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어르신들 '인터넷 바람' 났네
  • 전남 곡성·나권일 광주 주재기자 ()
  • 승인 2001.03.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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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화 사회 즐기는 전남 곡성·함평 신풍속…
60∼70대 노인, 정보 검색·e메일 '척척'


사진설명 "거 참 재미있고 신기하네" : 전남 함평군청 전산교육장에서 인터넷 교육을 받고 있는 지역 어르신들. ⓒ시사저널 나권일

전남 곡성군 곡성읍내에서 자동차로 5분 정도 걸리는 신리마을의 '신성작목반' 총무인 이상배씨(44). 그는 매일 아침 자신의 집에서 초고속 통신망(ADSL)을 통해 농협중앙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농사 가격정보를 검색해 딸기 출하 물량과 가격 변동 내용을 살펴본다. 딸기 농사를 짓는 이씨로서는 출하 시기를 조절하는 데 가격 정보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씨는 또 딸기·수박·멜론 등 농사 정보를 담은 신성작목반 홈페이지(ss. koksong.net)를 클릭해 딸기 주문이 들어왔는지 확인한다. 도시 지역에서 주문해 올 경우 택배를 통해 바로 배송한다.

이상배씨는 일을 마친 뒤나 점심 무렵에는 마을회관에 마련된 '정보사랑방'을 찾아 인터넷을 검색하고 정보를 교환한다. 마을 PC방이라고 할 수 있는 정보사랑방에는 초고속 통신망으로 접속할 수 있는 컴퓨터 4대와 컬러 프린터가 있어 원하는 자료를 출력할 수 있다.

정보사랑방은 아이들이 학교 숙제를 하고, 주부들이 틈틈이 모여 인터넷을 탐험하는 교육 공간이기도 하다. 이씨는 "인터넷을 배운 뒤 생활이 즐거워졌다. 하루 1∼2시간 이상은 인터넷을 사용하는데, 배울 점이 많다"라고 말했다.

수박 농사를 짓는 문학석씨(60) 역시 집 안방에 있는 컴퓨터를 통해 거의 매일 친구나 광주에서 학교에 다니는 딸에게 e메일을 보내고 받는다. 자판에 익숙치 않아 편지를 쓰는 데 시간이 걸리기는 하지만 날아온 편지를 열어보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나무가꾸기에 관심이 많은 문씨는 정원수 관련 사이트와 수박 농사 정보를 다룬 사이트나 건강 관련 정보를 빼놓지 않고 검색한다.

사진설명 "딸기값이 얼마야?" : 전남 곡성 신리마을 주민들이 '정보사랑방'에서 인터넷을 검색하고 있다. ⓒ시사저널 나권일

농촌 지역 정보화 시범 마을로 불리는 곡성읍 신리마을의 풍경이다. 신리마을은 97세대 가운데 25세대가 컴퓨터를 사용한다. 이들은 한국통신과 포항제철 등에서 기증받은 중고 PC를 보수한 뒤 초고속 통신망인 ADSL 전용 회선으로 인터넷을 즐기고 있다. 주민 20여 명은 모두 곡성군청이 부여한 e메일 주소를 가지고 있다. 회갑을 넘긴 할아버지도 군청 홈페이지에 접속해 고현석 곡성군수에게 편지를 보낸다.

신리 이장 이선재씨(41·곡성군 농민회장)는 "정보화 교육을 받은 주민 20여 명이 인터넷과 e메일을 활용한다. 인근 마을에서도 우리 마을 정보사랑방을 모두 부러워한다"라고 말했다. 마을 주민 30%는 날마다 인터넷을 즐길 정도여서 웬만한 도시 마을보다 정보화 전파 속도가 빠르다.

신리마을 주민은 지난 2월 한달 동안 마을회관에 마련된 정보사랑방에서 매일 저녁 4시간씩 인터넷 교육을 받았다. 당시 교육생 반장을 맡았던 문학석씨는 "교육이 모두 끝난 뒤 책거리에 비유해 뒤풀이인 '넷거리'를 했다. 우리나라에서 넷거리라는 것을 해본 농촌 마을은 우리가 처음일 것이다"라며 웃었다.

인터넷 교육을 주도한 김수경 곡성군 정보통신계장은 "나이 드신 분들이 e메일로 안부를 물어올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 주민이 날마다 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농촌 지역의 다른 마을회관에도 PC방 형태의 공간이 들어서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신리마을 주민이 정보화에 관심을 갖게 된 데는 농촌 정보화 시범 마을 개념을 창안한 민주당 김효석 의원의 격려와 지원이 직접적 계기가 되었다. 현재 곡성읍 신리마을과 장성군 황룡면 내황마을, 그리고 담양군 대전면 남부마을 등 모두 세 곳이 시범 마을로 지정되어 있다.

김효석 의원(농촌지식정보화추진위원장)은 인터넷을 이용하고 전자 상거래를 시도하는 마을 PC방이 농촌 정보화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며, 정보사랑방이 다른 농촌 지역으로 확산될 수 있을 것으로 예견했다.


기반 시설 부족·비싼 사용료가 정보화 걸림돌


정보화의 사각지대였던 농촌 지역의 정보화는 현재 주민의 욕구를 행정기관이 받아들여 적극 교육하고, 장비를 지원하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곡성군의 경우 농사일이 끝난 저녁 시간에 정보통신 담당자들이 컴퓨터를 들고 마을을 찾아가는 탐방 교육을 하고 있다. 함평군(군수 이석형)은 이와 달리 군청 전산교육장에서 농촌 노인들에게 정보화 강좌를 열고 있는데, 교육 과정을 연장할 정도로 농촌 노인들이 인터넷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포털 사이트 야후를 통해 전라남도 홈페이지를 방문한 교육생 할아버지 모두환씨(71·함평군 나산면 월봉리)는 "손이 굳어 글씨 쓰는 속도가 느려서 그렇지 혼자서도 여러 군데 사이트 주소를 쉽게 찾아 들어갈 수 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함평군청 교육강사인 박찬희씨(31)는 "할아버지 할머니 들의 교육열이 높다. 컴퓨터를 가진 노인들이 지속적으로 교육받는다면 인터넷 활용에 별 문제가 없다"라며 농촌 노인들에게도 인터넷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농촌 정보화 열기는 뜨겁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우선 컴퓨터가 부족하다. 함평군 전산교육장의 한 할아버지는 막상 집에 컴퓨터가 없어 배운 것을 금세 잊어버리곤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전남의 농촌 지역 PC 보급률은 10% 수준이다. 농촌 지역에서는 겨우 군청이 소재한 읍과 1∼2개 면 지역에만 초고속 통신망이 깔려 있을 정도로 기반 시설이 부족한 데다 한달 평균 3만3천∼4만원씩 사용료를 내야 하기 때문에 농민들을 주저하게 만들고 있다.

정통부·농림부·행자부·산자부 등이 비슷한 농촌 정보화 사업을 경쟁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도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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