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은 1·2·3차 산업”
  • 李政勳 기자 ()
  • 승인 1997.05.08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값싼 원료 과감히 수입해 가공 무역으로 활로 찾아야
많은 사람이 농업은 1차 산업이라는 고정 관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최양부 청와대 농림수산수석은 농업이 1차·2차·3차 산업을 망라한 종합 산업이라고 주장한다. 최수석은 현대의 농업에는 땅을 갈아 농작물을 키우는 1차 산업과, 수확한 농작물을 가공해 식품을 만드는 2차 산업, 식품과 농작물을 유통시키는 3차 산업이 유기적으로 어우러져 있다고 단언했다.

농수산물유통공사 길형위 무역본부장은 농업도 제조업처럼 가공 수출해야만 종합 산업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길본부장은 “우리 땅에서 자란 농산물만 가공·수출해서는 농업을 키울 수 없다. 국내 농산물은 국제 시세에 비해 턱없이 비싸다. 지난 수년간 한국의 연간 농산물 수출액이 30억달러(전체 수출액 가운데 2.4%)에 불과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중국 등지에서 싼 농산물을 사다가 식품으로 가공해 수출하는 쪽으로 체제를 바꿔야 전체 농업이 살아 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신라면과 초코파이는 국제 시장에서 아주 잘 팔리는 한국산 식품이다. 두 제품은 100% 수입 밀가루에 국산 부자재를 일부 섞은 것인데도 ‘메이드 인 코리아’로 나가고 있다. 신라면의 성공은 농업이 식품제조업과 강력히 연계되고, 국경을 넘어선 원료 수급 체계를 갖춰야 함을 보여준다.

(주)하림(사장 김홍국)은 국내 최대 닭고기 생산 업체이다. 이 회사는 미국이나 네덜란드로부터 원종계(原種鷄)를 쌍으로 수입한다. 원종계에서 나온 달걀을 부화시켜 종계(種鷄)를 만들고, 종계가 낳은 달걀을 부화시켜 육계를 만든다. 이 회사는 양계 농가에 분양해 사육된 육계를 수매해 냉장 포장육으로 시장에 내놓고 있다.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이나 롯데리아 같은 패스트 푸드점에도 닭을 공급한다. 이 과정에서 나오는 내장과 닭털 등은 사료로 재활용한다.

(주)하림은 국내 닭고기 소비량의 30%인 하루 평균 30여만 마리를 공급하고 있다. 이처럼 시장 점유율이 커지자 양계 농가와 유통업계가 (주)하림을 중심으로 계열화하기 시작했다. 유통 구조를 단순화하고 대량 생산 체제를 구축해 싼값에 닭고기를 내놓자 국내 닭고기값 전체가 동반 하락했다. 그러나 국내 닭고기 값은 국제 시세보다 아직 두 배 정도 비싼 편이다.

(주)하림 등 몇개 업체는 삼계탕을 제조해 국제 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국제 시장에는 이미 닭고기를 이용한 식품이 즐비하지만, 삼계탕은 우리나라의 고유 식품이어서 아직 시장이 형성되지 않았다. 틈새 시장이기 때문에 삼계탕의 값은 우리가 결정할 수 있어, 다소 값이 높아도 도전해 볼 수가 있다. 삼계탕은 데우기만 하면 먹을 수 있는 레토르트 포장으로 수출되는데, 미국 슈퍼마켓에서 10달러 선에 판매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소득이 높아도 10달러를 주고 인스턴트 식품을 사먹는 소비자는 그리 많지 않다. 경제성 있는 시장을 형성하려면 값을 더 낮춰야만 한다. 삼계탕 수출 사례는 세계 시장에 편입되는 것이 역설적으로 국내의 농업 원가를 낮추는 요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농산물 자유 교역, 거스를 수 없는 대세

농업의 자유 교역은 다양한 모습으로 추진될 수 있다. 농수산물유통공사는 중국에서 땅을 빌려 신선 야채를 다량 재배한 다음, 싼값에 들여와 일부는 국내에서 소비시키고 일부는 가공 수출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한 대북 사업가는 북한 개성 지역에 들어가 고등 채소를 재배할 궁리를 하고 있다. 채소는 빨리 부패하므로 신속히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해, 판문점을 통해 수송할 생각이다. 이로써 물류가 오가는 남북 자유 교역이 실현되면 통일도 빨리 달성된다는 것이 이 사업가의 신념이다.

그러나 아직도 농가 다수는 가공 무역 체제에 반대한다. 신토불이를 강조하는 데에는 바로 농산물 수입을 제한하자는 주장이 숨어 있다. 반면 식품 제조업체와 소비자들은 값싼 수입 농산물을 원하고 있다. 한국의 농업 정책은 이 두 세력 사이에서 끝없이 널뛰기를 하고 있다. 재배 농가가 시위를 하면 수입을 취소하고, 식품 제조업체가 로비를 하면 다시 수입하는 일관성 없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세계무역기구는 연차적으로 농산물의 자유 교역을 늘리는 계획을 착착 진행하고 있다.

“국내 농업을 보호한다는 명분 뒤에 움츠려 있다간 한국 농업은 한순간에 전멸한다. 과감히 가공 무역을 허용함으로써 수출도 하고 동시에 국내 가격을 내려야 살아 남을 수 있다.” 농업 전문가들은 이 말을 가장 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농촌을 사랑하는 국민 감정을 거스를까 봐 목구멍까지 올라온 이 말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