·羅權一 광주 주재기자 ()
  • 승인 1998.10.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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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역 주민들 사이에 운하 건설 여론 비등…물류비 절감·환경 복원 등 다목적 계획
‘영산강에 다시 뱃길이 열려 2천7백 t급 바지선이 화물을 가득 싣고 국내 유일의 내륙항 등대가 있는 영산포항에 정박한다. 유려한 강변을 따라 소형 유람선이 지나가고, 관광객들은 민물장어 요리로 유명한 나주 구진포 나루에 내려 조선조의 천재 시인 백호 임 제가 나라의 왕을 ‘황제’라 칭하지 못하는 조선의 현실을 통탄했던 영모정을 둘러본다. 관광객들은 내친 김에 남도의 젓갈 시장과 홍어 시장도 돌아보고, 굽이굽이 영산강변에 있는 열여섯 개 나루를 거치며 영산강 생태와 문화 유적 관광을 즐긴다.’

건설비, 경인운하 사업비의 10% 남짓

위는 영산강 뱃길 복원이 가져다 줄 장밋빛 청사진 가운데 하나이다. 최근 영산강 유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76년 영산방조제 공사로 뱃길이 끊어진 영산강의 뱃길을 복원해 내륙 수운 기능을 담당할 운하를 건설하자는 여론이 활발하게 일고 있다.

이같은 주장은 올해 5월 목포해양대학교 김형근 교수가 학술 세미나를 통해 구체적인 가능성을 제시하면서부터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김형근 교수는 ‘영산강 뱃길 복원과 선박 운항 및 재원 조달 방안’이라는 연구를 통해 ‘3백t급에서 2천7백t급에 이르는 수운용 바지선이 드나들 수 있는 영산강 운하를 건설하는 데 2천2백억원 가량이 필요하다. 이는 경인운하 건설 비용의 9분의 1이고, 부산 가덕도 신항만 건설 비용의 25분의 1이기 때문에 영산강 운하 건설을 국책 사업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오른쪽 인터뷰 참조).

또 수년 전부터 나주 지역에서 영산강 뱃길 복원을 지역 운동으로 벌여온 ‘영산강 유적 답사회’ 김창원 회장(46·나주시 부덕동)도 “강과 바다는 하수구가 아니라 자원이다. 식량 생산의 젖줄이자 먹거리를 운반하는 핏줄인데도 우리나라는 너무 육상 교통에만 의지한 채 내륙 수운을 무시해 왔다. 영산강 뱃길 복원은 광주에서 목포에 이르는 전라도 서남권 경제 교류를 활성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현재 영산강 뱃길 복원 사업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있는 나주시(시장 김대동)는, 영산포 나루에서부터 무안군 몽탄 나루에 이르는 15㎞ 뱃길을 복원하는 생태문화 관광 코스 개발을 추진할 계획이다. 나주시는 이를 위해 내년에 전문기관에 용역을 맡겨, 뱃길 복원 사업의 경제성과 생태문화 관광 코스 개발을 위한 타당성 조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나주시청 학예연구사 김종순씨는 “영산강에 배를 다니게 하자는 것은 죽어가는 강을 살리자는 얘기다. 영산강변은 주변의 나루터와 정자에 강변의 정취가 어우러져 생태 관광 코스로 최적 조건을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

나주시는 또 장기적으로 광주 서창 지역에서 목포 하구언에 이르는 ‘영산강 운하’ 건설이 필요하다고 보고, 담양 장성 화순 함평 무안 영암 목포시 등 영산강 유역 8개 시·군 협의체 구성을 제안해 최근 긍정적인 반응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빠르면 연내에 영산강 유역 8개 시·군 협의체가 구성되어 영산강 뱃길 복원사업이 국책 사업으로 건의될 것으로 보인다.

광주·목포·나주 공업기지 활성화 전제되어야

전라남도도 최근 제4차 국토종합개발계획 수립 작업을 진행하는 교통개발연구원에 전남 지역의 현안 사업 가운데 하나로 영산강 뱃길 복원 사업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져, 영산강 운하 건설이 국책 사업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인지 여부가 주목된다. 영산강은 총 유로 연장 2천7백40㎞에 유역 면적만도 광주·전남 총면적의 27.4%를 차지하는 호남의 젖줄이자 우리나라 4대 강의 하나이다. 그러나 76년 영산방조제가 건설된 뒤로 생태학적 측면에서 강이 아니라 호수로 전락했다. 광주와 인접 시·군의 생활 하수·축산 폐수가 섞여들면서 썩어가는 강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그동안 영산강을 살리자는 운동이 각계 각층에서 지속적으로 펼쳐져 왔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환경 오염 방지와 쓰레기 줍기 행사에만 그쳤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산강 뱃길 복원이 이루어진다면, 강 준설과 영산강 유역 주민들의 환경 의식 고취 등으로 영산강을 살릴 수 있는 획기적인 계기가 마련되는 셈이다.

향토사학자 김정호씨(나주 향토문화진흥원장)는 “뱃길 복원과 운하 건설은 물류 비용을 절감하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경제적 효과도 있지만 수운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는 의미도 크다. 물을 두려워하는 우리 국민에게 ‘친수(親水) 정서를 고양시켜 해양 문화에 익숙케 하는 의미가 크다. 국민성을 개혁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영산강 뱃길 복원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헤쳐가야 할 암초가 많다. 우선 국책 사업으로 지정되어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목포 하구언 방조제를 확장하고 오버 브리지를 건설해야 하는데다 물막이 공사도 해야 한다. 뱃길이 열려 운하가 건설되면 내륙 교통 중심인 현재의 육상 교통 체계도 바꾸어야 하고, 화물 수송에 따른 경제성을 확보하려면 광주 목포 나주 같은 내륙 공업기지의 활성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때문에 영산강 뱃길 복원을 ‘장밋빛 꿈’으로 보는 이도 적지 않다.

이와 관련해 86년부터 10년 동안 영산강 유역과 주변 지역을 답사하고 그 결과물을 <영산강 삼백오십리> 라는 책으로 묶어낸 향토사학자 김경수씨(39·향토지리연구소장)는 “선진국 운송 시스템에서는 운하의 비중이 크다. 남한의 절반도 안되는 네덜란드는 7천40㎞나 운하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당장 거액을 들여 운하를 건설하기보다는 문화·역사 관광을 통해 강물이 가진 ‘통합’의 정신을 공유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바람직하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오랫동안 뱃길이 끊어져 쇠락한 내륙 항구 영산포. 그 항구에 황포 돛대 펄럭이며 위풍당당하게 영산포구를 휘젓던 멸치젓배와 황석어젓배가 오가는 장밋빛 꿈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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