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질 바꾸는 3군 사관학교
  • 朴晟濬·金恩男 기자 ()
  • 승인 1995.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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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해사·공사 TV 광고 등 홍보 작전 치열… “체질 바꿔 인재 모으자”
화랑대로 더 잘 알려진 서울 태릉 육군사관학교, 이순신 장군의 적통임을 강조하는 경남 진해 해군사관학교, 그리고 보라매의 날렵한 기상을 자랑하는 충북 청주 공군사관학교. 확연히 구별되는 각자의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장차 ‘국방의 주역이 될 우수한 사관을 길러낸다’는 측면에서 공동의 목표를 지향해온 육·해·공군 사관학교가, 최근 예상치 못한 곳에 전선을 긋고 자존심이 걸린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다.

새로 시작된 작전의 이름은 ‘신세대 사관생도 유치를 위한 홍보 작전’이다. 누가, 얼마나 설득력 있게 신세대의 예민한 감성을 자극해 자주 국방의 대업을 짊어질 인재를 더 많이 유치할 것인가 하는 목표를 두고, 육·해·공사가 말 그대로 ‘포성 없는 전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전투가 가장 치열한 분야는 바로 텔레비전 광고 쪽이다.

‘젊음은 소리보다 더 빨리 날고 싶다. 공군사관학교. 여기서는 21세기가 가깝다. 우주가 바로 머리 위에 있다. 젊음이여, 창공을 안고 우주로 날아라. 21세기를 위한 나의 선택. 공군사관학교.’ 굉음을 내며 서서히 발진하려는 전투기 모습과 함께 시작하는 이 문구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지난 7월23일부터 텔레비전에 방영되기 시작한 공군사관학교의 광고 카피다.

홍보 업무는 이미 전투 개념”

전투기 이륙 장면과 공중 곡예 모습, 공사 생도들의 절도 있는 행진 모습으로 짜인 공사 광고가 진짜 전하는 말은 ‘젊은이여, 공사로 오라’이다. 광고의 마지막 장면은 보라매가 유유히 창공을 날다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모습으로 끝맺는다. 공사측은 광고 제작을 위해, 전투기 한 대를 띄울 때마다 6백50만원이 드는 부담을 기꺼이 감수했다.

8월8일부터 8월18일까지 8회에 걸쳐 방영될 육군사관학교 텔레비전 광고가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시대의 변화 추이에 적극 대응해 가장 앞서나가는 사관학교가 바로 육사’라는 것이다. 육사측은 이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방안으로, 광고 도입부에 한반도 위성 사진을 배경으로 깐 뒤, 발굽 소리가 박진감 있게 울려퍼지는‘말 달리는 장면’으로 시작했다. 이 장면 바로 뒤에는 세계화에 대비하기 위한 영어 교육 장면, 정보화 시대에 발맞추기 위한 전산 교육 장면이 나온다. 육사 광고의 대미는 육사 생도와 일반 시민이 한데 어울려 저녁 노을을 배경으로 우뚝 솟은 돌탑을 둘러싸는 장면으로 장식된다. 사람 키보다 훨씬 큰 돌탑 가운데에는‘내 생명 조국을 위하여’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8월2일부터 방영되는 해군사관학교 광고의 핵심 구호는 ‘바다로, 세계로’이다. 해사 생도들의 진취적이며 약동하는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해사측은 광고의 주요 장면을 바다와 관련된 소재로 가득 채웠다. 광고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해사가 목표로 삼았던 주안점은 ‘고등교육 기관으로서 일반 대학과 마찬가지이면서도, 동시에 같은 목적 대학인 육사·공사와는 뚜렷이 구별되는 해사의 매력’을 부각하려는 것이다. 해사측은 교내 촬영말고도, 구축함 항해 모습과 수상스키·요트 따위를 즐기는 생도들의 모습을 담기 위해 따로 항공 촬영을 실시했다.

해사측의 한 홍보 담당자는 “이미 신세대를 유치하기 위한 3군 사관학교 입시 담당자들의 공동 전략 회의가 몇 차례 열렸지만, 텔레비전 광고 얘기가 나온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 사이 저마다 쉬쉬해 가며 비장의 무기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텔레비전 광고였다. 가장 발빠르게 움직인 공사는 ‘치고 빠지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육사는 뒤늦게 전투에 참가했지만 절대로 뒤지지 않겠다는 투지를 보인다. 해군 역시 이 경쟁에서 선두 자리를 양보할 수 없다. 우리는 이미 홍보 업무를 전투 개념으로 바꾸고 적극 활동에 들어갔다”고 밝힌다.
계속 떨어지는 경쟁률에 위기 의식

8월 들어 일제히 시작한 육·해·공사 텔레비전 광고에는 군이 낡은 사고 방식에만 얽매여 독야청청하다가는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얻지 못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하지만 사관학교들이 앞다투어 안방 극장에 진출하려는 배경에는 좀더 실질적인 목표가 숨어 있다. 신세대 인재를 끌어들이지 못하면, 우수한 장교를 양성해 대한민국 국군의 절대 명제라 할 `‘정예 군사력 정비·유지’ 목표를 구현할 수 없다는 절박감이 육·해·공사 모두에 널리 퍼져 있는 것이다. 이들은 최근 몇년 간의 경험을 통해 이 점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사관학교는 돈은 없지만 자질은 우수한 인재들이 몰리는 곳으로 통했다. 최근 몇년 사이 사정은 크게 변할 것 같은 조짐을 보였다.

“60년대까지만 해도 육사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인재가 몰려드는 곳이었다. 하지만 앉아서 찾아오는 인재를 골라잡는 시대는 지나갔다. 육사는 물론 어느 사관학교도 이제 안심할 수 없다. 교육 담당자가 교육할 대상자를 찾아 나서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육사 평가관리실장 이한홍 대령의 판단이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육군 사관생도 지원자 경쟁률은 10 대 1을 웃돌았다. 93학년도에 열자리 수 이하로 떨어지며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였던 경쟁률은 마침내 94학년도에 4.2 대 1(육사측 자체 발표 4.4 대 1)로 곤두박질했다. 육사는 물론 역대 사관학교 신입생 모집 사상 가장 낮은 경쟁률 앞에서, 육사는 참담한 심경을 억누를 수 없었다.

해사와 공사측도 지원자 대폭 감소라는 뜻밖의 사태에 쓰라린 아픔을 맛보기는 마찬가지였다. 비록 지난해(95학년도) 23 대 1의 기록적인 경쟁률을 통해 자존심을 만회했지만 93년(94학년도) 해사 신입생 지원율은 8.8 대 1로서 역대 해사 신입생 모집 사상 최저 경쟁률을 나타냈다. 같은해 공사의 신입생 모집 경쟁률은 해사보다 낮은 6.6 대 1을 기록했다. 육·해·공 어디라 할 것 없이, 계속되는 경쟁률 하락에 학교 당국은 물론 군 관계자들마저 우려하는 위기 상황이 조성된 것이다(왼쪽 표 참조).

경쟁률 하락 원인에 대해 사관학교 입시 담당자들이 내놓은 해답은 한결같다. 문민 정부가 들어선 뒤 율곡사업 비리 수사,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 수사 등으로 국민에게 부정적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군의 치부가 한꺼번에 드러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군에 대한 각종 개혁 작업이 한창이던 93년에 모집한 각 사관학교의 신입생 경쟁률(94학년도)이 집중적으로 떨어진 점은 이를 잘 입증한다. “과거 오랜 기간 군에서 보여주었던 폐쇄적 자세와 오만함, 일부 직업 군인의 정치성 따위에 비춰보면 이같은 결과는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사관학교 지원율이 뚝 떨어지는 상황을 보면서 서로가 내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내심 ‘올 것이 왔구나’라고 생각하는 자조적 분위기가 짙었다”고 해사측 한 입시 관계자는 설명한다.

군이 변하려면 사관학교부터 변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즈음이다. 먼저 군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털어내는 작업이 1차 과제로 지적됐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학교 당국이 앞장 서서 문호를 개방하고 홍보 활동을 대폭 강화하는 등 변신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지난해 주요 부서 아홉 곳의 전화번호를 골라 서울시 전화번호부에 올린 육사의 조처는 그중 대표적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기밀 사항’으로 통하던 전화번호를 등재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육사 내부에서는 한때 적지 않은 논란이 벌어졌던 것으로 알려진다. 논쟁은 전화번호 등재로 결론 났다. ‘군대의 논리에만 치우쳐 더 이상 국민과의 대화를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판단이 내려진 것이다.
이미 입교한 생도들의 달라진 생활 모습, 의식 성향도 사관학교 당국의 태도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기폭제가 됐다. 과거의 전통적인 군 개념을 고집하다가는 우수 지원자들의 발길이 끊겨 장차 국방을 짊어지고 나갈 장교 인력의 공급에 큰 차질을 빚게 될 것이라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육사 정훈실장 김영배 중령은 “예전 육사 합격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지원 동기를 보면 경제적인 이유가 꽤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지금은 경제적 이유 때문에 육사를 지원했다고 답하는 사람이 현저히 줄어든 반면, 군인을 하나의 직업으로 보고 사관학교를 사회에 진출하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고 소개한다.

해사나 공사의 경우도 사정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올해 초 공사 신입생(47기)을 대상으로 학교측이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종사가 되고 싶어 공사에 지원했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75.5%에 이른다. 원하는 직업을 갖기 위한 과정으로 공사 생활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공사측도 이같은 추세에 따라 학교를 마친 뒤에는 전문성이 보장된다는 점을 적극 강조한다. 올해 2월부터 건설교통부는 공사 졸업생의 항공면장(조종사 면허) 취득을 인정하고 있다. 이전에 공사 졸업생이 전역 후 민간 항공사에 취업하면서 항공면장을 새로 따기 위해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던 것에 비하면, 공사측의 이같은 홍보 전략은 ‘과장된 선전’이 결코 아니다.

‘3금 제도’는 남겨두기로

특히 개성이 뚜렷하고 자기 주장이 강한 신세대 생도들의 행동 성향은 그동안 ‘지나치게 통제 위주로 이뤄진다’는 비난을 들어왔던 학교 운영 방식에도 큰 변화를 가져다 주고 있다. 자율성을 대폭 부여한 일과표가 새로 마련되어 시행에 들어가고, 생도들 스스로 관심 영역을 찾아 능력을 갖출 수 있게끔 훈육 과정도 바뀌고 있다. 지난해 육사는 밤 10시에 반드시 취침에 들어간다는 규정을 바꿔, 생도가 원하면 밤새도록 불을 켜놓을 수 있도록 허용했다. 해사의 경우, 훈육관 중심의 적성 평가제를 자율성 원칙에 맞게 손질했다. 과거 생도에 대한 적성 평가에서 50%를 차지하던 훈육관 평가 비중을 30%로 낮추고 차상급 생도의 평가 비중도 30%에서 10%로 낮춘 반면, 동기생이 다른 동기생의 적성을 평가하는 제도를 신설한 것이다.

사관학교 교육이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학교부터 달라져야 한다는 방향은 확실히 설정됐지만, 전통과 개혁의 조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아야 하는 학교 당국자들에게 고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사관학교 고유의 전통이라 할 이른바 `‘3금 제도’에 대한 바깥 세계의 일부 곱지 않은 평가에 대해 학교 당국은 당황한다. 3금 제도란 생도들에게 재학중 음주·흡연·결혼을 금하는 것이다. 공사 생도대 생활훈육처장 오필환 대령은 “지난해 3금제가 일반 국민 정서에 맞지 않으므로 철폐하자는 논의가 잠깐 있었으나, 결국 존속시키기로 했다. 생도들 스스로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자기 강제 차원에서 존속시키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다. 이같은 문제에 대한 판단은 학교측에 맡겨주는 것이 오히려 낫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한다.

육사를 위시한 각 학교의 교과 과정 개편 (상자기사 참조), 생도 평가 방식 수정, 군사훈련 과목 개선, 국민에 대한 자세 변화 등 일련의 움직임을 살펴볼 때, 체질 개선을 추구하는 학교 당국의 노력에는 진지함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 확실해 보이는 점은, 학교 당국을 포함해 군 스스로가 신세대야말로 미래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좋았던 옛 시절을 회상하며 즐기기보다, 미래의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팔을 걷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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