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지 마, 타이거스"
  • 나권일 광주 주재기자 ()
  • 승인 2001.05.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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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프로야구 팬들, 해태 구단 연고지 지키기 'S.O.S'


지난 4월17일 광주 무등경기장 야구장에서 열린 해태 타이거스와 SK 와이번스의 시즌 1차전. 극성스럽기로 소문난 해태 팬들의 열광적인 흥분은 줄어들었지만, 2천여 관중은 여전히 선수들의 이름을 부르며 '파이팅'을 외쳤다. 예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해태 타이거스 연고지 이전을 반대한다'는 플래카드가 곳곳에 내걸린 관중석의 풍경이었다.




해태제과가 부도 난 이후 하락세를 걷고 있지만, 해태 구단에 대한 광주 시민들의 애정은 변함이 없다. 프로 야구 개막일인 4월7일에 시작된 연고지 이전 반대 서명운동은 10일 만에 2만여 명이 참여할 정도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해태 구단은 누군가에게 팔려 가야 할 '급매물'신세이다. 모기업인 해태제과가 법정 관리를 신청해 구단을 책임질 수 없는 처지이고, 호남 지역에서 마땅한 인수 기업을 만나지 못하면 광주 지역 연고도 유지하기 어렵다.


해태 팬들은 연고지 이전 문제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가족과 함께 경기를 관전하던 김양곤씨(31·광주 서구 풍암동)는 "해태는 호남 사람들의 응집력을 일깨워준 특별한 구단이다. 광주시가 시민 구단으로 만들어서라도 광주 연고를 유지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연고 기업들, 인수에 난색…울산시, 적극 '구애'


광주 지역 프로 야구 팬들로 구성된 '해태 연고지 이전 반대 투쟁위원회' 한현명 의장은 "해태가 광주를 떠나면 호남은 프로 야구 구단 실종 시대를 맞게 된다. 한국 프로 야구의 균형적인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다른 지역 기업이 인수하더라도 광주 연고를 유지하고 타이거스라는 이름도 고수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광주광역시 역시 여론에 떠밀려 대책위원회까지 꾸렸지만, '시민 구단'을 운영할 만한 재원이 없어 뾰족한 수를 못 찾고 있다.


경제 논리로만 따진다면 타이거스 구단이 매각된 뒤에도 광주 연고를 계속 유지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현재처럼 경기당 1천∼2천명 수준에 그치는 관중 수입으로는 애당초 수지가 맞지 않는다. 광주시는 무등야구장 시설 사용료를 면제해 주기로 조례를 개정하고, 추경 예산에 시설 보수 비용을 반영하는 수준의 지원책만을 고려하고 있을 뿐이다.


현재 광주·전남 연고를 유지할 수 있는 기업으로는 포항제철과 기아자동차 등이 꼽히고 있지만 이들 기업은 '1년에 100억 원이 들어가는 야구단을 운영할 만한 재정을 부담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광주 연고 유지가 희박해지자 여수시와 울산시가 발 빠르게 한국야구위원회(KBO)에 매입 의사를 밝혔다. 여수시는 LG·한화 등 여천공단 입주 기업들을 통해 해태 구단을 유치하려 하지만, 정작 전용 구장 건설에 한국야구위원회의 지원을 바라고 있을 정도로 '희망 사항'에 그치고 있다. 반면 울산시는 시비 2백80억원을 들여 2005년까지 2만4천석 규모의 전용 구장을 지을 예정이어서 한층 유리한 조건이다. 최근에는 축구 복표 사업자인 한국타이거풀스(주)가 해태제과의 주 채권단인 조흥은행의 제의를 받고 해태 구단 인수를 결정했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아직 검토 중일 뿐 최종 결론은 내리지 못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조흥은행과 한국야구위원회는 해태 구단이 호남 외 지역의 기업에 매각되더라도 광주 연고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광주 지역 연고에 지나치게 집착할 경우, 인수 기업에 따라 현정부가 호남을 정치적으로 배려했다는 구설에 휩쓸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 지난 20년 동안 호남인들과 동고동락했던 해태 타이거스가 이제는 가질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는'계륵'이 되어 버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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