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종 갱신에 속 뒤집힌 '청산'
  • 전남 나주·나권일 광주 주재기자 ()
  • 승인 2001.05.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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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림 조성 명목,
마구잡이 벌목으로 경관 파괴…산사태·산불 부를 수도


전남 나주의 금성산은 해발 451m로 주 능선의 길이만 10여km에 달해 등산객이 즐겨 찾는 곳이다. '병풍산'으로 불리며, 등반대회가 곧잘 열린다. 군사 요충지로서 드라마 〈태조왕건〉에 등장한 금성산성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난 3월, 금성산의 주 능선 가운데 하나인 이별재(235m) 아래 기슭은 소나무숲과 산벚나무가 마구 베어져 마치 산불이 난 것처럼 폐허로 변해 버렸다. 산림 소유자가 경제림을 조성한다며 수종갱신(樹種更新) 명목으로 5 ha(1만 5천여평)에 달하는 곳에서 자라는 보기 좋은 나무들을 모두 베어냈기 때문이다.


수종 갱신이란, 정부가 자치단체에 권장하는 '영림(營林)계획'에 포함된 사업으로, 경제성이 없는 나무를 벌목하고 지역의 토양에 맞는 다른 경제림을 조성하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특히 리기다소나무가 주 벌목 대상인데, 1960년대 후반부터 황폐화한 산지를 복구하고 땔감으로 쓰려고 정책적으로 심은 나무여서 경제성이 떨어지는 수종이다.


때문에 30년이 지나 벌기령(伐期齡)을 넘긴 리기다소나무 등을 벌목해 산주가 목재로 팔아 소득을 올릴 수 있도록 유도하고, 대신 편백나무·잣나무·낙엽송·상수리나무 등 경제성 있는 수종으로 대체하려는 것이 바로 수종 갱신 사업이다. 정부는 특히 2년 전부터 지방자치단체가 자율적으로 영림계획을 세워 경제림을 조성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 금성산에서 이루어진 수종 갱신은 경제성 없는 나무를 베어내고 새로운 나무를 조림한다는 취지가 무색할 지경이었다. 주민과 환경단체에 따르면, 나주시 노안면 오정리 일대에 속한 금성산에서는 급경사가 심한 산비탈 나무들까지 모두 베어내 장마철 산사태가 우려된다. 또 조림 수종으로 심은 2년생 편백나무 일부가 벌써 말라죽거나 등산객의 발에 밟혀 죽어 모양 내기 조림에 그쳤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기자는 지난 5월3일 '금성산 되찾기 시민연합' 관계자와 함께 현장을 찾았는데 1ha마다 3천주를 심는다는 조림 원칙이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편백나무 어린 묘목이 산비탈과 돌무더기 땅을 가리지 않고 아무렇게나 심어져 있었다. 산사태가 우려되는 곳이나 암반 지역에서는 수종 갱신을 피해야 한다는 기본조차 무시되었다.




현장에서 만난 한 마을 주민은 "조림사업을 한다면서 리기다소나무뿐만 아니라 육송과 경관 좋은 벚꽃나무까지 다 베어버려 병풍산이라는 이름이 빛을 잃었다. 마을 청년회원들이 내년부터는 시 당국이 더 이상 수종 갱신 허가를 내줘서는 안된다고 흥분하고 있다"라며 안타까워했다.


현장을 둘러본 이웅범 금성산되찾기시민연합 사무국장은 "아무리 사유림이라고 하지만 시민의 공동재산 성격이 짙은 산을 수종 갱신이라는 명목으로 버려 놓았다. 자치단체의 감독 기능이 부실한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라고 지적했다.


나주시가 올해 수종 갱신을 허가한 나주시 다시면 가운리 일대 역시 리기다소나무들이 벌목된 뒤 방치되었고, 말라죽은 편백나무들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기자를 안내한 주민은 벌채한 나무들을 쌓아놓았다가 산불이 나면 크게 번질 위험이 있다고 걱정했다.


그러나 올해 실시된 수종 갱신 사업에 대해 나주시는 '문제될 것 없다'는 입장이다. 김영석 나주시청 녹지과 산림조성담당 계장은 "현장을 모두 둘러보고 감독했는데 사업이 제대로 이루어졌고, 규정이나 산림법에 근거해 문제될 것이 없다"라고 밝혔다.


김계장은 또 "7월께 활착률을 모두 조사해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 묘목이 80% 미만일 경우 내년에 산주가 자비 부담으로 다시 심을 예정이다. 베어낸 리기다소나무 원목의 잔가지들은 그대로 둬야 자연스럽게 퇴비가 되고, 산사태도 방지할 수 있다"라며 주민들의 산불 걱정을 일축했다. 그는 개벌(皆伐)에 가까운 벌목이 이루어지는 수종 갱신의 특성상 일시적으로 경관이 훼손되거나 생태계가 파괴된 것처럼 보이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금성산 등지에서 이루어진 경관 파괴와 관련해 전라남도 산림과의 관계자는 "산림 소유자들이 자율적으로 수종 갱신을 하도록 권장하고 있기 때문에 시행 착오가 일부 발생하기도 한다. 벌채로 인한 급격한 생태 파괴나 경관 저해가 없도록 시·군에 감독을 지시했는데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라며 일부 잘못을 시인했다.


경관 파괴 논란을 부르고 있는 '수종 갱신'은 산림 소유자가 자치단체에 벌목 허가를 신청하고, 자치단체가 이를 받아들여 현장을 감독하고 비용을 지원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산주들이 외지에 사는 경우가 많아 대개 임업자들이 산주와 계약을 맺고 위임을 받아 시행한다. 수종 갱신에 필요한 묘목은 정부가 모두 제공하는데, 벌목과 조림 작업에 드는 비용은 정부가 50%, 광역·기초 자치단체가 40%, 산주가 10% 부담하도록 되어 있다.


중장비가 산꼭대기 파헤치기도




문제는 영림계획에 따라 매년 자치단체가 실시하는 수종 갱신이 돈벌이에 더 관심이 있는 임업자들의 손에 전적으로 맡겨진다는 점이다. 보통 1ha당 2백69만여원(묘목비 포함)이 투입되는데, 업자들은 매년 1∼3월 농한기에 대목을 맞는다. 이들은 리기다소나무 등을 베어낸 뒤 목재로 팔아 남긴 이득을 산주와 나눈다. 하지만 산주에게 돌아가는 몫이 극히 적어 산주들은 현장 감독을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라남도 지역에서 올해 조성된 경제림 면적은 모두 2천3백93ha로, 이 가운데 35% 정도가 수종 갱신 사업에 의해 조성된 것이다. 전남 나주시의 경우 올해 나주시 다도면·문평면·봉황면 등 9개 읍면 지역 120 ha의 사유림에서 수종 변경을 실시했는데 산주들을 대신해 여기에 참여한 임업자는 모두 26개 업체이다.


산주는 수종 갱신 사업을 산림조합이나 조림 기술을 보유한 업체들에 위임하는 것이 보통인데, 때로는 무허가 업자들이 돈벌이 삼아 사정에 어두운 산주들을 설득해 계약을 따내기도 한다. 나주시 일대에서 이루어진 수종 갱신 일부 현장에서는 중장비가 산 정상에까지 올라가 산림을 마구잡이로 파헤치기도 했다.


우리나라 산림은 사유림이 70%를 차지한다. 때문에 수종 갱신 사업이 잘 정착되어야만 산림경영 정책이 성공할 수 있다. 보존해야 할 경관까지 사유림이라는 명목으로 마구잡이로 벌목하는 수종 갱신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주민의 주장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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