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사 유가족의 '타는 목마름'
  • 고제규 기자 (unjusa@e-sisa.co.kr)
  • 승인 2001.05.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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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규명위, 활동 기간 짧고 조사권 미약해
'진실 확인' 난망…'특별법 개정' 요구


지난 5월16일 오후 3시 김용문씨(54)는 회사를 조퇴하고, 서둘러 서울역으로 향했다. 서울역 광장에 도착하자 김씨는 어깨띠를 둘러메고 유인물을 챙겼다. 그는 시민들에게 유인물을 나누어주며 이렇게 말했다. "청산하지 못한 과거는 되풀이됩니다." 지난 3월21일부터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가 서울역 광장에서 매일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벌이는 의문사 진상규명 특별법 개정을 위한 서명운동에 김씨는 빠지지 않고 참여하고 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진상규명위) 활동이 한창인데, 김씨는 왜 거리에 나선 것일까? 진상규명위는 반환점을 돌았다. 지난 1월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 위원회는 오는 6월이면 양상석씨 사건을 시작으로 1차 조사 기간이 끝난다. 진상규명위는 대통령에게 조사 결과를 보고한 뒤 한 차례(활동 시한 3개월) 조사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진상규명위, 접수된 83건 중 2건 처리




그런데 1차 조사 시한이 임박하면서 진상규명위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조사관 53명이 최대 9개월 동안(연장 3개월 기간 포함) 83건을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게다가 조사권도 미약하다. 중요한 참고인이 출석을 거부하거나 허위 진술을 하더라도 마땅히 처벌할 규정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4백22일 동안 국회 앞에서 농성을 벌이며 의문사특별법을 쟁취했던 유가협 회원들은 팔짱만 끼고 지켜볼 수 없었다. 유가협은 완전한 진상 규명을 위해 다시 법개정(38쪽 표 참조) 캠페인에 나선 것은 그런 연유에서다. 유가협 회원 이계남씨(69)는 "이번에도 제대로 못 밝히면, 우리는 살 희망이 없다"라고 말한다. 대부분이 60∼70대인 데다 대통령 직속기구도 밝히지 못한다면 더 이상 진상 규명은 꿈도 꿀 수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유가협이 진상규명위에 거는 기대는 절박하다.


진상규명위는 접수된 83건 가운데 지금까지 공식으로 2건을 처리했다. 행불자였던 박태순씨의 죽음을 확인했고, 1982년 3월에 숨진 신영수씨는 단순 사고사로 판명했다. 박태순씨 사건은 공안기관의 개입 여부를 조사 중이다. 진상규명위는 지난 4월30일에 예정된 중간 발표를 취소했다. 조사가 미비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진상규명위 활동이 이처럼 더디게 진행되자 유족들이 나서서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김용문씨는 유가협의 젊은 피다. 김씨는 아버지의 사인을 규명하려고 거리에 나선 경우다. 김씨의 아버지 김창수씨는 1971년 5월25일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 때 전남 목포시 대성동 선거관리위원장이었다. 부정 선거 시비로 경찰관 2명과 서울로 조사 받으러 가다 김씨는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경찰은 김씨가 기차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고 발표했다가 나중에는 경찰을 피해 탈출하다 숨졌다며 수사 결과를 네 차례나 번복했다. 당시 스물네 살이던 김용문씨는 언젠가는 아버지가 죽은 원인을 밝히겠다는 심정으로 10원짜리 우표가 붙은 목포경찰서의 통지서부터 신문 기사까지 관련 자료를 장롱 깊숙이 간직했다가 지난해 말 진상규명위에 제출했다.




군의문사 유가족들도 유가협에 속속 모여들고 있다. 기무사는 여전히 홈페이지에 '사건 현장검증, 유족 입회하 부검 결과, 관련자 조사 등을 통해 명백하게 자살한 것으로 판명되었다'라며 1980년대 '녹화사업'에 따른 의문사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수사권도 없는 조사관들이 과연 실세 기관원들의 입을 열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유가족을 다시 결합시키고 있다.


유가협 허영춘 의문사 지회장은 만일 진상이 규명되지 않으면 군대 안보내기 운동을 벌이겠다고 말한다. 허씨의 아들 원근씨는 1984년 4월 2일 왼쪽 가슴에 한 발, 오른쪽 가슴에 또 한 발, 다시 머리에 한 발 모두 세 발의 총상을 입고 숨졌다. 누가 보아도 자살이라고 믿기지 않는 상황인데도, 군 당국은 자살이라고 몰아붙였다(군 당국의 말대로라면 머리에 총을 맞고 100m를 달려가서 죽은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허씨는 그래도 싸울 수 있는 부모는 행복하다고 위안한다. 자식의 한을 가슴에 묻고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자식 잃고 실명한 어머니, 끝내 자살


지난 4월23일, 유가협 회원 이명률씨(79)는 자식의 뒤를 따라 세상을 떠났다. 눈을 감으면서도 이씨는 3대 독자였던 이윤성씨를 잊지 못했다. 성균관대 81학번인 이윤성씨는 1982년 11월3일 가두 시위에 나갔다가 연행되어 강제로 징집되었다. 제대 1주일을 앞두고 이씨는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군 당국은 자살이라고 발표했다. 월북 혐의로 보안사 조사를 받다가 비관해 자살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한 방송국의 도움으로 자식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쫓던 중 헌병대의 수사 기록이 조작되었음을 이명률씨는 확인했다.





"의문사 특별법, 이렇게 바꾸어야 한다"













현행 유가협 개정안
위원회는 조사가 개시된 뒤 6월 이내에 완료해야 한다. 1회에 한하여 3월의 범위 내에서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위원회는 조사가 개시된 뒤 9월 이내에 조사를 완료해야 한다. 2회에 한하여 1회당 3월의 범위 내에서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특별 사유가 발생할 때는 대통령의 승인을 얻어 3월의 범위 내에서 다시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의문사와 관련하여 죄를 범한 자가 자수한 때 그 형을 감형 또는 면제한다

위원회의 요구에 따라 사건 진상을 밝힌 자에 대한 특별사면을 대통령에게 건의한다. 특별사면이 이루어진 관련자는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

허위 자료 제출시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한다(과태료의 부과 주체와 절차가 없어 유명무실하다)

정당한 이유 없이 자료 제출을 거부하거나 허위 자료를 제출할 경우 2년 이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과태료는 위원장이 부과 징수한다



3남 1녀의 막내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았던 최우혁씨의 어머니 강연임씨는 서울대 운동권이었던 아들 최씨를 휴학시키고 1987년 군대에 보냈다. 군대에 보내면 데모를 그만두겠거니 하는 심정에서였다. 그러나 1987년 9월 최씨는 새까맣게 불에 타 숨졌다. 군 당국은 분신 자살했다고 발표했다. 강씨는 자책했다. "내가 아들을 죽였다. 군대에만 보내지 않았어도…." 그해 11월 강씨는 충격으로 한쪽 눈을 실명하고 정신을 놓아버렸다. 1991년 2월19일 강씨(당시 59세)는 한강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다. 임분이씨(68)는 아들 사진을 몸에 지니고 다니고, 이계남씨(69)는 아들이 남긴 마지막 메모를 부적처럼 가지고 다닌다. 장동재씨(66)는 제보 전화라도 올까 봐 12년 동안 전화번호를 바꾸지 않고, 이사할 때마다 같은 번호를 사용하고 있다. 이들은 이번이 한결같이 진상을 규명할 마지막 기회라고 여긴다.


이같은 유가족의 기대와 우려가 엇갈린 가운데 진상규명위 황인성 사무국장은 "힘들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다. 6월쯤이면 발로 뛴 놀랄 만한 결과가 나올 것이다"라고 자신했다. 그렇지만 황국장도 시간에 쫓기지 않고 제대로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의문사특별법이 개정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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