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은 '나와 세계' 바꿀 무기
  • 김은남 기자 (ken@e-sisa.co.kr)
  • 승인 2001.07.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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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여성주의자 모임 귀띔' 회원들,

일상을 변혁해 '유토피아' 만들기 나서


'뭔가 어색한데, 왜지?' '친여성주의자 모임 귀띔'의 오프라인 모임에 처음 참석한 사람들은 한동안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리고 이내 무릎을 친다. 이 모임에 참석하는 10여 명은 모두 반말을 쓴다. 20대 대학생이 30대 회사원에게 말을 놓는다. 또 한 가지, 남자들이 모이는 자리인데도 술이 없다. 그래도 이들은 밤을 새운다. 오직 '수다'의 힘으로.




폭력적 남성 문화를 온몸으로 거부하는 남자들. 이들이 처음 만난 것은 지난해 말 페미니즘 웹진 〈언니네〉가 마련한 게시판 '오빠네 세탁소'를 통해서였다. 대학 총여학생회에서 활동한 남성, 여성학과에 진학하려는 남성,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고민하는 남성. 나름으로 페미니즘에 대해 '한 가락' 한다고 자부하던 남자들이었지만 막상 한자리에 모이자 서로를 곁눈질하기에 바빴다. '저거 혹시 사이비 아냐?'


다행히 그것은 기우였다. 모두의 고민은 근본적이고 진지했다. 여성운동을 측면에서 지지하는 이른바 '명예 여성' 역할에 이들은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이들에게 페미니즘은 자신을 바꾸고 세계를 바꿀 무기였다. 자신의 선배 세대가 마르크시즘을 선택했듯 이들은 페미니즘에서 길을 찾고 있었다. 전위 중심의 운동 방식으로 유토피아를 '쟁취'하려 했던 것이 이전 세대의 운동 방식이었다면, 이들은 일상을 변혁해 유토피아를 '달성'하고자 했다.


이들은 급기야 지난 3월 말 대중에 열린 사이버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애초의 명칭은 '불지르는 남자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이른바 '사이버 마초와 맞장뜨기' 프로젝트가 물의를 일으킨 것이다. 커뮤니티 개설과 동시에 이들은 '호주제 철폐를 위한 시민의 모임' 홈페이지 등에 진출해, 사이버 세계의 난폭자들과 한판 논쟁을 벌이려 했다.


그런데 '맞장뜨기' 내지는 '불지르는 남자들' 같은 용어가 상대를 자극한 것이다. '마초'들의 총공격으로 커뮤니티 게시판은 난장판이 되었다. 분노가 치밀었지만 이들은 먼저 자신의 잘못을 반성했다. 여성이 남성의 비속어를 쓰는 것은, 그 자체가 가치 전복적이다. 그렇지만 남성이 쓰는 비속어는 폭력의 또 다른 형태일 뿐이다. 폭력은 남성 페미니스트의 방식이 아니다. 이것이 이들이 내린 결론이었다.


미국·캐나다·호주에서 활동하는 친여성주의 남성 단체들은 남학생을 상대로 한 성희롱 교육·반 포르노그라피 운동·남성학 연구를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이제 막 '남성으로서 남성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 '귀띔'의 활약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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