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하늘만 야속하다 하는가"
  • 경기 연천·고재열 기자 (scoop@e-sisa.co.kr)
  • 승인 2001.06.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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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북구 가뭄 피해, 절반은 '인재'…
공무원 늑장 대처로 '있는 물'도 사용 못해


봄가뭄이 극성이다. 기상청은 6월 중순까지 가뭄이 계속될 것이라고 예보했다. 모를 내지 못해 애가 탄 농민은 폐광 갱도에 고인 물까지 길어다 쓰고 있다.


경기도 연천군 지역은 이번 가뭄으로 인한 피해가 특히 심한 곳이다. 물이 궁해지자 지역 인심마저 각박해져서 물 때문에 이웃 간에 고소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 5월21일에는 물을 놓고 마을 간에 분쟁이 일어났다. 윗마을인 연천읍 고문리와 신답리 주민이 콘크리트를 부어 아랫마을인 연천읍 통현리와 전곡읍 은대리로 내려가는 물길을 틀어막아 다툼이 일어난 것이다.




임진강과 한탄강, 두 개의 큰 강을 끼고 있는 연천군은 원래 물이 풍부한 곳이었다. 지난 1996년과 1999년 집중호우가 내렸을 때 연천군은 큰 피해를 입었다. 큰 강에 인접한 지역이라 수해를 입은 것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이곳이 다른 지역보다 더 큰 가뭄 피해를 입었다는 것은 선뜻 납득이 되지 않는다.


연천·포천지부 농업기반공사는 이번 가뭄 피해가 컸던 이유로 연천댐 철거를 꼽았다. 현대건설이 시공한 연천댐은 1996년과 1999년 수해 때 연이어 붕괴되었다. 댐이 수해를 일으키는 원인이라며 주민이 철거를 주장하자 현대건설은 지난 1999년 말 댐을 철거했다. 농업기반공사 관계자들은 "댐이 무너져 홍수가 나자 농민들이 댐을 철거하라고 주장하고서는 가뭄이 심해지니까 이제는 댐을 왜 철거했느냐고 따지고 있다"라고 푸념했다.


그러나 연천지역사랑실천연대(실천연대) 이석우 사무국장은 이번 가뭄 피해의 원인이 단순히 비가 적게 오고 댐이 철거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가뭄이 심하기는 했지만 한탄강은 완전히 마르지 않았다. 물이 없었던 것이 원인이 아니라 물을 이용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것이 원인이다. 농업기반공사가 댐 철거를 핑계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라고 비난했다.




직접 한탄강 물줄기를 따라가며 살펴본 결과 중간에 물길이 끊긴 곳이 있기는 했지만 곳곳에 물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보가 설치되어 있는 곳은 물길이 2∼3km나 뻗어 있었다. 강물이 굽이치는 곳마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소에도 물이 가득했다.


기상 관측 이래 최악이라는 이번 가뭄에 대한 농업기반공사의 대응은 곳곳에서 빈틈을 드러냈다. 물 분쟁이 일어난 연천읍 고문리·신답리·통현리, 전곡읍 은대리 일대에 물을 공급하던 고문리 양수장은 5월9일 갑자기 가동이 중단되었다. 농업기반공사가 시설을 잘못 설계했기 때문이었다. 연천댐이 철거된 이후에 고문리 양수장에는 물을 저장하기 위해 새로 7m 높이의 보가 설치되었다. 그러나 그 전에 설치되어 있던 양수기는 연천댐의 수위에 맞추어 설계되었기 때문에 보의 물을 모두 끌어올릴 수 없었다. 보에서 2m 아래까지 물을 긷자 양수기는 더 이상 물을 끌어올리지 못하고 가동을 멈추었다.


연천댐이 건설되기 이전에는 고문리 양수장 외에 통현리와 은대리에도 양수장이 있었다. 연천댐이 완공되자 농업기반공사는 고문리 양수장을 확장하고 다른 곳은 폐쇄했다. 댐이 철거되어 고문리 양수장에서 끌어올릴 수 있는 물이 줄어들었으면 다른 곳의 시설을 복구해서 물을 확보했어야 하지만 농업기반공사는 이런 대비를 하지 않았다.


대통령·장관 방문하자 서둘러 펌프 설치


농업기반공사가 본격적으로 움직인 것은 고관 대작의 방문이 줄을 이으면서부터다. 폐쇄되었던 은대리 양수장은 한갑수 농림부장관과 임창렬 경기도지사의 방문을 하루 앞둔 5월17일부터 재가동되었다. 김대통령이 방문하기 하루 전인 5월23일(2대)과 방문날인 5월24일(1대) 물을 끌어올릴 수 있는 수중 펌프가 한탄강에 설치되었다.


이번 가뭄으로 한탄강 취수장이 바닥나면서 동두천시 주민도 사흘간 식수가 끊기는 불편을 겪었다. 동두천시 주민들은 그 원인이 연천댐이 폐쇄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동두천시에 상수도 공급이 중단된 것은 상수도사업소에서 수량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취수장 2km 상류에는 물이 충분히 저장된 보가 있었다. 물길을 내서 끌어 쓸 수 있었지만 이 물은 상수도로 이용되지 않았다.


연천군 수해대책위원회 이선걸 위원장은 "사람이 할 일을 다하고 하늘을 원망하든지 해야지, 있는 물도 제대로 쓰지 못하면서 왜 하늘만 원망하느냐"라며 공무원들의 늑장 대처를 비난했다.


이번 가뭄으로 오염원이 드러나면서 한탄강 물의 질 관리도 엉망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지방자치단체로 수질 오염 관리가 이관된 이후에 하천 오염이 심해진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지역구 의원이 현직 총리로 있는 연천군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탄강 지류인 간파천은 상류에 염색 공장 20여 곳이 들어서 있다. 간파천은 염색 공장에서 나오는 폐수로 인해 심하게 오염되어 있다. 공장에 하수처리장이 있지만 전혀 가동되지 않고 방치되어 있다. 하수처리장에는 가뭄 때문에 방류하지 못하고 남겨 놓은 폐수가 부패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연천군 전곡읍 늘목리와 간파리 주민들은 오염된 간파천의 물에 50∼100m 간격으로 양수 펌프를 설치해 논에 물을 대고 있었다. 실천연대 이석우 사무국장은 "이곳 농민들도 자기가 지은 농산물을 먹지 않는다. 잘못된 치수 대책이 농민의 양심까지 마비시켰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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