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학살, 그 진실을 찾아서…
  • 박병출 부산주재 기자 ()
  • 승인 2001.05.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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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경남 지역,
'6·25 민간인 집단 살해' 진상 규명운동 활발


한국전쟁 당시 우리 군·경과 미군이 자행한 민간인 학살 사건들이 서서히 베일을 벗기 시작했다. 생생한 증언과 이를 뒷받침하는 처참한 유골들이 쏟아지고 있다. 반 세기 넘게 숨죽여 살아오다 한 맺힌 절규를 토해내기 시작한 유족들은, 희생자의 명예 회복과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경남 지역 일부 유족단체는 법정에서 학살 책임을 묻는 구체적인 싸움을 시작했다.


사건을 가장 먼저 법정에 올린 이들은 경남 거창 양민학살사건 유족들이다. 거창사건 희생자 유족회(회장 문철주) 회원 4백9명은 지난 2월 창원지검 진주지원에 국가를 상대로 집단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고 유족 1인당 20만원씩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청구했다. 승소할 경우 희생자들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도 할 계획이다.




이 소송을 담당한 재판부(부장판사 황정근)는 정부에 대해 1951년 당시 대구고등군법회의의 사건 책임자 재판 기록과 변호사의 변론 요지, 합동 조사보고서와 판결문 원본 등을 제출하도록 명령했다. 재판부는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다시는 이런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시대적 사명감에서 이같이 결정했다"라고 밝혀, 사건을 소액 민사소송 차원에서 다루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했다.


1951년 2월 9∼11일 거창군 신원면 일대에서 공비 토벌 작전을 벌이던 국군이 어린이와 부녀자를 포함한 주민 7백19명을 사살한 것이 거창 사건이다. 다음해 12월 군사재판에서 김종원 남부지구 계엄사령관·오익경 육군 11사단 9연대장·한동석 3대대장 등이 징역 3년에서 무기징역까지 실형을 언도받았으나 재판 기록과 판결문의 행방은 물론이고 재판 내용도 알려지지 않고 있다.


재판부는 지난 4월24일에는 거창군 신원면 일원에서 50년 만에 현장 검증을 실시했다. 황정근 부장판사는 공익법무관, 군 법무관, 유족측 소송 대리인인 박준석 변호사 등 재판 관계자와 함께 희생자 합동묘역과 과정리 막산골·덕산리 청연골·대현리 탄량골 등 학살 현장에서 유족 증언을 들었다. 유족들은 "당시 전투도 하지 않은 이 지역에서 양민을 이유도 없이 한 곳에 모아 학살했다" "희생자 중 60세 이상 노인과 10세 미만 어린이가 절반이 넘었고, 용케 총알을 피한 어린이들을 발로 차서 구덩이에 밀어 넣었다"라고 치를 떨며 당시를 회상했다. 재판부의 적극적인 태도에 기대를 걸고 있는 유족들이 이번 재판에서 승소할 경우 유사한 다른 사건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코리아국제전범재판'에 적극 참여


미군에 의한 양민학살 경남대책위원회(상임위원장 안상보)는 또 다른 재판을 준비하고 있다. 민주노총·전국농민회·한총련·전국연합·범민련이 북한측과 공동으로 구성한 전민특위(미군학살만행전민족조사특별위원회)와 미국을 포함한 한국전쟁 참전국 인권단체들이 오는 6월23일 미국 뉴욕에서 공동 개최하는 '2001년 코리아국제전범재판'이 그것이다. 미군을 피고로 진행할 이번 재판에는 국제적으로 저명한 법조인이 공동 검사단으로 참여하고 미국 법무장관을 지낸 램지 클라크 국제변호사가 수석 검사를 맡을 예정이다. 경남대책위는 경남도내 미군 학살 지역 피해 사례를 취합해 유족 명의의 기소장을 작성하고 매주 이틀씩 창원·진주 등에서 사건 진상을 알리는 가두 홍보를 펴고 있다. 5월 들어서는 기소장에 시민의 서명을 받는 동시에 전범재판 참가 경비 모금운동(1장당 만원)도 시작했다. 이번 재판은 구속력이 없는 상징적인 것이지만, 도쿄 전범재판에 이어 국제 여론을 환기하는 대규모 평화인권 행사이다.


안상보 위원장은 "대부분의 희생자들이 군·경의 지시에 따라 대로변이나 개활지 등 눈에 잘 띄는 곳에 모여 있다가 미군기의 무차별 사격을 받고 죽었다. 심지어 '미군 전투기가 접근하면 흰 옷을 입고 흰 천을 흔들어 양민이라는 사실을 알리라'고 해서 시키는 대로 했다가 오히려 표적이 되었다"라며 기소장은 '의도적 학살'을 밝히는 내용으로 채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단체가 희생자들의 명예 회복과 책임 규명에 치중하고 있다면, 경남 민간인 학살문제 해결을 위한 준비모임(민해모·대표 간사 서봉석 산청군의회 의원)은 정확한 학살 규모와 내용을 밝히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이 단체는 〈경남도민일보〉와 지역 주간지 취재 기자들이 회원으로 참여해 조사 능력이 돋보인다.


1960년대 부산 경남 일대에서 결성해 활동하다 5·16 이후 와해된 유족회의 활동 내용과 신문 기사 등을 수집해, 아내가 정부와 짜고 남편을 좌익으로 몰아 죽인 사건, 체포된 친구에게 담배 한 개비를 건네다 '기밀누설죄'로 죽음을 당한 경우 등 구체적 사례를 광범위하게 취합했다. 최근에는 전국 조직을 출범해, 유족회 결성을 지원하고 실태 조사, 희생자 위령·추모 사업 등을 벌이며 자료집 발간을 준비하고 있다.


부산에서는 학살 피해 유족들이 형무소 수감자 집단 처형 현장을 찾아내 암매장된 유골을 발굴했다. 6·25 피학살 양민 부산·경남지역 유족회(회장 송철순)는 지난 4월8일 부산 사하구 구평동 구평초등학교 뒤편 야산에서 희생자들의 것으로 보이는 유골과 썩은 고무신들을 수습했다. 규모는 경산 코발트광산 암매장 사건에 훨씬 못미치지만, 부산 지역에서는 최초로 발굴된 학살 현장이어서 진상 조사 활동이 활기를 더하고 있다. 학살 목격자로 위치를 제보한 이윤관씨(74)는 "1950년 9월께 군과 경찰이 대형 구덩이 3개를 파 놓은 뒤 형무소 수감자 옷차림을 한 민간인 1백50명 정도를 트럭에 태우고 와서 사살했으며 부녀자도 섞여 있었다"라고 증언했다.


보도연맹 사건으로 아버지를 잃은 송철순 유족회장은 평생을 보도연맹 사건 진상 규명에 매달려 왔다. 장 면 정부 시절 유족회를 결성해 동래 지역에서 유해 7백60여 구를 발굴하고 위령비를 세우는 등 추모 사업을 하다 5·16 직후 반국가단체 결성과 이적행위 혐의로 검거되어 4년 가까이 수감생활을 했다. "그때 수습한 유골을 군사 정부가 강제로 화장해 없애 버렸고 유족회 간부들도 고령으로 사망해 단 2명만 남아 있다." 송회장은, 당시 상황을 전해 줄 증인이 한 사람이라도 더 살아 있을 때 정확히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크고 작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부산·경남 지역 민간인 희생자 관련 단체들이 갈 길은 아직도 멀다. 송철순 회장이 이끄는 부·경 유족회만 해도, 회원 수가 2백50명에 달하지만 운영 경비가 없어 한 근로자 단체 사무실에 책상도 없이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 그는 "보도연맹 사건 때 부모 또는 형제가 '빨갱이'로 낙인 찍혀 죽었기 때문에 유족들이 회원 가입을 꺼리고, 가입하더라도 신상이 드러날까 봐 적극적으로 활동하지 않으려 한다"라고 했다.


관련 단체들 간의 연대 문제도 풀기 어려운 숙제다. 조현기 미군 학살 경남대책위 집행위원장은 "유족 조직 내부에서조차 '양민 학살'과 '민간인 학살'이 구분되고 있다. 진상 규명운동이 효율적으로 추진되려면 유족들부터 화해와 통합을 이루어야 하는데, 민감한 문제다"라고 말했다.


유족 단체들, 정부의 무관심에 분노


이렇듯 처지가 조금씩 다르지만 이들은 정부에 대해서는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노근리 사건이 미국 언론을 통해 보도된 이후에도 정부가 소극적 대응과 무관심으로 일관해 유족들의 한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1995년 특별법 제정을 통해 희생자들의 '명예 회복'을 이룬 거창사건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도, 특별법이 겉치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유족들은 이 법이 5·18이나 민주화운동 특별법과 달리 보상을 배제한 내용으로 짜인 데다 유족 범위를 지나치게 제한하고 있어 사건 축소용에 불과하다고 폄하한다.


유족들은 유족회와 관련 단체들이 사건 실태를 조사하고 유골을 발굴하는 동안 남의 일 보듯 한 정부가 이제라도 앞장서서 진실 규명과 보상 등 성의 있는 태도를 보이라고 촉구하고 있다. 보도연맹 사건과 형무소 수감자 처형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고, 미군들의 학살 행위에 대해서는 자국민의 인권을 찾아 주기 위한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군대와 경찰이 보호 대상인 국민을 죽여 암매장한 과거에 침묵하면서 어찌 '국민의 정부'가 될 수 있으며, 외국 군대가 자국민을 대량 학살했는데도 항변 한마디 못하고 어찌 자주 국가라 할 수 있겠는가." 안상보 위원장의 항변은 적게는 20만, 많게는 35만 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한국전쟁 학살 희생자와 유가족들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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