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 거꾸로 구조 조정
  • 朴晟濬 기자 ()
  • 승인 1998.03.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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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조직·인력 크게 증가… 임실군, 주민 절반 줄었는데 공무원 6배 늘어
경남 진주시 주민은 35만여 명이다. 이웃 창원시에 비해 15만 명 정도 적다. 그런데도 진주시의 행정 조직 규모는 창원시보다 훨씬 더 크다. 진주시는 1읍 15면 26개 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반면 창원시의 행정 조직은 1읍 2면 12개 동이다. 창원시 전체 공무원 수는 1천3백 명인데 주민 수가 훨씬 적은 진주시는 1천7백 명이 넘는다. 창원시와 진주시의 행정 수요를 같은 수준이라고 쳐도 진주시는 공무원 인력을 4백명 이상 낭비하고 있는 셈이다.

IMF 시대를 맞아 곳곳에서 거품과 군살을 빼기 위한 구조 조정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지만, 타성에 안주하며 여전히 변화의 ‘무풍 지대’를 고수하는 곳이 있다. 공무원 수 20만 명에 육박하는 거대 규모의 지방자치단체들이다. 한때 ‘풀뿌리 민주주의의 첨병’을 자임했던 자치단체들은 민선 단체장 시대가 열린 지 4년 만에 구조 조정 문제에 관한 한 ‘거북이 걸음’을 하고 있다.

최근 시정 개혁에 관한 내부 보고서가 공개됨으로써 실상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서울시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서울시정 경영 진단과 개혁 방안 도출을 위한 연구’라는 긴 이름이 붙은 이 보고서는 95년 당시 최병렬 시장이 삼성경제연구소에 의뢰해 작성했다가 조 순 전 시장에게 넘겼다.

보고서가 가장 심각하게 지적한 문제는 서울시가 본청·사업소 할 것 없이 조직 운영에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본청 조직의 경우 특히 비통합적·분립적 구조와 비경쟁적인 체계로 인해 결재 시간이 길어지고, 총근무 시간과 실제 업무 시간 간에 큰 격차가 발생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조사자들이 파악한 결재 소요 시간은 평균 23시간 2분인데, 결재 대기 시간은 평균 3시간 9분으로, 시청 공무원들은 20시간 가까이를 기다리는 데 허비하고 있었다. 이와 비슷하게 시청 공무원은 하루 평균 9시간 넘게 근무하는 것으로 조사되었지만, 실제 일하는 시간은 평균 8시간을 넘기지 않았다. 특히 민방위국(민방위재난관리국으로 개편됨)이나 가정복지국 소속 공무원들이 실제 업무를 보는 시간은 각각 6시간 24분과 6시간 57분에 그쳤다.

본청 이외의 각종 사업소나 도시개발공사·지하철공사 등 시 투자 기관도 방만한 운영 면에서 본청 못지 않다. 사업소·공기업 들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점은 인력 낭비. 삼성경제연구소가 진단한 결과,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는 한국수자원공사보다 4배 이상 많은 인력을 투입하고 있었으며, 공원녹지관리사업소의 경우 전체 인원 3백39 명 중 40명을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시개발공사는 3급 이상 상위 직급 공무원이 전체의 35%에 이르렀다. 머리가 너무 큰 기형 조직을 운영하고 있음이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서울시가 보고서의 지적에 따라 조직을 개편하려고 노력을 기울인 흔적은 IMF 한파가 몰아닥쳐 시의회측이 구조 조정을 촉구하기에 이른 최근에도 찾아보기 어렵다. 민선 단체장이 취임할 무렵 1만7천명이던 서울시 본청 소속 공무원 수는 현재 천 명 이상 불어났다. 서울시측은 시가 강덕기 시장직무 대행의 과도 체제라는 점을 들어 구조 조정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이같은 양상은 기초 자치단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상징적인 예가 지난 2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간담회에서 도마에 올랐던 전북 임실군이다. 임실군 사례의 골자는, 지속적인 이농에 따라 61년 이후 96년까지 주민 수가 절반으로 줄었음에도 군청 소속 공무원 수는 오히려 6배 가까이 늘었다는 점이다. 현재 임실군 소속 공무원은 6백60명 내외. 61년 임실군의 공무원은 겨우 1백18명이었다.

중앙 정부의 통제·간섭 없애야

임실군 출신 국회의원으로서 군 사정에 밝은 박정훈 의원(국민회의) 입에서 흘러나온 임실군 사례는 ‘누가 보아도 어처구니없는 일’로 대통령직인수위 위원들 사이에서도 크게 화제가 되었으나 곧 잊혔다. 지금까지 지방 행정 대부분은 ‘폭증하는 행정 수요에 맞춘다’는 명분과 달리, 조직 자체의 논리에 따라 팽창을 거듭해 왔음을 임실군 사례가 보여주고 있다.

지방 행정 조직이 구조 조정에 실패한 1차 책임은 물론 자치단체에게 돌아간다. 자치단체들이 양적 팽창 일변도로 조직을 개편해 왔으며, 조직을 대폭 수술한다면서도 ‘윗돌 빼다가 아랫돌 괴기 식’의 개편만을 일삼아 왔기 때문이다. 지방 공무원 스스로도 겉으로는 개혁에 찬성하면서, 막상 구조 조정 얘기만 나오면 막무가내로 반발하기 예사였다. 95∼96년 대대적인 조직 개편 작업을 진행한 서울시의 경우는, 1국 15계를 폐지하면서 2실 4관 6과 55계를 신설해 오히려 몸집을 더 부풀렸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같은 파행의 근본 책임을 중앙 정부의 독단과 전횡에서 찾는다. 행정자치부(옛 내무부)가 지방 행정 조직 편성권이나 공무원 인사권을 움켜쥔 채 지나치게 간섭하고 통제 위주의 정책을 펼치는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한, 지방 정부의 구조 조정은 요원하다는 것이다.

김병준 교수(국민대·행정학)는 “자치단체장에게 공무원 해직 권한을 주고, 계약제 등을 도입해 유능한 인력을 마음대로 채용할 수 있게 권한을 부여하지 않는 한, 최근 진행하고 있는 지방 공무원 감축 계획은 숫자 놀음에 그칠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한다.

선진 외국에서는 분권화가 가속화할수록 행정 조직의 규모가 줄어드는 이른바 ‘슬림화’가 공식처럼 통용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정반대 현상을 보여 왔다. IMF 시대가 아니더라도 이같은 역작용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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