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자동차 디자인은 '곡선+직선'
  • 李哲鉉 기자 ()
  • 승인 1997.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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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 자동차 디 자인 주류는 ‘선의 조화’한국 업체, 제2회 서울모 터쇼 통해 독창성 선보여
선진 자동차 디자인을 모방하던 국내 자동차 업계가 디자인 부문에서 독창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국내 자동차 업체들이 4월24일∼5월1일 열리는 제2회 서울 모터쇼에 출품한 컨셉트카를 보면 이 사실을 알 수 있다. 현대자동차·대우자동차·기아자동차를 비롯해 국내 완성차 생산업체 6개 사의 컨셉트카 디자인은 세계 유명 자동차 업체들이 지난 1월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선보인 디자인 흐름과 큰 차이가 있다. 디트로이트 모터쇼에 출품된 세계 유명 업체의 컨셉트카는 뚜렷한 선과 모서리 각을 가졌으나, 국내 자동차 업체의 컨셉트카는 여성적인 부드러운 선과 근육질 남성을 연상시키는 곡선형이 대부분이다.

현대자동차가 출품한 SLV(Super Luxury Vehicle)의 차체는 대형 고급차인데도 공기역학을 고려한 유선형이다. 전조등에서부터 후미등에까지 하나의 곡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대신 크롬으로 도금 처리된 앞 범퍼와 뒤 범퍼에 날카로운 선을 가미해 곡선의 단순함을 없애려 했다. 그러나 크롬 처리된 범퍼가 과장되었다는 평을 받을 정도로 곡선이 강조된 디자인이다.

자동차 디자인 유행, 10년 주기로 변화

대우자동차의 대형차 쉬라츠도 차체가 받는 공기 저항을 줄이려고 부드러운 선을 강조했다. 또 차체 높이를 낮추어 지상과의 거리를 좁힘으로써 안정감을 주었다. 대우자동차가 쉬라츠와 함께 출시한 2인승 스포츠카 조이스터는 아예 달걀처럼 생겼다. 조이스터를 개발한 대우자동차 디자인포럼 김태완 차장은 “조이스터의 디자인은 달걀 모양에서 따왔다”라고 말할 정도이다.
쌍용자동차가 내놓은 4인승 스포츠카 W-쿠페도 공기역학을 고려한 날렵한 디자인을 채택해 전체적으로 양감(量感)이 있고 부드러운 선이 특색이다. 덕분에 국내 승용차 가운데 공기 저항 계수가 가장 낮다. 이 차는 쌍용자동차의 기술 제휴 회사인 독일 메르세데스 벤츠와 공동 개발해 올해 9월 출시할 대형 승용차 체어맨의 새시와 부품과 기술을 시험 적용해 만들었다. 기아자동차의 KMS3과 KMX4도 부드러운 선을 강조하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다목적 차량인 KMX4는 라디에이터 그릴이 아예 U자형으로 휘어져 부드러운 양감을 느낄 수 있다.

자동차 디자인은 패션처럼 돌고 돈다. 자동차 디자인에서 강조하는 선은 대략 10년 주기로 바뀐다. 60년대에는 둥근 차가 유행이었다. 포드자동차의 선더버드가 대표적이다. 선더버드는 곡선이 부드러워 화려한 느낌을 주는 차였다. 선더버드는 80년대 초까지 미국 젊은이들이 가장 갖고 싶어하는 차로 선정되기도 했다. 70년대 초 이탈리아의 자동차 디자이너 지오르게토 주지아로가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폴크스바겐 골프를 디자인하면서 각을 세워 신선하다는 평을 받았다. 그후 10년 동안 각진 차가 인기를 끌었다. 국내 자동차 업계가 처음 수출한 포니도 직선을 강조한 차의 전형이다.
80년대 초 곡선형 차의 시대가 돌아왔다. 포드자동차가 남성의 근육을 연상시키는 곡선을 지닌 토러스를 내놓으면서 곡선형 차의 전성기를 열었다. 현대자동차가 90년 후반에 내놓은 엘란트라는 너무 둥글어 처음에는 팔리지 않다가 곡선형 차가 인기를 끌자 판매가 급격히 늘었다.

디자인이 10년 전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자동차의 품질이 10년 뒤로 후퇴하지는 않는다. 자동차 기술은 디자인이 바뀌는 것과 함께 발전한다. 다시 돌아온 유행에 자동차 관련 새 기술이 적용되면서 디자인과 스타일이 더 세련되어진다. 80년대에 유행한 곡선형 차에는 공기역학이 적용되었다. 차체가 받는 공기 저항을 줄이려다 보니 자동차 선이 대부분 부드럽게 되었다. 또 남성 이미지를 강조하다 보니 옆면이 근육처럼 볼록 튀어나왔다.
전세계적으로 90년대 들어 둥글둥글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차가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미국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린 포드의 토러스도 부드러운 선을 강조한 차이다. 토러스는 92∼96년 5년 연속 최고 베스트 셀러로 뽑혔다. 국내 자동차 업체가 90년대에 출시한 신차는 둥근 차종이 대부분이다. 현대자동차의 엑센트와 아반떼, 기아자동차의 아벨라와 크레도스, 대우자동차의 라노스와 레간자가 대표 사례이다. 특히 현대자동차의 준중형차 아반떼는 ‘이 이상의 둥근 차는 만들 수 없다’고 할 정도로 곡선형 차의 끝이었다.

90년대 초가 되자 유행의 변덕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올해 초 미국에서 열린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는 2000년대 초에 시판될 각진 차(컨셉트카)가 보였다. 올해 들어 도요타나 제너럴모터스 같은 세계 유수의 자동차 업체마다 주력 차종의 신형 모델을 내면서 뚜렷한 선을 가미하기 시작했다.
사실 날카로운 각과 뚜렷한 선이 나타나기 시작한 때는 92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92년 디트로이트 모터쇼에 출시된 포르셰 박스터가 각을 잡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 자동차 업계가 93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 출시한 차가 그 뒤를 따랐다. 올해 초 열린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는 이 흐름이 더 뚜렷해졌다. 도요타의 캄리 97년형은 상자처럼 범퍼와 트렁크의 모서리 각을 살렸고, 제너럴모터스가 내놓은 유톤디낼리 98년형은 모서리가 날카롭고 앞바퀴를 감싸는 선이 직각에 가깝다. 크라이슬러와 혼다의 새 모델도 뚜렷하게 날을 세웠다.

세계 자동차 디자인 추세가 각을 세우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데 국내 자동차 업체가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법하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디자이너 지오르게토 주지아로씨는 생각을 달리한다. “일본 업체의 디자인은 아직까지 유럽 차를 모방하고 있는데, 한국 업체는 독자적인 길을 훌륭히 개척하고 있다.”

유선형 차체를 고집하는 국내 자동차 업체는 나름의 고집을 갖고 있다. 현대자동차 디자인팀 박 혁 대리는 “세계 조류가 직선과 각을 중시하는 쪽으로 가고 있으나 곡선을 무시하지는 못하고 직선과 곡선의 조화를 꾀하리라 본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 처음 출시된 아우디TT는 직선과 곡선이 조화를 이루며 면 분할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았다. 포드자동차의 토러스 97년형도 곡선과 직선을 함께 살리려 했다.

연비와 주행성을 높이려면 유선형 차체는 필수이다. 하지만 직선을 좋아하는 소비자 취향을 무시할 수는 없다. 따라서 2000년에는 직선과 곡선이 조화를 이루는 차가 도로를 메울 것이다. 국내 자동차 업계는 공기역학을 고려한 유선형 차체에다 직선과 각을 살리는 제품에 내놓아야 한다는 데 이론이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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