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은 '으악 분업'
  • 권은중 기자 (jungk@e-sisa.co.kr)
  • 승인 2001.03.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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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비 청구 600%·약제비 60% 증가…
부당 청구 수십만 건, 보험 재정 파탄


사진설명 의약분업 현주소 : '진료는 의사, 조제는 약사'라는 의약분업 원칙이 뿌리 내리고 있지만, 의사와 약사의 담합 행위와 부당 청구는 이런 취지를 역이용하고 있다.ⓒ한향란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았지만 의료 정책은 세금과 함께 미국 대선에서 당락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정책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내년 대선에서는 의료 정책이 가장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 분명하다. 현정부가 의약분업과 의료보험 분야에서 워낙 실정을 거듭한 탓이다.

지난해 7월1일부터 시작되어 7개월이 지난 의약분업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한 의사들의 집단 반발을 무릅쓰면서까지 밀어붙인 의약분업은 과연 성공적일까. 정부는 의약분업을 하면 약물 오·남용이 줄어들고 약값 거품이 빠진다며, 의약분업이 결국 건강과 비용 면에서 득이 되는 개혁 중의 개혁이라고 국민을 설득했다.

그러나 현실은 도상 훈련과는 너무 달랐다. 그래서인지 보건복지부는 아직 공식 평가마저 하지 않았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7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보건복지부나 건강보험공단이 의약분업을 점검하는 공식 평가서 하나 내놓지 않았다. 3월 말에나 의약분업 추이에 대한 공식 분석 자료가 나온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보건복지부장관이 나서서 의약분업을 뒤집는 발언까지 하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월 진료비 심사기관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사평가원·옛 의료보험연합회)이 조사한 자료가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이 자료는 전 보건복지부 고위 간부였던 김종대씨 저서인 <의료보장 제3의 길>에 실리면서 비로소 알려졌다. 김씨는 1999년 의료보험 통폐합에 반대했다가 면직된 인물이다. 이 책에 실린 '의약분업 전후 처방약제 추이 분석'과 '진료비 및 진료 행태 변화 추이 분석' 두 자료는 의약분업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심사평가원은 의료기관과 약국 외래 환자의 의료보험료 지급 전자 청구(EDI) 자료를 토대로 의약분업 전인 지난해 5월과 분업 후인 9월·10월 결과를 비교했다. 이 자료만 놓고 보면 의약분업이 실시된 뒤에도 약물 오·남용이 여전하고, 약값 부담은 오히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항생제 사용 25% 늘고, 주사제 접종 안 줄어


사진설명 문제는 주사제 : 보건복지부가 주사제를 의약분업에서 제외하겠다고 해 파문이 일고 있다.ⓒ한향란

자료에 따르면, 의약분업 시행 이후 건강보험공단이 약국에 지급하는 약제비는 증가했다. 조제료를 제외한 진료 건수 당 약제비는 의약분업 전 3천4백20원(5월)에서 9월에는 5천4백84원(60.4%), 10월에는 5천1백74원(51.3%)으로 늘었다. 약제비가 급증한 까닭은 의사들이 비싼 약을 처방했기 때문이다.

또 안 먹을수록 좋다는 항생제 사용량이 늘었고(25%), 안 맞을수록 좋다는 주사제 접종 횟수도 전혀 줄지 않았다. 또 의료기관은 의약분업 전보다 훨씬 비싼 주사제(65%)와 약품(113%)을 처방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처방 일수도 대부분 종전보다 하루 가량 늘었고, 신경외과는 이틀이 늘었다. 복지부 조사에서도 지난해 12월 1천2백만 청구 건수 가운데 16.6%인 2백17만건에서 먹는 항생제와 주사용 항생제가 동시에 처방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이런 식의 약제비 증가는 필연적으로 진료비 상승을 불러오고 있다. 의약분업 전과 비교해 11월까지 월 평균 진료비는 약 16% 증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약제비가 약국으로 지급되기 때문에 약국은 의약분업 전보다 진료비 청구가 무려 616%가 증가했고, 전체 진료비 청구액의 23.8%를 차지했다.

개인이 써야 하는 돈도 늘었다. 수가가 인상되었고 환자가 약국을 반드시 한번 이상 방문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자료는 환자가 병원을 찾을 경우 진료비는 8천88원(83.7%)이, 의원을 찾을 경우 6천1백51원(62.7%)이 증가한다고 지적했다(42쪽 표 참조). 또 한 이비인후과를 동일 증상으로 찾은 환자 7명의 청구 비용 사례를 비교한 결과 진료비가 적게는 56.3%, 많게는 112%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진료비 대부분이 보험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보험부담금이 204%까지 늘었다. 한마디로 개인이 치료에 쓰는 돈은 물론 사회가 물어야 할 비용도 가파르게 증가한 것이다.

그 증가세는 현기증이 날 정도다. 이대로 가다가는 보험 재정 파탄은 시간 문제라고 의약분업을 책임진 보사부 관료들이 말할 정도다. 최선정 보건복지부장관이 국회 보건복지위 위원들을 설득해 의약분업의 핵심이라고 하는 주사제를 결국 의약분업에서 제외한 것도 의보의 재정난 때문이다.

지난해 건강보험은 지역·직장 의료보험 모두 적자를 냈는데, 적자액은 모두 1조90억원에 이른다. 이에 따라 누적 적립금도 지역 의보 3백64억원, 직장 의보 8천3백59억원으로 대폭 줄었다. 특히 지역 의보 적립금은 1일 평균 보험 급여비가 2백20억원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틀 치 보험료도 안된다. 이런 재정난으로 건강보험공단은 1∼2월에 정부로부터 받는 국고 보조금 1조9천억원의 33%를 이미 쏟아 부었다. 의약분업 전 월 평균 보험 급여비가 6천8백억원이던 것이, 11월에는 1조9백억원, 12월에는 1조5백64억원으로 늘었다. 올해 징수할 보험금이 9조원에 불과해 이대로 가다가는 4조원 가량 적자가 불가피하다.

통합을 앞둔 상황에서 지역 의보의 적자가 누적되어 의료보험료 대폭 인상이 뒤따를 전망이다. 그러나 농민·노동자·자영업자가 주축인 지역 의보 가입자가 이런 급격한 인상을 순순히 받아들일 리 없다. 또 통합을 앞둔 직장 의보 가입자는 적자투성이인 지역 의보 때문에 자신들의 유리 지갑에서 정부가 돈을 빼내간다면 반발할 것이 분명해 의료보험 문제를 방치하다가는 나라가 큰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정부·여당, 담합·부당 청구 막으려 안간힘


보건복지부와 여당은 이런 심각성을 깊이 인식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우선 진료비가 왜 증가했는지 분석했다. 심사평가원은 진료비 증가 원인으로 △수가 인상과 의원·약국 동시 방문에 따른 진료비 증가 △고가 약제와 과잉 처방 △과잉 부당 청구를 꼽았다.

복지부는 강도 높은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약값 거품을 강제로 빼는가 하면, 주사제를 많이 쓰면 보험 급여비를 깎겠다는 지침을 발표했다. 또 삭감이 불가능하다고 의원들을 설득했던 주사제 처방료(단독 2천5백40원, 복합 1천2백70원)와 조제료(단독 3천1백10원, 복합 7백70원)도 스스로 삭감하기로 했다. 과잉 청구 요양기관의 블랙리스트도 만들 계획이다. 복지부의 한 관계자는 "의약분업을 시행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판단할 단계가 아니다. 다양한 대응책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라고 말했다.

여당도 비슷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의약분업 원칙을 훼손하는 부당 청구와 담합을 발본 색원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본다. 특히 여당은 이런 쓸데없는 지출을 줄여서 보험료를 인상하지 않고 보험 재정의 안정을 꾀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정리했다. 의사와 약사가 담합해서 지능적인 방법으로 보험 급여를 부당 청구하는 것이 만연해 있는 데 반해 심사평가원이 제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이 큰 문제라고 보고 있다. 시민단체는 의협이 추천한 데다 김대중 대통령의 인척(전처의 제부)인 서재희 원장이 취임할 때부터 심사평가원을 곱지 않게 보았다.

건강보험공단이 지난해 부당 청구 혐의가 있는 8백33개 요양기관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군대 간 사람이나 심지어 죽은 사람까지 동원해서 약값을 부당 청구한 건수만 해도 2만건이 넘는다. 전체 청구 기관의 4.8%만 조사한 것이니까 실제 부당 청구는 엄청날 것으로 보인다. 김태홍 의원(민주당)은 "심사평가원이 부당 청구를 타이완 수준으로만 적발한다면 1년에 약 5천억원의 의보비를 절감하는 것은 물론 '경찰 효과'로 과잉 청구를 예방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건강보험재정건전화기획단(위원장·김성순)을 만들고 건강보험 재정건전화 대책을 곧 내놓을 방침이다. 민주당 대책의 핵심은 보험금 누수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다.

의료인들은 또 부당 청구 가능성이 높은 행위별 수가제를 질병에 따라 진료비를 매기는 포괄수가제로 전환해야 하고, 병원 별로 보험 급여 총액 제한을 두어 과당 청구를 원천적으로 봉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의료인들은 현재 20% 수준인 정부 보험재정 지원금을 40% 선까지 끌어올리는 것도 급선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의 의지다. 민주당 김성순 의원은 "비용을 줄이는 방법은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지만 현재처럼 보건복지부가 이익 집단에 흔들려 의약분업 원칙을 포기하고 여당마저 중심을 잃는다면 국민을 어떻게 설득하겠느냐"라고 우려했다. 약사회는 주사제를 의약분업에서 제외하는 데 항의해 3월4일부터 5일간 처방전을 받지 않겠다고 나섰고, 의사협회도 자존심 싸움을 펼칠 기세여서 또 한 번 의료 대란의 전운이 감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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