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발작 발생 사실조차 몰라
"이제 끝장인가."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중학교 학생 30여 명이 홍역 백신을 맞고 집단 발작을 일으킨 지난 6월7일 서울사대부속여중에서도 유사한 사태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자 보건 당국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탄식했다.
서울사대부속여중 1학년 2반 학생 7명은 접종 당일 홍역 백신을 맞은 직후 "머리가 아프다" "속이 울렁거린다" "가슴이 답답하다"는 증세를 호소하면서 10분∼1시간씩 의식을 잃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기자는 이들 7명이 접종 10일째 되던 날 재발작을 일으켜 국립의료원 응급실로 후송된 광경을 목격했다. 이 중 상태가 심각했던 이예진양은 의식을 잃고 손발이 뻣뻣해진 채 분당 70∼90회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2시간여 만에 의식이 돌아온 뒤에도 이양은 10분 남짓 아버지와 친구들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다. 이는 진건중학교 피해 학생들이 호소했던 증상과 거의 일치했다.
부산 감천중학교(5월30일)와 진건중학교에서 잇달아 집단 발작 사건이 발생할 때까지만 해도 보건 당국의 입장은 한결같았다. '백신의 안전성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집단 발작은 학생들의 심리적 불안 반응(집단 히스테리)에 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언론이 백신 정제나 보관·유통 과정을 문제 삼으면 보건 당국은 노골적으로 적대했다. "당신들의 호들갑 때문에 여기서 예방 접종을 중단하면 올해 안에 40∼4백명이 홍역으로 사망한다. 그렇게 되면 책임질 거냐"라는 식이었다.
그러나 서울사대부중 사건이 알려지면서 보건 당국의 신뢰도는 크게 훼손되었다. 피해 학부모들은 보건 당국이 처음부터 아이들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려 했다고 비난했다.
물론 당국이 주장하는 대로 서울사대부중 사건 또한 집단 히스테리일 가능성은 있다. 예방접종심의위원회 심의위원인 손영모 교수(연세대)는 △호흡이 가파를 뿐 맥박이나 심장 박동 수가 정상인 데다 △접종 당일 동일한 백신을 주사한 7개 학급 중 특정 학급에서만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미루어 예민한 사춘기 여학생들이 심리적 공황 상태에서 이상 증상('전환 장애에 의한 과호흡 증후군')을 나타낸 것으로 추정했다.
"단체 접종 중 집단 히스테리 극히 드물다"
그렇지만 보건 당국도 인정하다시피, 집단 발작이 '있을 수 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1주일에 세 차례씩 일어날 만큼 '흔한' 일은 아니다. 국립보건원에 따르면, 국가 방역 전산망이 수립된 1999년 이후 이번 사건이 발생하기까지 국내에서 집단 히스테리가 발생한 기록은 없다.
청소년 상담을 주로 하는 정신과 전문의 김 아무개씨는 "단체 접종 중 집단 히스테리가 일어난 사례는 여태껏 접해 본 일이 없다"라며, 진건중학교 학생들이 발작을 일으킨 지 하루 만에 그 원인을 집단 히스테리라고 추정한 당국의 '과단성'에 놀라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학생들이 집단적인 분위기에 휩쓸렸다는 보건 당국의 설명도 사실과 다르다고 학부모들은 반발하고 있다. 진건중학교의 경우 단체 접종을 마치고 개별 학급으로 돌아간 뒤에야 학생들이 1∼2명씩 증상을 호소하기 시작했으며, 발작이 일어난 학생들을 격리해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서울사대부속여중 학부모 강미경씨는 "상태가 계속 좋지 않아 학교를 결석하고 집에서 혼자 쉬는 동안에도 아이가 손발에 경련을 일으키고, 밤에 자다가 숨을 몰아쉬는 증세를 보이곤 했다"라고 말했다.
접종 10일째가 되도록 발작이 반복되는 것 또한 집단 히스테리가 아닌 증거라고 학부모들은 주장한다. 애초에 보건 당국은 갑자기 나타났다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 집단 히스테리의 특징이라고 설명했었다. 이 때문에 보건소 직원들은 발병 첫날 '48시간만 기다리면 괜찮아질 것'이라며 학부모들을 설득했다. 그러나 서울사대부속여중의 경우 접종 10일째인 6월16일 현재까지도 학생들이 계속해서 집단 발작을 일으키고 있다.
피해 학생들을 진료한 서울의 한 소아과 의사는 △백신 정제에 문제가 있거나(이번에 접종한 인도산 홍역 백신은 한국에서 올해 처음 사용된 것으로, 부작용에 대한 검증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입 당시부터 논란이 있어 왔다) △병력 문진 등 접종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거나 △심리적인 요인이 작용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전국 기온이 32∼35℃를 오르내리던 날 두 학교에서 집단 발작이 동시에 발생했다는 점 때문에 백신의 변질 가능성을 의심하는 학부모도 있다. 이에 대해 당국은 이 백신이 세계보건기구(WHO)가 안전을 보증한 제품이며, 온도 라벨 등을 확인한 결과 백신이 변질되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밝히고 있다.
보건 당국, 접종 발작 은폐 의혹
이번 사태에서 드러난 또 하나의 문제는 보건 당국의 안일한 대응 자세이다. 진건중학교 사건으로 여론이 들끓는 동안 보건 당국은 서울사대부중에서 유사한 사태가 발생했음을 인지하고서도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 국립보건원 방역과는 "이 학교 학생 7명이 집단 이상 증상을 나타냈다는 보고는 받았으나, 병원 진료지에 증상이 모두 경미한 것으로 기록되어 공개하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당국은 후속 사태를 감시하는 데도 소홀했다. 학생 7명이 1주일이 넘도록 수업을 받지 못한 채 양호실과 병원 응급실을 전전하는데도 보건소 직원이 병원에 찾아온 것은 단 한 차례였다고, 학부모 이경세씨는 분노를 터뜨렸다.
보건소측이 병원을 소개하거나 구급차를 제공한 일도 없었다. 교사 고주연씨는 "아이들이 발작을 일으킬 때마다 119를 부르고, 이 병원 저 병원 퇴짜 맞으며 돌아다녔다"라며 보건소에 이같은 사실을 알려도 "뉴스 못 봤냐. 집단 히스테리라는데 우리보고 어쩌라는 거냐"라는 시큰둥한 반응만 되돌아왔다고 말했다. 급기야는 이들 7명이 재발작을 일으켜 병원에 옮겨질 때까지도 기자와 통화한 당국 책임자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흔치 않은 집단 발작 사건이 동시 다발로 일어났다면 그 원인을 분석하고 추이를 면밀하게 관찰하는 것은 보건 당국의 당연한 책무이다. 설사 원인을 밝혀내지 못한다 해도 당국은 집단 이상 증상에 대해 알리고 예방 및 대처 요령을 홍보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들 사건이 일어나는 동안 당국이 일선 보건소와 학교에 내린 지침이라고는 '접종 후 30분간 휴식'을 권고한 것밖에는 없었다.
전문가들의 말마따나, 백신 부작용으로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에 학생들이 집단으로 일으킨 반응은 심각한 부작용이 아닐 수도 있다. 그렇지만 문제는 신뢰이다. 일부 학생들은 벌써부터 백신 접종을 거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보건 당국이 앞장서 의혹을 투명하게 규명하지 않는다면 '2005년 홍역 완전 퇴치'라는 원대한 구상을 망가뜨린 주범은 언론도, '일부 몰지각한 전문가'도 아닌 보건 당국 자신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