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훈 중위 자살" 결론, 의문은 여전
  • 丁喜相 기자 ()
  • 승인 1998.05.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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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수사 당국 ‘김 훈 중위 자살’ 결론…동기 못 밝히고, 부대원들 알리바 이 뒤죽박죽
‘자살로 종합 판단된다. 그러나 그 원인은 알 수 없었다.’

지난 2월24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발생한 한국군 지원단 소속 김 훈 중위 의문사 사건에 대해 군 수사 당국이 내린 결론이다. 미군 수사팀(CID)과 한국군 1군단 헌병대 수사팀은 지난 4월29일 고 김 훈 중위 유족과 국방부 관계자, 기자단이 참관한 1군단 헌병대 사무실에서 수사 결과를 브리핑했다. 군 수사 당국은 사고 후 63일간 수사를 벌였는데, 미군 CID는 사고 현장 확보 및 분석을, 1군단 헌병대는 사고 당일 김중위 행적 및 부대원들 알리바이를 집중 수사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미군측은 ‘김중위가 오른손으로 자신의 오른쪽 관자놀이에 권총을 댄 후, 왼손을 이마 앞으로 뻗어 권총을 감싼 채 스스로 발사했다’고 결론 내렸다. 이어서 한국군 1군단 헌병대 수사팀은 ‘김중위의 부대 주변 인물들을 조사한 결과 범죄 혐의가 없었고 알리바이가 다 맞았다’는 요지로 타살 혐의가 없다고 밝혔다. 더 나아가 김중위가 내성적이며 부드러운 성격으로 소대원들을 다정하게 지휘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는 말을 덧붙임으로써, 부대 내에서 타살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고 결론지었다.
유족측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식이다”

이같은 내용의 수사 결과가 발표되자 발표장은 순식간에 수사관측과 유족·변호인 사이의 지루한 공방전 무대로 변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자살이라는 군 당국의 결론에 대해 유족측은 수사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하거나 의문을 제기하면서, 납득할 수 없으니 철저히 재조사해야 한다고 맞섰다. 결국 5시간에 걸친 설전은 이 사건을 둘러싼 한·미 양측 군 당국의 미묘한 입장 차이만 드러낸 채 미군측 수사관들이 황급히 퇴장함으로써 막을 내렸다. 사안의 민감성 때문에 국방부는 이 날 발표장에 국방부 인사국장이 참석해 유족측을 상대로 ‘오늘 발표 후에도 풀리지 않은 의혹이 있으면 끝까지 보강 수사를 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군측 수사팀은 ‘더이상의 수사는 없다는 것이 주한미군 사령부의 확고한 입장이다’라는 짤막한 성명을 남기고 발표장을 떠나 국방부의 계속 수사 약속을 사실상 일축했다.

사태가 이렇게 전개되자 김 훈 중위의 아버지인 김 척 예비역 육군 중장과 유족측 법정 대리인인 안병희 변호사는 미군측의 일방적이고 고압적인 수사 및 사건 처리 태도와, 이로 인해 철저 수사를 꾀하지 못한 한국군측 수사 내용을 문제삼으며 5부 합동(군수 법무 감찰 인사 헌병) 재수사를 강도 높게 요구하고 나섰다. 김 척씨는 “이번 수사 결과 발표는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식의 5공 시절 박종철군 치사 사건 발표와 똑같은 성격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현재 유족측은 천용택 국방부장관이 제시한 ‘한 점 의혹 없는 철저한 진상 규명’ 약속을 지키라면서, 청와대·국방부·국회 국방위원회에 재수사를 촉구하는 진정서를 쓰고 있다.

한·미 수사 당국은 ‘공조 수사’를 통해 김 훈 중위가 자살했다고 발표했지만, 수사 결과에는 의혹과 허점이 수두룩했다. 우선 미군측 수사 발표의 핵심은 ‘김중위가 자기 오른손으로 머리를 쏘았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미군측은 사용된 권총이 김중위에게 지급된 것이라는 점 외에는 그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권총의 지문이 누구의 지문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면서도, 김중위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쏘았을 경우 사방에 피가 튈 수 있겠느냐는 의문을 토대로 자살 결론을 내렸다.

미군측 발표 내용 중 더욱 큰 의문점은 김중위의 왼손에 권총 화약이 묻어 있다는 것과, 방아쇠를 쥔 오른손 손등에만 혈흔이 묻어 있었던 이유를 설명한 데서 나타났다. 미군측은 오른손으로 권총을 머리에 댄 후 왼손으로 권총을 꽉 잡는 부자유스런 상태에서 쏘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유족측이 다른 사람이 머리에 권총을 들이대는 위급 상황에서 김중위가 왼손으로 이를 잡고 막는 순간 발사되었을 가능성에 대해 묻자, 미군측은 ‘그런 상황도 가능하다’고 한 발짝 물러섰다. 그러나 곧이어 주변에 튄 혈흔으로 보아 장애물(다른 사람)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 미군측이 김중위가 똑바로 서서 쏘았다고 발표하자 유족측은 그런 자세에서는 시체가 반듯이 앉은 자세로 있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미군측은 당황한 모습으로 ‘김중위가 다리를 약간 구부리고 머리를 약간 뒤로 젖힌 채 쏘면 그런 자세가 나올 수 있다’고 답변했다.

논란이 계속되면서 유족측은 미군측이 자살로 꿰어 맞추기 위해 모든 부자유스런 상황까지 동원하고 있다며, 최초의 수사 증거물을 한국군에 넘기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미군측은 수사 기록은 미국 정부에 귀속된다며 넘길 수 없다고 못박았다.

김중위의 사망 동기를 밝히는 데 치중했다는 한국군측의 발표 내용도 분석 결과 허점투성이였다. 우선 한국군 수사팀은 기자단이 <시사저널> 제445호에 보도된 김중위의 유품 중 부대 군기 문란 실상을 담은 근무 일지와 부대원 편지를 입수했느냐고 묻자, 확보하지 못하고 구두 진술에 의존해 수사했음을 시인했다. 이어서 사병 9명이 영창에 갈 정도로 심각했던 구타 사건과, 보급품 분실로 장병 1인당 5만여 원씩 갹출해 남대문 시장에서 보급품을 사다 채워 넣어야 할 정도로 문란했던 군기에 대해, 그런 일이 있었음을 시인하면서도 그에 대한 지휘 책임을 묻지 않았고 부대에 문제점이 별로 없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심지어 판문점 근무 부대 지휘관과 병사들이 완벽하게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덧붙임으로써, 이미 공개 검증된 군기 문란 실상조차 애써 덮으려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이같은 한국군측 수사 내용의 허점 중 가장 심각한 대목은, 수사 발표문 내용에 허위 논란이 일 만한 대목들이 있다는 점이다. 김중위 사망 당일 부대원들의 알리바이를 적시한 수사 발표문에는, 정기 휴가를 나간 병사가 ‘내무반 취침’으로 둔갑해 있다. 또 내무반에서 취침 중이던 병사는 식당에서 라면을 먹으며 김중위를 목격했다는 증인으로, 그리고 보조 운전병은 TOC 근무자로 둔갑해 역시 김중위의 사망 전 행적을 증언하는 목격자로 채택되어 있다. 이같은 사실은 <시사저널>이 사건 당일 이 부대원 행적을 기록한 시간대별 근무 일지를 입수해 수사 기록과 대조한 결과 드러났다.

미군은 왜 초동 수사 기록 안 내놓나

결국 사건 당일 부대원 행적 기록표와, 1군단 헌병대 수사 기록 사이의 소대원 알리바이 불일치는 이번 사건 수사가 사실상 진실에서 벗어났음을 보여주는 증거라 할 만하다. 따라서 국방 당국은 군 수사 기관의 명예를 위해서도 김중위 사망 사건에 대한 전면적인 재조사와 의혹 규명에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천용택 국방부장관도 이날 수사 결과 발표장에 국방부 인사국장을 참석시켜, 공개적으로 ‘수사 발표 후에도 풀리지 않은 의혹 사항은 계속 수사하도록 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그러나 국방 수뇌부의 진실 규명 의지는 미군 당국의 ‘추가 수사 불가’ 태도로 인해 시험대에 올라선 꼴이다. 이날 미군 CID 수사 책임자로 나온 워잭 중령은 현장을 도망치듯 빠져나가면서 주한미군 사령부의 공식 입장을 ‘더 이상 수사는 없다. 수사 기록도 한국측에 넘기지 않을 것이다’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런 사태 전개에 대해 국방부의 한 당국자는 “한·미 우호 관계에 틈이 안 생기도록 국방부가 조정하는 역할을 하겠다는 자세로 임했지만 상황이 어려워졌다. 미군의 협조를 받도록 최대한 노력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방부의 이같은 태도는 지나치게 저자세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김중위 사망 사건이 난 초기부터 사법 및 수사 관할권을 둘러싸고, 사실상 주권을 침해받았다고 볼 여지가 있는 사태가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판문점 공동 경비 구역(JSA)은 유엔사령부 관할 지역으로서 한·미 행정협정의 사법 관할권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데도 미군측은 즉각 관할권을 행사했다. 설령 한·미 행정협정을 준용하더라도 협정 제22조 3항에 따르면, 판문점 공동 경비 구역에 근무하는 김중위는 한국군 지원단 소속이므로 한국군에 인적 관할권과 재판 관할권이 있고, 수사권도 여기에 맞추어 적극 행사해야 한다.

그러나 미군측은 사건 발생 초기에 한국군 수사관의 출입을 몇 시간 통제했을 뿐 아니라, 자기네가 수사권을 행사한 후 한국군 헌병대는 10여 분간만 둘러보고 가도록 했다. 이에 대해 주권 침해 논란이 제기되자 미군측은 처음에는 ‘미군 장교가 죽은 줄 알았다’라고 둘러대다가 너무 궁색하다는 비난이 일자, 수사 발표장에서는 ‘김중위 사망에 사용된 권총이 미제라서 미군이 개입했다’는 웃지 못할 변명을 내놓았다. 더 나아가 미군측은 자기네가 확보한 초동 수사 기록 및 증거물을 미국 정부에 보낼 것이며, 억울하면 미국 정부에게 열람을 의뢰해 보라고 버티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국방 당국이 김중위 사망 사건을 제대로 조사할 수 있을지 여부는 한·미 간의 재판 및 수사 관할권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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