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 부모 묘 '불법 이장'
  • 충남 예산·이정준(〈무한신문〉 기자) ()
  • 승인 2001.06.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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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묘법·산림법 위반 '물의'…
산림 700평 훼손, 5년 이하 징역 사안


자민련 김종필 명예 총재가 지난 3월 킹메이커 역할만 하겠다고 선언한 지 두 달도 채 못된 5월 'JP 대망론'이 나왔다. 하루에도 말을 몇 번씩 바꾸는 사람들이 정치인이고 보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당시 JP는 그저 "소이부답(笑而不答)이오"라고만 했고, 그런 후 20여 일이 지난 지난 6월8일 차령산맥 줄기인 충남 예산군 신양면 하천리에서는 비밀스러운 행사가 열렸다. JP 일가가 부모 묘소를 왕기가 서려 있다는 명당으로 이장한 것이다.




이장식은 외부인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고 장조카인 김 아무개씨가 주관했다. JP의 형도 참석했다고는 하나 확인되지는 않았다. 이장은 3∼4일 전부터 은밀히 진행되었는데 마을 사람들조차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만큼 신중을 기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장 하루 전인 7일 마을에서부터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비밀이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소문의 진원지는 이장 작업을 맡은 사람 가운데 한 명인 ㄱ씨였다. 그가 평소 친분 있던 신양면 주민 ㄴ씨에게 "내일이 되면 어차피 알게 될 일이니 말한다"라며 8일 JP 집안 종손들이 JP 부모 묘소를 이장한다고 귀띔한 것이다.


그 이후 필자는 사실 확인을 위해 JP 비서실장인 이수영씨와 김상윤 보좌관 등에게 확인해 보았지만 전혀 모른다는 답변만 들었을 뿐이다. 이장 이후에도 JP측이 사실 확인을 해주지 않아 취재원을 확실한 소식통 정도로만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그 무렵 JP 고향인 부여에서는 '이 민족을 혼란과 좌절에서 해방시킬 민족의 지도자 JP를 대통령으로'라는 제목의 유인물이 배포되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이다.


파문이 확산되자 JP측도 어쩔 수 없었는지 지난 6월10일 유운영 자민련 부대변인이 "여러 지관들이 천하 명당이라며 권유해 문중에서 4년 전 예산으로 이장할 것을 검토했으나 여의치 않아 보류했다가 윤년인 올해 이장하게 되었다. 묘터는 30∼40평에 불과한 초라한 곳이다"라며 이장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생석회 100포 이상 쓰고 3m 넘게 파




JP 부모 묘소는 유부대변인이 말한 대로 작고 소박하다. 하지만 이장 작업을 지켜보았다는 한 주민의 말에 따르면, 생석회가 100포 넘게 들어갔고 큰 바위들을 들어내며 10자(3m) 이상 깊이 팠기 때문에 내부는 겉보기와 달리 거창할 수도 있다는 추측을 낳고 있다.


JP 부모 묘소를 이장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이장 과정에서의 불법 여부에 관심이 쏠렸는데, 법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이장한 것과 이장 과정에서 넓은 산림을 허가받지 않고 훼손한 사실이 밝혀졌다. 그런 와중에도 왕기가 서렸다는 명당에 대한 관심은 빠르게 번져 전국 각지에서 지관과 풍수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대전·충남 지역 10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대전충남 참여자치지역운동연대의 한 집행위원은 "이미 현장을 답사하고 모든 불법 사실을 확인했다. 늦어도 다음 주 중에는 이장 과정에서 행해진 불법 사항에 대한 법 적용을 촉구하고 사회 지도층의 부도덕성을 규탄하는 성명서를 발표할 것이다"라고 말해 여파가 클 것으로 보인다.


예산군, JP를 법대로 처리할 수 있을까




현재 알려진 바로는, 묘소를 부여군 외산면 반교리에서 예산군 신양면 하천리로 이장하려면 우선 지난 1월부터 개정 시행된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제8조 3항에 따라 관할 군에 개장 신고를 해야 하는데 신고 절차를 밟지 않았다. 또 산림법 제90조 1항에 따라 묘지 부분에는 산림 형질변경, 진입로 부분에는 보전임지 전용 허가를 받고 이장 작업을 마친 뒤 원상 복구해야 하는데 이를 어겼다. 그리고 임도에서 묘지까지 참나무를 비롯한 나무 수십 그루를 베는 등 산림 2,300㎡(약 700평)도 훼손했다.


이러한 경우 산림법 제118조에서는 5년 이하 징역 또는 1천5백만원 이하 벌금을 물리게 되어 있어 과연 관계 당국이 이 법을 적용할지 주목된다. 또한 JP측은 부모 묘소를 이장한 선산 1만5천평을 평당 5천원을 주고 최근 권 아무개씨로부터 매입했는데, 아직까지 등기 이전이 안되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사실 확인도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예산군은 현재 등기상 소유자인 권 아무개씨(강원 태백)에게 참고인 조사를 위한 출석요구서를 보냈다. 권씨에게 JP측과의 매매 여부를 확인한 뒤 매매가 이루어졌을 경우에는 다시 JP측 관계자를 불러 참고인 조사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군이 여권의 실력자에게 법 적용을 엄격하게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공교롭게도 지난 6월13일 산림청은 전국의 산림내 불법 행위를 단속한 결과 충남이 민유림내 불법 행위 총 26건(형질변경 25건, 굴취 등 1건)으로 1위를 차지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불법 여부는 둘째치고라도 JP는 장묘 문화 개선에 역행하고 있다는 비난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대로 가면 머지 않아 우리 국토는 묘지로 뒤덮일 판이다. 그래서 뜻있는 사람들은 매장에서 화장으로 장례 문화를 바꾸자고 공감대를 넓혀 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 마당에 부모 묘소를 이장한 JP는 따가운 눈총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장묘 문화 개선에 역행한 사람이 어디 JP뿐이겠는가.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도, 국무총리도, 국회의원도 떳떳하지 못하다는 것을 그 자신들도 국민도 다 안다.


JP 부모 묘소가 불법 조성 등에 대한 비난이 일고 있는 분위기에서도 '명당'으로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하루에도 수십 명씩 묘소를 찾는 바람에 산에 난 임도가 반질반질해질 정도다.


이장한 지 1주일 지난 6월15일 오후 묘역 주변에는 서울 등 각지에서 온 30여 명이 모여 있었고 그 가운데 상당수는 지관이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지관들의 눈길도 곱지 않다는 것이다.


30여 년 동안 풍수를 연구했다는 ㄷ씨는 묘를 둘러본 뒤 "대통령이 되고 안되고는 묘와 상관없다. 무슨 묘자리 하나가 대통령이 되고 안되고를 결정하냐"라며 목청을 높이기도 했다.


또 지역에서 풍수를 연구하고 있다는 이 아무개씨는 "세종대왕을 모신 여주 영릉이 누가 보더라도 명당처럼 여겨지는 것은, 그곳이 정말 길지여서가 아니라 보는 사람의 마음에 성군의 덕을 기리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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