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소싸움 '국제 히트 상품'
  • 경북 청도·박병출 부산 주재 기자 ()
  • 승인 2001.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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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언론 주목하는 '관광 명품'으로 발돋움…
투우 상설화 등 마케팅 박차


먹거리도 미인대회도 없는 '단조로운' 시골 잔치가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다. 경북 청도군의 소싸움이다. 소싸움은 대표적 농경 민속의 하나로 꼽힌다. 일제 시대 한동안 중단되었다가 되살아나 1970년대부터 다시 확산되는 추세다. 1t에 가까운 거구가 뜨거운 콧김을 내뿜으며 상대를 향해 뛰어드는 박진감, 승자와 패자를 명쾌히 갈라 놓는 다양한 기술은 보는 이들을 매료한다.




청도군이 소규모 지역 잔치로 열리던 소싸움을 본격 관광 상품화한 것은 1999년이다. 전국의 내로라 하는 싸움 소 1백30여 마리를 불러 모으고 일본에서도 6마리를 '초청'해 판을 벌였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일본은 물론 투우의 본고장이라고 자처하는 스페인 언론과 CNN·UPI·AP 등 통신사의 취재진이 몰렸고, 외국인 4백여 명을 포함해 15만 명이 관람했다. 한·일 대결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접전 끝에 6전 3승3패로 승부를 가리지 못한 것이 더 많은 관심을 모아, 지난해에는 무려 42만 명이 투우장을 찾았다. 두 번째 치른 한·일전은 17전 8승 6패3무로 한국의 승리였다. 중요 경기가 20여 개 외신을 통해 보도되었고, 일본 NHK는 8월11일부터 3일에 걸쳐 한·일전 모든 경기를 특집으로 방송했다. 뿔을 좌우로 흔들어 공격하는 '뿔치기', 상대의 옆을 휘돌아 배나 옆구리를 공격하는 '옆치기', 씨름의 뒤집기와 흡사한 '들치기' 등 화려한 기술을 구사한 일곱살 짜리 황소 '번개'는 스타로 떠올랐다. '번개'의 라이벌 '사자'와, 외적을 상대하느라 힘을 소모해 국내전 우승을 놓친 초중량급 '람보'(960kg)는 올해 대회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패한 일본측도 설욕을 벼르고 있다. '마코토'(9살·865kg) '고데츠'(10살·〃) 등은 귀국을 포기한 채 1년 넘게 현지 적응 훈련을 계속하고 있다. 아버지를 대신해 한국을 오가며 '마코토'를 보살피고 있는 나가타 마나부(22·가고시마현)씨는 "지름 15m인 일본 경기장에서만 싸우다 낯선 한국 경기장(지름 43m)에 들어간 것이 패인이었다. 힘과 중량에서 앞서는 데다 이제는 한국 경기장에도 익숙해 어떤 소와 붙여도 자신 있다"라고 말했다.


'전국 소싸움 대회' 형식으로 열리는 잔치가 번외 경기인 한·일전으로 더 많은 인기를 모으자, 청도군은 순발력을 발휘했다. 투우 경기를 상설화해 외국 관광객에게 보일 계획을 세운 것이다. 다소 성급한 듯 보였던 이 구상은, 민간 자본 유치에 성공하면서 빠르게 진척되고 있다.


민간 자본 유치, 아시안게임·월드컵 특수 노려


지난해 공모를 통해 청도군과 투자협약을 맺은 (주)동성종합건설(대표이사 강호성)은 청도 용암온천지구 안에 지름 45m짜리 원형 투우장과 만 명을 수용할 관람석을 짓고 있다. 부산 아시안게임과 월드컵 대회 전인 내년 2월 시설을 준공하고, 대형 온천욕장과 호텔·쇼핑몰, 농경 문화와 소를 테마로 하는 놀이공원 등을 단계적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동성은 4월11일 경상남도와 거제시 장승포에 150m 높이(1천4백93평) 관광 타워를 건립하고 해수풀장·해양수족관 등 유원지를 조성하는 민자사업 투자의향서를 체결하는 등 관광산업에 눈을 돌리고 있는 부산의 중견 건설업체이다.




동성측은 소싸움 관광사업 운영을 맡을 '코리아 불스(Korea Bulls)'라는 별도 법인을 만들어 활발한 해외 홍보 활동을 펴고 있다. 주대상은 동남아와 일본 관광객이다. 지난해 말 홍콩과 일본에서 가진 소싸움 관광 설명회에는 현지 여행사와 관련 기관 관계자들이 많이 참석해 관심을 보였다. 경주·합천·한려수도 등 영남권 관광지와 청도 소싸움을 연계한 2박3일 정도의 여행 상품을 우선 개발한 다음, 연간 4천7백만 명에 달하는 스페인과 1천8백만명 규모의 멕시코 투우 관광객을 겨냥해 유럽·미주 지역 홍보에도 나설 계획이다.


강호성 대표는 "우리의 전통 소싸움은 사람이 소를 '데리고 놀다가 죽이는' 잔인한 유혈극이 아니다. 모래밭을 가르고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동안 소와 관람객이 혼연일체가 되고, 힘이 다하면 등을 돌려 패배를 인정하는 멋진 게임이다. 관람객이 구경꾼에 그치지 않고 참여와 체험의 재미를 누릴 수 있다"라며 관광 상품 가치가 서양의 투우에 비해 월등히 높다고 강조했다.


청도군과 코리아불스가 추진하는 또 다른 야심작은 '우권법' 제정이다. 경마나 경륜처럼 우승 소를 알아맞혀 배당금을 받는 '우권'을 발매하겠다는 것이다(오른쪽 인터뷰 참조). 청도군 관계자는 문화관광부 내부에서 '지금은 시기상조'라는 반응이 있다면서도 "상설 투우장 건립에 국비·도비가 65%나 투자되는 만큼 정책적 지원이 따를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올해 청도 소싸움은 5월2∼6일 청도군 이서면 서원천 둔치에서 열린다. 상설 투우장 개장 전 단계로 입장료(2천원)를 받기로 했는데도 벌써 6만 여 장이 예매되는 등 반응이 좋아 관람객이 70만 명을 넘어서리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망이다. 인구 5만6천명인 소규모 자치단체가 한국 방문의 해이자 지역 문화의 해에 '쇠뿔'로 단단히 '사고'를 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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