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과 한총련 '설복 있는 우정'
  • 고제규 기자 (unjusa@e-sisa.co.kr)
  • 승인 2001.04.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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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협 선배·후배 대학생,

'노선' 놓고 격론…"상투적 투쟁 지양해야"


지난 4월6일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은 홍익대에서 대의원 대회를 열고 9기 한총련을 이끌 지도부를 선출했다. 한총련은 1996년 연세대 사태를 계기로 100여개 학교가 탈퇴했지만 여전히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를 이은 학생운동의 대표적인 조직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재야와 시민단체에서도 '계륵'으로 통할 정도로 한총련은 '왕따' 당하고 있다. 그런 한총련을 누구보다 안타깝게 바라보는 이들이 있다. 바로 한총련의 전신으로 1980년대 학생운동을 이끌었던 전대협 출신 386세대다.




한총련 대의원 대회를 앞두고 지난 4월2일 홍익대 학생회관에서 현재 한총련을 이끌고 있는 학생들과 사회에 진출한 전대협 세대가 처음으로 만나 학생운동의 진로를 놓고 격론을 벌였다. 이 날 토론장에는 이정우 변호사, 우상호(민주당 서대문 갑)·오경훈(한나라당 양천 을) 지구당위원장 등 각계에 진출한 '운동권 스타' 13명이 참석했고, 한총련측에서는 수배된 6기 손춘혁·7기 윤기진·8기 이희철 의장과 9기 임시 의장 이용헌씨(전남대 총학생회장) 등이 나섰다.


"시대 변화 못 따르는 학생운동, 생명력 없다"


오후 7시30분부터 시작된 토론은 먼저 운동권 선배들의 충고로 시작되었다. 이정우 변호사는 "최근 학생운동의 영향력은 급격히 축소되었다. 국민 정서와는 동떨어진 상투적인 투쟁을 벌였기 때문이다"라며 포문을 열었다. 우상호 위원장도 한총련의 운동 방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학생운동 활성화를 위해서는 한총련의 이적성 논란을 잠재울 노력과 투쟁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대 변화에 뒤떨어진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는 학생운동은 더 이상 생명력이 없다고 질타했다. 한총련의 투쟁 방식에 대해 386세대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듯했다.


한총련 지도부는 선배들의 지적을 수긍하면서도 자신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용헌 9기 한총련 임시 의장은 "학생운동의 위기는 정부의 탄압 때문이다. 단과대학 학생회장에 당선되는 즉시 이적단체에 가입했다고 수배되기 때문에 위축될 수밖에 없다"라고 반박했다. 이씨를 비롯한 현재 한총련 지도부는 학생운동권의 위기를 '안'이 아닌 '밖'에서 찾으려 했다.


올해 한총련 지도부가 택한 투쟁 노선에 대해서도 격론이 벌어졌다. 이용헌 임시 의장은 "한총련은 올해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을 환영하는 행사를 대대적으로 벌이고, 다른 한편으로 〈조선일보〉와 한나라당 등 반통일 세력 분쇄 투쟁에 나서겠다"라고 밝혔다. 이씨는 6·15 남북 공동선언 1주년인 6월15일부터 8월15일까지를 통일 주간으로 설정하고, 이때 반통일 발언을 일삼는 김영삼 전 대통령 체포결사대까지 꾸리겠다고 밝혔다.


후배들의 투쟁 노선에 대해 오경훈씨는 "학생들의 투쟁이 오히려 남북 관계를 경직시키는 데 이용될 수도 있다"라고 우려했다. 정명수 전대협 동우회장은 "선언적인 투쟁을 벌이기보다 실질적인 남북화해운동을 펼쳐야 한다"라며 김정일 위원장 답방 이후의 남북 화해 흐름에 주목하기를 당부했다.


밤 11시가 넘어 끝난 4월2일 토론에서 학생운동의 위기를 정권의 탄압 탓이라고 주장했던 이용헌 임시 의장은 4월6일의 한총련 대의원 대회에서 예상 외로 낙선했다. 지금까지 임시 의장이 낙선한 적은 없었다. 전대협 세대처럼 학생운동의 문제점을 '안'에서 찾자고 목소리 높였던 최승환 부산대 총학생회장이 의장에 당선해 학생운동에 변화가 일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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