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뢰, 한반도에 묻힌 백만개의 재앙
  • 丁喜相 기자 ()
  • 승인 1998.0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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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매설 지뢰, 위험성 심각…국내외 금지 운동 확산
반세기를 넘기는 국토 분단의 비극은 민족 전체에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겼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다리가 잘려 나가는 고통을 그냥 보듬고 살아가도록 외면하는 현실도 빚어냈다. 북한의 전쟁 도발 억지라는 목적으로 전후방 곳곳에 매설된 대인 지뢰로 인한 피해자들이 그들이다. 현재 한국 땅에 설치된 대인 지뢰 수는 약 백만 개로 추산된다. 대인 지뢰는 주로 휴전선 일대 비무장지대에 매설되어 있지만 일부는 후방의 군사 시설(특히 미군 시설물) 주변 산악에도 묻혀 있다.

민간인 피해자 속출

문제는 매설된 대인 지뢰가 군인은 물론 민간인에게 끊임없이 피해를 주고 있다는 점이다. 주로 민통선 부근에서 일어나는 대인 지뢰 폭발 사고는 해마다 10명 안팎의 희생자를 내고 있다. 53년 한국전쟁 휴전 무렵에 대량 매설된 대인 지뢰로 인해 그동안 몇 사람이 희생되었는지는 정확한 통계가 없다. 국방부가 92년 이전의 지뢰 피해자 통계를 보존 연한(5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폐기했기 때문이다. 현재는 92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 동안 발생한 78명의 지뢰 피해자 통계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 중 민간인이 29명이고 군인은 49명이다.

더욱 딱한 사실은 지뢰 폭발 사고를 당했어도 보상은커녕 어디에 하소연조차 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한국전쟁 이래 지금까지 지뢰 폭발 사고로 목숨을 잃거나 부상한 피해자가 수천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지만, 그 중 단 1명에게도 피해 보상이 이루어진 경우는 없다. 지뢰 지대를 출입하는 군인 또는 민간인(주로 출입 영농인)들은 들어갈 때 군부대에 ‘지뢰 폭발 사고를 당해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제출하기 때문이다. 또 각서 없이 출입할 경우 그 자체가 위법 행위가 되어 피해를 당해도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

게다가 지뢰를 매설한 지 오래된 지대에서는 지뢰 매설 표지판이 낡고 부식되었거나 수목에 가려 ‘미확인 지뢰 지대’로 변한 경우도 늘어났다. 또 홍수 등으로 후방 지역에 유실된 지뢰가 아직도 제대로 수거되지 않은 실정이다. 96년 8월 홍수로 강원도 양구군 일대 비무장지대에서 지뢰 2천여 개가 후방으로 유실되었으나 그동안 6백여 개만 수거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한국에서 대인 지뢰 문제는 북한의 전쟁 도발 억지 기능이라는 명분 때문에 국민적 관심의 사각 지대에 머물러 왔다. 이 문제는 오히려 국제 사회에서 주요 논란거리로 떠올랐다. 지난해 12월3일 캐나다 오타와에서 열린 ‘국제 대인지뢰 금지협약’ 서명식에 1백22개국 정부 대표가 참석해 조인했는데, 이때 한국의 대인 지뢰가 주요 관심사 중 하나로 떠올랐다. 그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한반도 예외 지대 인정’을 요구하며 협약 가입을 거부해온 미국은, 회의에 대표를 파견해 ‘오는 2010년까지 한반도의 대인 지뢰를 제거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번에 체결된 국제대인지뢰협약은 비축한 지뢰를 4년 이내에 파기하고, 지뢰 지대에 매설된 지뢰도 10년 이내에 완전히 제거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남북한간 ‘지뢰 대화’ 시작해야

이런 국제 사회의 분위기는 국내 민간 사회단체와 지뢰 피해자들에게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별다른 이슈가 되지 못했던 대인 지뢰 금지운동 및 피해자 구제 문제가 지난해 11월6일 ‘한국 대인지뢰 대책회의’(대책회의)가 결성되어 본격적인 시민운동 영역으로 들어선 것이다. 한국교회여성연합회·경실련·환경운동연합·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참여연대 등 21개 주요 시민단체가 참여한 대책회의는 지난해 12월3일 열린 캐나다 오타와 회의에 민간 대표를 파견하는가 하면, 지뢰 피해자 실태 조사와 대인지뢰금지협약 가입 촉구 가두 캠페인 등을 벌이고 있다. 또 대책회의측은 오는 2월 초 지난해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국제지뢰금지운동 책임자 조디 윌리엄스를 초청하기로 했다(아래 상자 기사 참조).

대책회의 공동 대표를 맡고 있는 한국교회여성연합회 조미리 총무는 “민통선 밖에서조차 무고한 민간인 피해자를 내고 있는 대인 지뢰 문제의 심각성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고 본다. 새 정부 들어서 남북한 평화와 군축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반드시 대인 지뢰를 실마리로 삼아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지뢰금지운동을 확산해 나가고 있다”라고 말한다. 앞으로 있을 남북한 접촉과 한반도 4자 회담에서 반드시 남북한 양측의 지뢰 문제를 주요 의제에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한국의 대인 지뢰에 대응해 각목 지뢰를 다량으로 매설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행스러운 사실은 그동안 한반도에서 지뢰 사용을 예외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온 미국도 장기적으로는 지뢰 제거와 대체 무기 배치 쪽으로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지난해 9월19일 데니스 레이머 미국 육군 참모총장은 “한반도에서 대인 지뢰를 교체할 경우 끈적끈적한 거품을 뿜어내 적의 행동을 제약하면서 치명적이지 않은 무기가 대안이 될 가능성이 높다”라고 밝힌 바 있다.

한반도의 지뢰 문제는 정작 남북한 사이에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고 교류 협력이 왕성해질 때 심각한 문제로 떠오를 공산이 크다. 백만 개에 이르는 민통선 일대의 높은 지뢰 밀도를 감안할 때,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이 엄청난 장애물을 안고 있는 격이기 때문이다. 부산 중미산 지뢰지대 경험이 그 심각성을 잘 말해 준다. 이곳은 56년 미군이 미사일 기지를 세우면서 98ha에 걸쳐 발목지뢰 3만여 개를 공중 살포한 곳으로, 미군 기지는 10여 년 전에 철수했지만 지금까지 민간인 출입 금지구역으로 남아 있다. 지뢰 제거 기술과 비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 결과 96년 2월 이곳에 산불이 났으나 진화할 엄두를 못내 3만여 평을 고스란히 태우고도 식수를 하지 못했다. 영도구청측은 이곳 산림 복구가 20∼30년 걸릴 것이라며 국방부에 지뢰 제거를 요청했으나, 아직도 지뢰는 제거되지 않고 있다.

결국 지금부터 남북한 사이에 지뢰 제거 문제를 협의해 나가지 않는다면 현재 잠재적 지뢰 재앙 지역으로 분류된 한반도는 훗날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지뢰 피해 지대로 떠오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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