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뻥' 뚫리는 해안 방어산
  • 김 당 기자 ()
  • 승인 1995.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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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라낸 철책선 대체할 첨단 장비 태부족…국방부"97년까지 기다려야 느긋"
열사람이 지켜도 한 도둑 못막는다. 최근 잇달아 발생한 북한군 정찰조의 침투 사건과 무장 간첩 체포 사건은 한 도둑을 막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주었다. 또 이번 사건은 이른바 물 샐 틈 없는 경비망이니 철통 같은 경비 태세니 하는 호언장담에도 불구하고 해안 방어선에 구멍이 뚫려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간첩 1명을 막으려고 온 해안선에 철조망을 치고 60만 군인이 이를 에워쌀 수도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방책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인간 말뚝’ 대신에 첨단 장비로 보초를 세우는 것이 그것이다.

이른바 TOD라고 부르는 열상관측장비의 위력은 이미 지난 10월17일 북한군 정찰조가 임진강 하류를 통해 침투했다가 1명이 사살된 사건에서 드러났다. 당시 초동 단계에서 국방부는 2명으로 추정되는 정찰조 가운데 1명을 사살했으나 다른 1명의 행방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통합방위본부(본부장 김동진 대장)는 바로 대침투 경계 태세인 ‘진돗개 하나’를 발령하고 군경 합동으로 서울·경기·강원·인천 지역 비상 경계에 돌입했다. 이로 인해 경기 북부 지역에서 서울로 진입하는 길목인 경기도 고양시 일산을 비롯해 서울 북서부 지역 일대 도로가 군경의 삼엄한 경비 및 검문 검색으로 큰 혼잡을 빚었다.


5년간 해안 철책선 3백20km 제거

그러나 교통 혼잡과 인근 지역 주민의 불안감은 다른 1명이 잡히지 않았는데도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날 오후 8시께 잠수복 차림의 북한군 1명이 임진강 하류 물속에서 나와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 전방초소(GOP)로 되돌아가는 모습이 국군의 TOD에 잡혔기 때문이었다. 만약 이 장비에 북한군이 복귀하는 장면이 포착되지 않았더라면 비상 경계 태세와 검문 검색이 그처럼 빨리 풀리지도, 인근 지역 주민들이 다리를 뻗고 자지도 못했을 것이다.

TOD의 위력은 그로부터 1주일 만인 10월24일 충남 부여군 석성면 일대에서 벌어진 무장간첩 체포 작전에서도 드러났다. 당시 군경합동작전본부(본부장 박훤재·32사단장)는 무장 간첩 김도식(33)을 생포한 데 이어 달아난 박광남(31)을 체포하기 위해 2만여 병력을 동원해 4중 포위망을 폈다. 결국 무장 간첩 박광남은 포위망을 뚫지 못한 채 발각돼 사살되었다. 합동작전본부 관계자들이, 박이 봉쇄선을 빠져나갔을 가능성이 1%도 안된다고 보고 자신있게 수색 작전을 편 덕분이었다. 물론 그것은 군이 첫날 밤부터 야간에 반경 4㎞ 이내 물체의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는 TOD로 감시 활동을 펼쳤는데 이상 물체가 전혀 포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TOD는 전방은 물론 해안선의 철책·철조망 같은 경계·방어 시설과 병력을 더욱 효율적으로 대체할 수 있는 첨단 감시장비로서 80년대부터 육군과 해병대의 경계 부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TOD의 운용 개념은 전선 및 해안·강안 지역의 경계력 보강을 위해 야간 감시용으로 운용하는 적외선 감시이다. 육군의 경우 TOD를 주로 경계 부대의 정보 중대나 지상 감시 소대에 편제해 해안 레이더 장비(RASIT)와 상호 보완하여 운용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해병대의 경우도 지난 국정감사에서 이상무 해병대 사령관이 밝혔듯이, 육군과 비슷한 개념으로 이 장비를 운용하고 있다.

이상무 사령관은 당시 김포반도의 제2 해병사단 경계 부대 및 감시 장비 현황을 묻는 질문에 “강화도 및 김포 측방 경계에 6개 대대를 배치해 경계 임무를 수행중이며, 감시 장비로는 TOD를 91년 3대에 이어 94년 7대를 추가 배치해 운용하고 있고, 지상이동감청반(GMIT)을 94년 6월에 신규 배치했다”고 밝혔다. 이사령관은 “그러나 제2 해병사단의 책임 경계 지역이 다른 사단급 경계 지역에 비해 경계 정면이 넓어 취약 시기 및 지역에 별도의 상주 훈련 부대를 지정해 경계를 보강하고, 철책선 및 해안 경계 보강을 위해 약 14억원을 중기 계획에 반영했다”고 덧붙였다.

이사령관의 발언은 지난 대선을 앞둔 92년 10월에 터진 이른바 남한조선노동당 간첩 사건 때 이선실 등 거물 간첩들이 강화도를 통해 넘나든 것을 다분히 의식한 것이었다. 당시 이사령관은 서해 28개 도서를 포함해 김포·강화 지역 방어 임무를 맡은 제2 해병사단장이었다. 당시 야당(민주당)은 “안기부가 대선 직전에 그 실체가 불분명한 조선노동당 간첩 사건을 터뜨려 선거에 이용했다”고 주장했다. 또 야당은 “안기부 발표대로 거물 간첩이 강화도를 통해 빠져나갔다면 국가 안보에 큰 구멍이 뚫린 것을 반증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을 폈다. 그 이후 대선에서 패한 야당은 거물 간첩을 놓친 안기부 및 군 관계자 문책과 감시 장비 보강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 결과 취약 지역에 대한 경계 태세 강화 조처가 뒤따랐다. TOD와 지상이동감청반 같은 감시 장비가 94년에 집중 배치된 것도 이를 반영한 것이다. 문제는 이같은 보강 조처 및 경계 태세를 강화했는데도 이번에 체포된 무장 간첩 2명이 지난 8월 강화도를 통해 침투한 것으로 밝혀져 여전히 해안 방어에 구멍이 뚫려 있음이 입증된 것이다.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우선 9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해안 철책선 제거를 들 수 있다. 합동참모본부 대간과의 철조망 제거 현황에 따르면, 91년 24㎞, 92년 90㎞, 93년 1백42㎞, 94년 42㎞, 95년 22㎞로 지난 5년 동안 해안 철조망 총 3백20㎞가 제거되었다. 위 현황에서 알 수 있듯이 해안 철조망은 김영삼 정부 원년에 집중 제거되었다. 물론 주민 편의를 위한 긍정적인 조처로 환영받기는 했지만, 문민 정부 원년의 상징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국가 안보(철책)를 수단으로 삼은 것 아니냐 하는 지적도 나왔다. 게다가 보완 조처가 뒤따르지 않은 방위병 제도의 폐지로 해안 방위 인력의 자연 감소도 우려되고 있다.

문제는 그 공백을 메울 감시 장비가 대체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육본 관계자에 따르면, 해안 철책선과 경계 인력은 줄어들고 있는 반면 현재 운용하는 열상관측장비는 91년부터 캐나다로부터 들여온 AN/TAS-502(TOD) 00대뿐이다. 그런데 국방부는 해안 경계 태세 강화를 위한 육본의 긴급 소요 제기(95년 62대)에 대해 국방과학연구소(국과연)가 한국형 열상 장비를 연구 개발해 시험 운용하고 있다는 이유로 거부한 것으로 최근 확인되었다.

한국형 열상 장비 개발은 해외에서 들여온 TOD의 군수지원체제(ILS)가 보장되지 않고 정비·수리가 어려운 문제점을 보강하기 위해 국과연을 연구 개발 주체로 삼아 시작된 것이다. 국방 중기계획(97~2001년) 전력화계획에 따르면, 국과연은 3백억원 이상의 연구개발비를 들여 97년부터 열상 장비 000대를 획득하는 것으로 예정돼 있다. 그에 따라 국과연은 93년부터 시험 개발에 착수해, 올해 5월 자체 기술 시험을 거쳐 8월부터 6사단 등에서 실용 운용을 시험중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구형 장비 개발해 예산 낭비

그런데 문제는 현재 시험 운용하는 국과연 연구개발품(FLIR)은 군이 해외 구매해 운용중인 TOD와 마찬가지로 제1 세대 장비인 데다 기존 TOD와 마찬가지로 핵심 부품을 해외 도입에 의존하고 있고, 기존 TOD와의 호환성도 없어 군수지원체제의 유지 및 예산 소요가 이중적이라는 지적이다. 육본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의 연구 개발 사업이 계속 진행될 경우, 97년 전력화가 예정돼 있는 제1 세대 수준의 TOD를 활용하게 됨으로써 사용자의 큰 불편을 초래하고, 기껏 현재 배치된 제1 세대 TOD와 동일 수준의 장비를 개발하는 것이 될 뿐이어서 국방 예산을 낭비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업계에 따르면, 이와 관련해 열상 장비 제작사인 캐나다 스파사는 핵심 기술의 공동 연구개발 및 기술 이전을 조건으로 국방부·육본·생산업체 등에 협력 생산 여부를 타진해 왔다. 그러나 국방부는 지난 5월 △1세대 장비의 생산 및 정비 기술을 백% 이전하되 △3세대 장비를 국내 공동 생산 및 역수출하자는 캐나다측 제의에 대해 연계가 불가능하다는 내용의 공문을 발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육본 일각에서는 소요가 제기된 열상 장비를 조기에 전력화해 해안선 방어 및 전방 사각 지역에 집중 운용함으로써 위험 요소를 최소화하고, 1세대 장비 연구 개발을 중지하고 기존 운영 장비와 상호 연동성이 있는 최신 모델(3세대 장비)을 직접 개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도 드러난 것처럼 문민 시대에도 간첩은 있고, 간첩은 국과연의 연구개발품이 획득되는 97년까지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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