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영맨 페미니스트'
  • 김은남 기자 (ken@e-sisa.co.kr)
  • 승인 2001.07.12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부장적 가치관 거부하는 '영맨 페미니스트' 등장…
강요된 위계 서열화 깨기 '게릴라전' 펼쳐


"나는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듯한 선언이다. 페미니즘이 이 땅에 처음 소개될 때 여성의 내면을 무장 해제시킨, 가장 선동적인 구호가 바로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젊은 남성들이 아버지처럼 살지는 않겠다고 아우성이다. 이른바 '영맨 페미니스트'가 등장하면서 새로 나타난 현상이다.




남성 페미니스트란 우리 사회에서 아직 낯선 존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들이 등장할 토대는 지난 10년간 꾸준히 쌓여 왔다. 대학에서 여성학 또는 남성학 강의를 듣거나, 여성운동에 동참하거나, 1990년대 중반 대학가의 주요 의제로 떠오른 성(性) 정치 담론을 접하며 페미니즘 세례를 받은 남성들이 하나 둘 생겨난 것이다.


"좋은 아버지에 앞서 좋은 남자가 되어야 한다"


최근에는 페미니즘 웹진 〈언니네〉(unninet.co.kr) 안에 '친여성주의자 모임 귀띔'이라는 사이버 커뮤니티가 발족하기도 했다. 이 모임은 국내 최초의 영맨 페미니스트 조직으로 기록될 전망이다(48∼49쪽 상자 기사 참조).


이들 영맨 페미니스트가 아버지를 거부하는 것은, 단순히 아버지가 권위적이어서도, '아버지처럼 별 볼일 없는 인생을 살고 싶지 않아서'도 아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친여성주의자모임귀띔 회원 차우진씨(26)는 남자끼리 친구가 되는 가장 흔한 방식이 아버지를 도마에 올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내가 너한테만 하는 얘긴데…"라는 서두와 함께, 아버지에 대한 애증을 눈물 콧물 섞어 토로하는 술자리 대화를 통해 우정을 확인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차씨는 이를 '나는 너를 공격하지 않겠다는 남성들의 제스처'라고 표현했다. 남성은 이렇게 자신의 연약한 부분을 드러냄으로써 상대방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싶다는 의사를 무의식적으로 전달한다.




그렇지만 문제는 아버지에 대한 증오가 순식간에 연민으로 옮아 가는 것이라고 차씨는 지적한다. 남성들은 아버지를 연민함으로써 '어느새 아버지를 닮아 가는' 자기 자신을 합리화한다. 그도 아니면 불쌍한 아버지들의 권위를 다시 세워야 한다는 결론으로 치닫는다. 몇 년 전 폭발적인 화제를 모은 소설 〈아버지〉처럼.


영맨 페미니스트들이 가장 경계하는 지점이 바로 이것이다. 서울여성의전화가 운영하는 '평등 문화를 가꾸는 남성 모임'에 5년째 참여해온 교사 최낙성씨(36)는 "우리가 어릴 적 아버지는 상석에서 무게만 잡고 앉아 있으면 되었다. 그렇지만 우리가 지금 그렇게 무게를 잡고 있다가는 아들이 가출한다"라고 바뀐 시대 상황을 표현한다.


그렇다고 단순히 '좋은 아버지'가 되려고 노력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아버지에 앞서 좋은 남자가 되어야 한다"라고 최씨는 잘라 말한다. 기존 남성중심적 가치관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 채 좋은 아버지가 되겠다는 것은, 서강대 정유성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껍데기만 고쳐 가부장의 권위를 어떻게든 되돌려보겠다는 수작'에 불과하다. 상징적인 예로 드라마 〈아줌마〉에 나온 '못 말리는 가부장' 장진구도 마지막까지 좋은 아버지 역할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이들 영맨 페미니스트는 이른바 '착한 가부장'을 지향하는 남성학 제1세대와는 분명하게 선을 긋는다(1990년대 중반 '아버지 담론' 내지는 '남성 위기론'을 우리 사회에 처음 제기한 '좋은 아버지가 되려는 사람들의 모임' 등이 1세대의 대표 격이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듯 자기 안의 '아버지'를 죽이고 극복하는 것, 이것이 이들 영맨 페미니스트의 출발점이다.


여성 종합 주간 신문 〈우먼 타임스〉의 유일한 남성 취재 기자인 지승호씨(35)는 학창 시절 여자 친구와 다투던 과정에서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했다. 감정을 제어하지 못해 여자 친구를 손찌검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지씨가 어린 시절 증오해 마지 않던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결단코 아버지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고 다짐해 오던 지씨는 지독한 혼란에 빠졌다. 자기 안에 숨어 있는 폭력에 대한 공포, 폭력에 대한 갈망. 이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았다. 폭력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가 선택한 전략은 아버지로 상징되는 세상의 모든 권위를 비틀어 보기, 그리고 여기에 시비 걸기였다('시비 걸기'는 그가 3년 전부터 운영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이름이기도 하다).


서강대가 올해 처음 개설한 '남성 문화 연구'(지도교수 정유성) 과목을 수강하는 정창우씨(25)는 1999년 말에 벌어진 군 가산점 논쟁으로 인해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당시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하던 정씨는 논쟁이 한창이던 게시판에 여성의 처지를 두둔하는 글을 올렸다가 이른바 '사이버 마초'들의 집중 포화를 맞았다. 온갖 원색적인 욕설 앞에서 그가 느낀 것은 공포심이었다. '이러다 주류 남성 사회에서 영영 추방되는 것은 아닐까.' 이 사건을 통해 그는 비로소 여성들이 남성에 대해 가진 피해 의식을 간접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남성적 욕망의 배설구 〈스타크래프트〉




자아 성찰을 시작한 남성들의 눈에는 이전에 보이지 않던 '일상의 폭력'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포르노를 감상하듯 학내 성폭력 사건을 떠들어대는 남학생들, 남자는 그냥 지나치다가도 여자가 손을 들면 버스를 세우는 운전기사, 영화 〈친구〉의 카메라가 여성을 훑는 시선. 이 모두가 여성을 조각 난 신체, 곧 '유방''성기' '엉덩이' 따위로만 대하는 남성 중심적 성 문화의 산물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는 것이다.


자신을 열광시켰던 〈스타크래프트〉 게임도 예전처럼 보이지 않는다. 게임 이용자들이 개설한 방 제목('오빠 빨아줘' '왕초보 살살 들어와' '여대생과 함께' '프로토스 강간하기'), 병력을 얼마나 빨리 많이 만들어 상대방을 '모조리' 죽이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는 완벽한 모의 전쟁식 게임 방식. 이런 것들에 들러붙어 있는 '남성적 욕망'을 읽어내게 되는 것이다. 판타지가 폭력과 교접하고, 그렇게 피를 흠뻑 뒤집어쓴 판타지가 여성에 대한 준현실적 강간을 실행하는 '욕망의 배설구'. 친여성주의자모임귀띔 회원 변형석씨(32)에 따르면, 이것이 바로 〈스타크래프트〉가 남성들을 사로잡은 비밀이다.


이러한 성찰은 구조적 폭력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정유성 교수는 성별·나이·혈연·학연으로 편을 갈라(끼리) 이를 다시 위계 서열화(따로)하는 '끼리'와 '따로'의 문화야말로 남성 중심 지배 문화의 핵심이라고 지적한다. 이같은 위계의 정점에 남성·어른·국가가 있다. 임지현 교수(한양대·사학)에 따르면, 이러한 이분법적이고 위계적인 질서는 전사회 차원에서 억압된 은폐 기제로 작용한다(〈남성의 역사〉).


폭력·획일적 남성 지배 문화가 '남성 억압'


영맨 페미니스트들은 이 속에서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교묘하게 억압당하고 있다고 파악한다. ㅎ대 대학원 여성학과에 다니는 남학생 마비(26·본명 대신 써 달라는 아이디. '마초 비토'의 준말이다)는, 군대라는 획일적·폭력적·위계적 조직에서 얼마나 많은 남성이 고통받는지를 환기한다. 그런데도 군 가산점 논쟁에서 드러났듯 남성 대다수가 자신들을 억압한 본질은 직시하지 못한 채 여성에게만 엉뚱한 화살을 날리고 있다는 것이다.


구조적인 성찰은 영맨 페미니스트로 하여금 강요된 위계 서열화를 거부하게 만든다. 선배라는 이유로 후배에게 무조건 반말을 하고 심부름을 시키는 일이 이들에게는 더 이상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지승호씨는 아홉 살 난 딸에게조차 존대말을 강요하지 않는다. 아이는 때로 "5백 원도 없어? 이 거지 ××야"라며 아빠를 면박하곤 한다. 남들이 보면 '콩가루 집안'이라고 할지 몰라도 지씨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는 아이가 자율적 사고를 채 갖추기도 전에 권위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을 내면화하기 바라지 않는다.


'귀띔'의 한 회원은 이른바 사수대에 서기를 거부했다가 운동권 동료들로부터 '왕따'를 당했다. 운동권 남학생이면 누구나 당연히 참여하는 것으로 여기는 사수대. 그렇지만 그는 2백∼3백 명이 소대 식으로 조를 편성해,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 일정한 '짬밥'이 차야만 맨 앞줄에서 '짱돌'을 던질 수 있는 사수대 문화에서 군대식 위계 질서를 보았고, 이를 거부한 것이었다.


새롭게 등장한 영맨 페미니스트들은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받고 있다. 폭력적이고 획일적인 남성 지배 문화가 여성뿐 아니라 남성의 가능성 또한 제약하고 있다는 이들의 문제 제기는 보통 남자에게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마비는 어릴 적부터 강요된 '남성다움'의 이데올로기가 남성의 감성을 짓이기고 있다고 비판한다.


변형석씨는 남성들이 가족은 고사하고 '죽고 못 산다'는 친구와도 껍데기뿐인 관계밖에 맺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추억 나누기가 끝나는 순간 대화가 끊기는, 술을 동반하지 않으면 안되는 남성들의 만남. 변씨에 따르면, 이는 남성들이 소소한 일상이나 속내를 말할 줄 모르도록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정치와 주식 얘기에 열을 올리면 올릴수록 남성들의 관계는 복구 불가능한 형식적인 관계에 빠져든다.


서강대 경영학과 류종석씨(26)는 "아버지 세대만 해도 가장으로서 권리를 누렸는데, 우리 세대에게는 권리는 없고 의무만 남았다"라며, 결혼 후 생계를 책임지는 것은 기본이고 남성에게도 집안·학벌·외모 따위를 옵션으로 요구하는 사회 분위기가 남성을 위축시킨다고 말했다. 성을 상품화하는 것은 비판하면서 '(남성) 능력 상품화'는 왜 문제 삼지 않느냐는 것이 그의 농담이다.


그렇지만 이런 문제에 대한 보통 남자들의 공감대가 넓어질수록 영맨 페미니스트는 더욱 아슬아슬하게 외줄타기를 해야 한다. 그것은 '남성도 억압받고 있다' '남성도 알고 보면 불쌍한 존재'라는 또 하나의 남성 중심 이데올로기로 퇴행하는 것을 경계하면서 '남성은 결코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여성과도 접점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내 안의 '아버지'를 극복함으로써 가부장적 지배 질서에 파열구를 내겠다는 남자들. 이들의 '게릴라 프로젝트'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