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로 본 광복 50년
  • 張榮熙 기자 ()
  • 승인 1995.08.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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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로 본 광복 50년/자동차 대수 1만1천배 증가 등 ‘경제 기적’… 오염·범죄 급증은 ‘업보’
45년 8월15일 한국은 빛을 되찾았다. 일본은 졌다. 광복을 환호하는 서울역 앞 광장과 남대문 일대의 인파는, 그러나 곧 ‘38선에서 멈춘 소련군’으로 허리가 동강나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분단은 갈수록 고착됐다. 4대 열강의 이해 관계가 엇갈린 ‘한국 문제’는 한국전쟁을 잉태하고 있었다. 폐허가 된 명동성당 종탑, 이 한 장의 빛바랜 사진은 그 시대를 명징하게 대변한다.

‘봉지쌀 드셔 보셨습니까’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던 시대, ‘求職’이란 팻말을 허리에 차고 다니는 실업자를 지천으로 볼 수 있었던 시대, 남정네는 날품팔이 지게꾼으로 아낙은 행상으로 나서야 했던 시대. 배고픔과 혼란으로 범벅된 참담한 시기였다.

그로부터 50년. 한국은 엄청나게 변했다. 통계청 신현균 자료관리국장은 “격변지감이라는 말로도 설명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첫 국산차 ‘시-발’ 은 ‘그랜저’를 낳았고 시멘트 생산(57년)이 고작이던 산업시설은 굴뚝 수를 헤아리지 못할 정도가 됐다. 문맹이 자취를 감추고 이질 같은 후진국병이 사라졌다. 사람들은 돈을 의식주보다 교육·교양·오락·교통·통신에 더 많이 쓰고 있다.

국민소득과 무역 규모 세계 12위로 요약되는 각종 경제 통계들은 쉽게 한강의 기적을 설명한다. 삶의 질을 나타내는 사회 통계들의 변화도 괄목할 만하다. 그러나 성장의 업보도 만만치 않다. 통계로 본 격동 50년은 환경 오염과 범죄, ‘빨리빨리병’과 같은 부정적 현실을 새삼 일깨워 준다는 점에서 교훈이 된다.

자료가 한정되어 있고, 상당히 많은 통계가 경제개발계획이 실시된 60년대 이후부터 만들어져 비교에 부적절한 점이 있다는 점을 밝혀둔다. 광복 50년 동안의 변화상을 사회 지표 중심으로 소개한다.
자료:한국은행 <국민계정><경제통계연보>,재정경제원<예산개요>,국세청<국세통계연보>,보험감독원<보험통계연보>, 대한 출판문화협회<한국출판연감>, 한국프로야구위원회자료:통계청<추계인구><장래인구추계><인구동태통계연보><인구주택총조사>, 대검찰청<범죄분석>, 환경부 <한국환경연감>,교육부<교육통계연보>,보건복지부 <복지사회통계연보>자료:<농림수산부<농림수산통계연보>, 통계청 <도시가계연보>자료:통계청 <사망인통계연보>, 보건복지부 <보건사회통계연보>자료:보건복지부 <보건사회통계연보>,교육부<교육통계연보>,건설교통부<교통통계연보>,정보통신부<체신통계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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