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만졌니? 얼른 손 씻어!"
  • 고재열 기자 (scoop@e-sisa.co.kr)
  • 승인 2001.07.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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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향대 오계헌 교수 '지폐 속 세균 10종' 검출…
폐렴·장출혈 등 일으킬 수도


요람에서 무덤까지' 사람들은 돈과 함께 산다. 돌 잔칫상에 돈을 올려놓고, 관 속에 저승 노자라며 돈을 넣는 한국인은 특히 그 정도가 심한 축에 속한다. 돈만큼 더러운 것이 없다는 것은 말뿐이고 사람들은 모두 돈을 더 많이 가지려고 안달한다.




우리가 매일 주고받는 돈에서 다양한 세균이 많이 검출되었다. 그 중에는 적혈구를 파괴하는 용혈성 바실러스 균처럼 매우 위험한 것도 있다. 위 왼쪽에서부터 스트렙토코커스 미티우스 균, 스타필로코커스 아우레우스 균, 살모넬라 균, 에스체리시아 균종, 용혈성 바실러스 균.


돈 한번 실컷 만져 봤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순천향대 우체국에서 하루 5천만원이 넘는 예금을 다루는 강정수씨(45)는 부러운 사람일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폐 계수기에서 나오는 먼지 때문에 매일 아침 목이 컬컬하고 따끔따끔한 고통에 시달리는 강씨에게 돈은 그리 달가운 존재가 아니다.


학교 우체국을 자주 이용하며 강씨의 고충을 전해 들은 생명과학부 오계헌 교수는 목이 아픈 것이 단순히 먼지 때문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생물학을 전공한 오교수는 지폐에 묻어 있을 세균에 주목했다. 지난해 6월부터 오교수는 실험실 조교들과 함께 서울·천안·온양 일대에서 1000원권 지폐를 모았다. 올해 5월까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지폐에서 세균을 검출해 그 결과를 최근 발표했다.


수많은 사람의 손을 거치며 다양한 사연을 담고 있는 돈에서는 그만큼 다양한 세균이 검출되었다. 오교수가 지폐에서 검출한 미생물은 △스타필로코커스 아우레우스 균(화농 균) △스타필로코커스 에피더미디스 균 △스트렙토코커스 미티우스 균(구강균) △스트렙토코커스 살리바리우스 균(구강균) △살모넬라 균 △시겔라 균 △용혈성 바실러스 균 △에스체리시아 균종(대장균) △수도모나스 균종(녹롱균) △칸디다 균종 등 10종이다.


내성 강한 변종 많아 위험




이 중 재래 시장에서 수거한 지폐에서 발견한 용혈성 바실러스 균은 적혈구를 파괴할 수 있는 무서운 세균이다. 바실러스 균을 피에 떨어뜨릴 경우 적혈구를 파괴해서 투명한 구역(clear zone)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바실러스 균은 식중독을 유발하는 균이어서 저장 식품에서 자주 발견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흔치 않지만 점차 발견되는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용혈성 바실러스 균만큼 위험하지는 않지만 지폐에서 가장 흔하게 검출된 세균은 스타필로코커스 아우레우스 균이다. 피부염이나 폐렴을 유발할 수 있는 이 균은 항생제가 많이 개발되어 있기는 하지만 내성이 강한 변종이 많아서 위험하다. 이 균은 특히 핏속에 들어가면 치명적일 수 있다.


살모넬라 균은 지폐에서 여름철에 주로 발견된다. 식중독을 유발하는 이 균은 우리 몸 속에 어느 정도 존재하기는 하지만 많을 경우 문제가 된다. 감염되면 설사가 나고 심하면 장출혈을 일으킬 수 있다. 변종일 경우 더 위험하다.


에스체리시아 균종은 지폐에 사는 가장 흔한 세균이다. 이 균은 병원균이라기보다는 지표(指標) 세균이다. 이 세균이 어느 정도 존재하느냐를 보고 오염 정도를 측정할 수 있다. 이 균도 일정량이 넘으면 감염될 수 있다.


지폐에서 자주 발견되지는 않지만 위험한 세균으로는 수도모나스 균종을 꼽을 수 있다. 가래를 끓게 하고 폐렴을 유발하는 이 균은 특히 병원내 감염을 일으키는 균으로 유명하다. 흔치 않은 세균이지만 항생제에 내성이 강해서 매우 위험하다.


하지만 이렇게 세균이 지폐에서 발견되었다고 해서 바로 감염되는 것은 아니다. 세균 한 마리가 병을 유발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수십∼수백 마리가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지만, 100만 마리 이상의 세균이 침입해야 감염되는 것이 보통이다. 정상적인 면역력을 가진 사람은 지폐에서 발견된 정도의 세균으로는 감염되지 않는다.


시장에서 수거한 지폐에 세균 가장 많아




사람의 몸 안팎에는 정상 세균(normal flora)이 있어서 오히려 신체 신진대사를 촉진하기도 한다. 우리 몸은 많은 방어기제를 가지고 있다. 세균이 침입해도 위장과 소장에서 살균되고 핏속의 면역 세포가 감염을 막아준다. 그래서 세균이 바로 병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면역력이 약한 사람에게는 이 정도의 세균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순천향대학병원 정일권 교수는 "에이즈 환자나 암 환자처럼 면역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세균이 치명적일 수 있다. 또 면역력이 약한 신생아나 노약자, 항생제 과다 복용자에게 세균이 침입할 경우 바로 발병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오교수는 "돈은 유통이 빠르므로 직접 발병체가 되지 않더라도 세균 전파체 혹은 매개체 역할을 할 수 있다. 돈은 유통이 되면서 모이고 흩어지기 때문에 전파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또 세균은 바이러스에게 숙주를 제공하기 때문에 지폐의 바이러스 유무도 점검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제대로 된 숙주를 만나면 세균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기 때문에 지폐를 통해 옮겨진 세균이 바로 발병원이 될 수 있다. 즉 돈을 주고받은 뒤 손을 씻지 않고 바로 음식을 만들면 세균이 음식물로 옮겨져 문제가 될 수 있다.


세균이 가장 많이 검출된 지폐가 주로 어시장이나 재래 시장에서 수거한 지폐였다는 것은 이런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곳에서 수거한 지폐에는 식중독균을 비롯해서 세균이 가장 많이 검출되었다.


얼마 전 미국에서도 1달러 지폐에서 세균이 발견되어 문제가 된 적이 있다. 달러화에서 세균을 검출한 오하이오 주 라이트 패터슨 의학센터의 피터 엔더 박사는 "1달러짜리 지폐는 세균이 사람들 사이를 옮겨다니는 마법의 융단이 될 수 있다"라고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적'인 세균에 대처하는 방식이 미흡하기는 미국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다. 지폐에서 세균을 없애기 위해서는 발행 단계에서 항균 처리를 하거나 은행에 보관할 때 멸균 처리를 하면 되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국가로부터 제대로 된 '돈 세탁'이 여의치 않으니 일단 돈 보기를 돌같이 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손을 자주 씻는 것 외에는 이렇다 할 대안이 없다. 손을 씻어서 돈에 묻은 세균이 음식물 같은 곳으로 옮겨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현금 문화가 일반적인 한국에서는 이밖에도 주의할 점이 많다. 먼저 돌 잔칫상에서 아이를 병에 걸리게 할지도 모르는 돈은 이제 치우고, 관 속에서 시신의 부패를 촉진하는 돈을 넣는 것도 그만두어야 한다. 돼지코에 세균범벅인 돈을 쑤셔박는 것도, 고스톱을 치면서 밤새 세균덩어리 돈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도 피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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