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볕들 날 없는 교도소
  • 고제규 기자 (unjusa@e-sisa.co.kr)
  • 승인 2001.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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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환자, 진통제로 연명…가혹 행위 당해도 속수무책


김혜숙씨(34·가명)는 죽음을 앞두고 있다. 자궁암 말기 판정을 받은 김씨는 더 손을 써 볼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녀는 병명을 알면서도 속수무책으로 병을 키워갈 수밖에 없었다. 치료약이라고 그녀가 복용한 것은 진통제가 전부였다. 김씨가 제대로 치료 받을 수 없었던 것은 바로 교도소에 수감된 재소자였기 때문이다.




교도소에도 의료 인력이 배치되어 있고, 의료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그러나 인력과 시설은 교정당국마저 손을 들 정도로 개선되지 않고 있다. 43개 교정 시설의 의무관(의사) 정원은 64명인데 이마저 다 충원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58명에서 지금은 56명으로 감소했다. 법무부 교정국 관계자는 "의약 분업 이후 그나마 있던 의사들도 나가는 실정이다.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라고 말했다.


의료 인력 부족은 곧장 질병에 시달리는 재소자를 방치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1998년 3월에 출소한 김종우씨(33·가명)는 한쪽 눈을 실명했다. 교도소에서 재소자 사이의 폭행으로 두 눈을 다쳐 치료를 요구했지만, 김씨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석방 뒤 김씨는 다섯 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수술 시기를 놓쳐 왼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지난 4월17일 출소한 김병석씨(31)도 동료 재소자에게 맞아 왼쪽 눈을 다치자, 청송보호감호소에 치료를 요구했지만 무시되었다.


"인권위원회밖에 기대 걸 곳 없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인권 대통령을 자처하는 DJ 정부에서도 교도관의 폭행과 자의적인 법 집행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7월9일 대전교도소에서 5년 만기 출소한 오 민씨(44)는 교도소 말년을 행정 소송을 벌이며 보냈다. 1996년 6월25일 부산구치소를 시작으로 오씨는 부산교도소 군산교도소 논산구치지소 마산교도소 서울구치소 대전교도소 등 전국의 교도소를 돌아다녔다. 어디를 가나 오씨는 교도관들의 자의적인 형행법 적용에 치를 떨었다. 형행법상 청원서는 교도관이 볼 수 없는데도 버젓이 그가 보는 앞에서 청원서를 읽고 찢어버렸다. 꼬투리를 잡아 오씨를 조사실이라고 불리는 징벌방에 가두었다. 키가 161cm인 오씨는 두 다리도 펴지 못하는 징벌방에 45일씩 갇혀 있어야 했다.


재소자들의 인권이 침해당했을 때, 이를 밖으로 알리는 방법은 청원·면회·서신을 통해서다. 청원서는 밀봉되어야 하지만 오씨의 경우처럼 마음만 먹으면 교도관이 검열할 수 있다. 면회 시간에는 재소자의 입에서 폭행의 '폭'자만 튀어나와도 면회가 바로 중지된다. 검열을 원칙으로 하는 서신은 말할 것도 없다. 청원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피해자의 진술만 있을 뿐 교도관이 폭행 사실을 부인하면 법무부는 대부분 교도관의 손을 들어준다. 지난해 8월까지 집계된 국정 감사 자료에 따르면, 1998년 이후 재소자에 대한 폭행·가혹 행위로 적발된 교정공무원은 단 1명도 없다. 재소자가 교정공무원을 고소 고발한 건수는 1998년 22건, 1999년 48건, 2000년 8월말까지 23건인데, 36건이 불기소 처분되었다. 이런 수치도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이 인권운동사랑방 김보영 간사의 지적이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 이성희 변호사는 "교도소 인권 개선은 앞으로 신설될 인권위원회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지난 7월9일 김혜숙씨는 형집행정지로 대전교도소에서 풀려났다. 그녀를 가두는 것이 더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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