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하늘 ‘낡은 미사일’로 지킨다
  • 성기영 기자 ()
  • 승인 1996.06.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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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 방공망 완벽 가동해도 방어 역부족…장비 노후에 인력·예산 부족 겹쳐
96년 5월23일 10시43분. 평안남도 온천에서 이륙한 미그 19기가 공군 중앙방공관제소(MCRC)에 포착되었다. 거의 동시에 청주 기지와 수원 기지에서 F4와 F5가 긴급 발진했다. 지상에서는 수도권의 호크·나이키 등 모든 방공포가 사격 준비 단계로 들어갔다. 서울 근교 우면산·법원리 포대는 관제소에 있는 유도탄 통제 장교의 지시를 받은 즉시 전투 감시 임무에 돌입했다. 10시46분, 미그19기가 북한 지역의 전술 조치선을 통과했다. 인천·김포·벽제 등지에 포진한 방공포대가 전투 대기 상태로 전환한 것은 10시47분이었다.

숨 막히는 시간이 흘렀다. 미그19기는 시간대 별로 각 포대의 자체 탐지망에도 포착되기 시작했다. 10시53분에는 우면산·인천·김포·벽제 포대가 강화만 상공의 미그기를 탐지하고 즉각 사격이 가능한 상태로 돌입했다. 11시9분, 북한 공군 조종사 이철수 대위가 몰고 온 미그기가 수원 기지에 유도되어 착륙하기까지 26분 동안 수도권의 모든 방공포는 ‘사격 개시’ 명령만 기다린, 문자 그대로 일촉 즉발 위기 상황이 펼쳐졌던 것이다.

이 날 한국 공군의 수도권 방공망은 거의 완벽하게 작동했다. 그러나 귀순기 한 대에 대한 전술 조치 능력만 가지고 수도권 방공망 전체를 평가할 수는 없다. 만일 이 날과 달리 미그기 다수가 동시에 남하하는 긴급 상황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코 안심할 수 없다’.

현재 북한이 보유한 전투기 8백50여 대 중 40%가 전방 지역에 배치되어 동시 발진이 가능하다. 전술기 숫자에서 북한의 61%, 지원기 분야에서도 32%밖에 확보하지 못한 우리 공군이 공중에서 북한 전투기를 막아내기란 쉽지 않다. 더구나 수도 서울이 휴전선에서 40㎞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은 가장 큰 취약점이다. 따라서 미군 지원기가 도착하기까지 북한의 공중 공격을 막아내는 관건은 장거리 미사일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한·미 미사일 각서는 사거리 1백80㎞가 넘는 미사일 개발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

한국 공군이 현재 가지고 있는 방공포로 대량 적기를 막아낼 수 있으려면, 나이키·호크 미사일 발사대에서 동시 다발 사격이 가능하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에 배치된 나이키·호크 미사일은 동시 다발 사격이 불가능하다. 호크 미사일 발사대에 장전할 수 있는 미사일은 3기뿐이다. 미사일 9발을 동시에 발사할 수 있는 패트리어트에 비한다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전세계가 폐기한 ‘나이키’, 한국만 보유


게다가 한국 공군이 보유한 방공 미사일의 핵심인 호크와 나이키 미사일은 60년대 중반에 도입해 노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나이키는 전세계 보유국이 도태 장비로 처리해 우리나라만이 유일하게 갖고 있는 무기 체계이다. 방공포병사령부 예하 부대에 근무했다가 제대한 한 예비역 장교는 “나이키 미사일이 노후했기 때문에 일선 부대에서는 각종 장비 손상을 우려해 전개 훈련 등을 꺼리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심지어 신병들 사이에서는 호크보다 훈련이 적은 나이키 부대 배속을 선호하는 현상까지 생겨나고 있다”라고 말했다.

더구나 방공포를 운영하는 방공포병사령부는 심각한 인력난마저 호소하고 있다. 방위병이 없어지는 것에 대비해 방위병 숫자의 3분의 1 기준으로 현역병을 대체하면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곳 중의 하나가 방공포병 부대이다.

또한 방공포병사령부 관계자들은 여전히 방공포병의 기능적 중요성에 비해 합참·국방부 등 상급 부서에 방공포병 요원이 너무 적다고 토로하고 있다. 합참 안에 있는 방공포병 요원은 부서장이 아니라 부서내 ‘담당관’ 1명에 머무르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서 ‘방공포병 사령부가 육군에 소속돼 있을 때는 이런 내용이 불만 사항이 되지 않았는데 91년 공군으로 넘어온 뒤에 공군내 다른 특기(병과)와 비교해 상대적 빈곤감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취약한 수도권 방공망을 강화하기 위해 국방부는 차기 유도무기 확보 사업을 서두르고 있다. 일명 SAM-X 사업이 그것이다. 현재까지 가장 유력한 기종은 패트리어트 미사일이다. 그러나 패트리어트의 성능에 대해서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주한 미군이 현재 오산 ·수원 기지 등에 배치해 놓은 제11 방공여단 산하 패트리어트 미사일은 PAC-2 급이다. 걸프전에서 사용된 PAC-1 급을 개량한 것인데, 미국에서는 이미 구형이 된 상태이다. 92년에는 공군 내부에서조차 패트리어트의 평균 명중률이 15∼20% 수준에 불과하며 목표 미사일에 대한 탄두 명중률은 0%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지난 6월11일 존 틸렐리 신임 주한미군 사령관이 미국 상원 군사위 인준 청문회에서 현재 한국에 있는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PAC-3으로 대체하겠다고 밝힌 것은 바로 이런 배경을 깔고 있다.

한국군이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또 다른 기종은 러시아제 S-300 미사일이다. S-300은 패트리어트와 같이 미사일 요격이 가능한 지대공 미사일이나 도입 가격은 대략 패트리어트의 3분의 2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로 패트리어트 1개 대대를 창설하는 데 6천4백억원 정도가 든다고 공군 관계자들은 추정한다.

공군측은 현재 차기 유도무기 사업에 ‘요구운영능력서(ROC)’만을 제출해 놓은 상태이다. 요구운영능력서란 중·장기 무기 체계 수립을 위해 대상 장비를 특정하지 않고 연구 개발 근거를 마련할 목적으로 작성한 보고서이다. 공군의 한 관계자는 SAM-X 사업과 관련해 “현재 국방부 관계자를 중심으로 패트리어트와 S-300을 정밀 비교하기 위해 시찰 요원들이 해외 출장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유도무기 사업 ‘갈지자 걸음’ 반복


현재 미국과 러시아는 한국을 대상으로 무기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미국이 수원·오산 기지 등에 패트리어트를 배치하면서 그 성능을 대대적으로 선전한 것도 패트리어트 판매 전략의 하나라는 사실을 부정하기 힘들다.

러시아 역시 마찬가지이다. 러시아 방산 관계 고위 관리들은 ‘한국이 원한다면’이라는 전제를 달고는 있지만 패트리어트보다 S-300이 우수하다는 점을 부각하면서 한국이 자국 미사일을 구매할 것이라는 점을 계속 흘리고 있다.

차기 유도무기 사업과 관련해 한 공군 관계자는 의미 심장한 말을 했다. “기능이 유사하다면 우리로서는 상대적으로 값이 싼 S-300을 선택하는 것이 유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익을 고려해서 결정해야 한다. 국익은 단순히 기능만을 비교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차기 유도무기 사업 결정을 앞두고 심각한 논란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차기 유도무기 사업보다 궁극적으로 우리 정부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M-SAM으로 불리는 호크의 후속 무기 체계 개발 사업이다. M-SAM을 국내에서 개발해 전력화하는 사업은 현재 국방과학연구소(ADD)를 중심으로 연구 작업이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5년을 목표로 하는 이 작업이 제대로 진행된다면 2007년에는 시제품이 나올 것으로 군 관계자들은 전망한다.

그러나 문제는 예산과 인력이다. 방공포병 관계자들은 유도무기 사업이 여태까지 ‘갈지자 걸음’을 반복해 왔다고 비판한다. 유도무기 사업에 대한 획기적인 관심을 촉구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마침 6월10∼11일 열린 한·미 대량 파괴 무기 비확산 협의회에서는 한국이 개발할 수 있는 미사일을 사거리 3백㎞까지로 조정하는 데 잠정 합의했다. 이를 계기로 한국의 미사일 개발 능력은 평가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군 관계자들도 인정하듯이 실제 상황에서 수도권을 완벽하게 방어해낼 수 있는 무기 체계를 갖추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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