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돌이' 파면, 경찰에 파문
  • 박병출 부산주재 기자 ()
  • 승인 2001.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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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재복 경사 중징계하자 하위직들 '인터넷 시위'…
경찰 '개혁 의지' 의심 받아


평소 검찰을 비판하고 경찰을 개혁하라고 주장해 온 한 경찰관이 파면되자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부산지방경찰청은 지난 7월9일 징계위원회를 열어 부산 금정경찰서 방범계 차재복 경사(37)에 대해 배제징계(파면) 처분을 내렸다. 조직 교란 및 결속 저해, 품위 손상, 명령 불복종, 지휘권 도전 등 5개 항에 책임을 물은 것이다. 부산경찰청은 차경사가 허위 사실을 유포하다가 문책을 받은 충주경찰서 안 아무개 순경의 주장을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인터넷에 유포하며 인사 조처의 부당성을 주장하는 등 '경찰 네티즌 윤리 강령'을 위반했다고 밝혔다. 차경사는 경찰직장협의회 결성을 선동하고 인터넷 투표를 실시하는 등 경찰직무집행법을 어긴 혐의도 받았다.




그러나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징계를 통해 이 정부에 곡학아세하려는 자가 누구인지, 징계가 과연 조직 전체의 뜻인지 묻고 싶다'라는 글을 올린 차경사는, 행자부 소청심사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소송을 통해서라도 명예를 되찾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법보다 채찍이 우선인 검찰 파이팅!"


전국의 하위직 경찰관들도 차경사 중징계에 반발해, 경찰청·부산지방경찰청·금정경찰서 등에는 징계 철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7월10일과 11일 이들 기관과 차경사의 홈페이지(chadorii.com.ne.kr)에는 '개혁에 동참했던 직원을 잘라내고 법 위에 군림하는 경찰로 돌아간 것을 축하한다. 법보다 채찍이 우선인 경찰 파이팅!'이라는 비아냥과 '평소 언론에 출연해 불합리한 관행 개선과 경찰 홍보에 노력한 차경사에게 관용을 베풀어 달라'는 호소 등 수백 건의 글이 올랐다. 일부 경찰관은 가명으로 글을 싣고도 "인터넷 주소(IP)가 추적당할 것을 각오하고 있다"라면서 경찰 수뇌부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경기 경찰'이라는 ID를 사용한 한 네티즌은 '전국의 비간부 경찰들아 일어서자. 바른말 했다고 잘라 버리다니, 총궐기하자'라고 '선동'에 가까운 글을 올렸다. 부산경찰청의 경우, 하루 수백∼천여 건이던 인터넷 접속 건수가 10일에는 4천4백여 건에 달해 인터넷 시위를 방불케 했다.


차경사 중징계가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글들의 또 한 가지 공통점은, 이번 사태를 경찰 내부의 '보혁 갈등'과 '간부 대 하위직' 간의 대립 구도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이번 일을 보면 경찰 개혁이니 뭐니 이딴 것은 역시 배부른 소리고 복지부동해야 살아 남는다. 역시 경찰의 미래는 없다'(ID '남종호')라고 절망한다. 한 경찰관은 '신임 몇 년 간은 확 뒤집어버리고 나가고 싶은 생각도 있었으나 지금은 가족도 생기고 먹고 살기 위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생활한다'라면서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서'라고 썼다. 그가 사용한 ID '사시나무'는 조직 하부에서 '떨며 살아가는' 말단 경찰관을 은유한 말이다.


수많은 경찰이 차경사 한 사람에 대한 징계에 집단 반발해 내부 갈등의 골이 드러난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차경사는 '차돌이'라는 ID로 널리 알려진 '인터넷 논객'이다. 특히 지난 5월 터뜨린 '화제작'은 그를 단숨에 스타로 만들었다. 경찰 사회의 금기를 무시하고, 검찰을 강도 높게 비판한 것이다.


차경사는 경남공직자협의회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백만 경찰 가족 여러분'이라는 글을 통해 검찰에 직격탄을 날렸다. '검찰이 전국 경찰서를 자기 집 드나들 듯이 하면서 경찰을 자기 부하인 양 다룬다. 마음에 안 들면 유치장 감찰이라는 명목으로 난리를 피우고 경찰서 서류 전체를 조사하는 등 수사 지휘권을 자기들 멋대로 휘두르고 있다'라는 요지였다. 그는 또 '당당하고 깨끗한 경찰, 자랑스런 엄마아빠가 되기 위해 부정부패추방연합의 검찰 개혁 서명운동에 전국 경찰 가족이 동참하자'고 촉구했다.




차경사는 언론을 통해서도 거침없는 말투로 검찰 비판과 경찰 개혁에 목소리를 높였다. 검찰에 대해서는 수사 지휘권을 '경찰 지휘권'으로 바꾸어 행사하는 무소불위를, 경찰 조직에 대해서는 검찰에 무시당하기 싫어 복지부동하다가 오히려 '찍소리도 못하고 하수인 노릇을 하는' 무력함을 청산하라고 역설했다. 차경사와 하위직 경찰관들은 경찰 수뇌부가 이런 차경사의 '거친 입'을 막기 위해 파면 방침을 정해 두고 징계위원회라는 '요식 절차'를 밟았다는 주장이다. 인기를 모으고 있는 텔레비전 대하 사극 〈여인천하〉에 견주어, 차경사를 '이 시대의 조광조'라고 부르는 이도 적지 않다.


이에 대해 부산경찰청은 "개혁 주장이 문제가 아니라 조직 구성원으로서 소양을 결여한 것이 중징계를 자초했다"라고 반박했다. 감찰담당 서범수 경정은 "상급자를 익명으로 무고한 다른 경관의 주장을 여과 없이 수용해 청와대 인터넷 신문고에 글을 올린 사실이 지적되어 경찰청 하명으로 조사를 시작했다. 고의성이 없었다는 것만 확인하면 끝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차경사는 두 차례나 조사를 거부하고 이를 자랑 삼아 인터넷에 밝혔고, 일방적으로 소속 경찰서·경찰청·행정자치부 홈페이지 등에 자신의 사직서를 실었다가 철회하는 등 분별 없이 행동했다"라고 말했다. 인터넷을 통해 유명 인사가 된 차경사가, 현실적인 문제마저 인터넷에서 여론몰이로 해결하려는 자세로 대응했다는 것이다.


징계위원회에 참여했던 한 간부는 "인터넷에 시위성 사직서를 띄웠다가 철회한 데 대해 '사직한다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지만 마무리할 일이 있다'라는 답변을 들었다. 이왕 그만둘 바에는 자진 사직하기보다 '처절하게 쫓겨나는' 모습을 연출해 눈길을 모으려는 의도로 보였다"라고 말했다.


경찰 감사관실, 각 기관 인터넷에서 관련 글 삭제


물론 차경사의 말은 다르다. 그는 실명으로 청와대에 제기한 '민원'에 답변 대신 감찰이 시작되어 죄인 취급을 당했고 그 전부터 끊임없이 감시를 받는 등 '코너에 몰린 쥐'의 심정으로 조사를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어느 쪽이 옳은지는 차경사의 말처럼 법정에서 가릴 수 밖에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번 사태로 경찰의 개혁 의지가 더욱 의심받고 있다는 점이다. 경찰청 감사관실은 지난 7월11일 홈페이지에 '경찰관 여러분께 알립니다' 등 해명성 글을 실은 후 각 기관 인터넷에 오른 차경사 관련 글들을 삭제했다. 경찰관 100여 명이 개설한 토론방도 징계에 법적 절차가 남아 토론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폐쇄했다.


지난해 7월 서울경찰청 이동환 경감이 개설해 차경사를 포함한 전국 1천1백 명의 경찰 네티즌이 활동하던 폴 네띠앙(http://club.dreamwiz.com/polnetian)도 경찰청과 '사적 공간 검열-조직 교란 선동' 공방 끝에 자진 폐쇄 형식으로 같은 날 문을 닫았다. 이같은 조처들은, 경찰 조직이 차경사와 같은 개혁 목소리를 필요로 할 만큼 경직되어 있음을 반증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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