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K는 '참이슬'에 취하지 않는다
  • 나권일 광주 주재기자 ()
  • 승인 2001.08.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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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소주, 영남에서만 '지리멸렬'…야당 텃밭의 애향심 탓?


여름철은 소주 업계의 비수기이다. 맥주 소비는 늘어나지만 알코올 도수가 높은 소주는 다른 계절에 비해 20% 줄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복 더위의 한켠에서는 지역 연고 성격이 강한 향토 소주 시장을 공략하거나 방어하려는 주류 업체들 간의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광주·전남 지역의 경우 지난해부터 진로의 '참진이슬로'가 싼 가격과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소비자들에게 파고들면서 철옹성 같던 보해소주의 시장 점유율을 83%로 떨어뜨렸다. 진로는 창사 이래 가장 높은 전국 시장 점유율(52%)을 기록 중이지만, 보해소주가 텃밭인 광주·전남에서 점유율이 80%대로 추락한 것은 51년 회사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전북 지역에서 생산되는 보배소주(하이트 주조)는 점유율 40%대에 머물러 있다. 이에 따라 보해 등 향토 소주업체들은 시선을 돌려 일본 지역 소주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49쪽 상자 기사 참조).


시장 쟁탈전이 치열한 만큼 파열음도 요란하다. 최근 광주 지역 최대 할인 매장인 '빅마트'(사장 하상용)는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지는 몸살을 앓았다. 지난 5년 동안 '보해'만을 고집해 온 빅마트는 올해 초부터 매장 진열대에서 '진로'를 함께 팔아 보해측과 마찰을 빚었다.


빅마트에 따르면, 보해소주측이 보해와 진로의 매장 진열 및 판매 비율을 8 대 2 수준에서 9 대 1 수준으로 조정해 주기를 빅마트측에 요청했으나 거절당하자 보해소주를 빅마트에 공급하는 주류도매업체인 광주맥주판매(주)를 통해 공급을 중단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매장 진열대에서는 7월 초까지 4개월 동안 보해소주가 자취를 감추었다. 이같은 소주 분쟁은 시장 점유율 확대를 꾀하는 진로와 수성에 안간힘을 쓰던 보해양조의 치열한 힘겨루기였다는 것이 주류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그러나 정작 빅마트 매장에서는 현재 진로의 '참진이슬로'가 더 잘 팔리고 있다. 진로 소주가 연간 주류 판매액이 16억원에 달하는 빅마트를 잡기 위해 자사 판매 직원을 상주시킬 정도로 영업에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광주·전남 지역 소주 시장을 독점했던 보해소주의 경쟁력 저하는 높은 가격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대형 할인 매장에서 보해를 대표하는 브랜드인 알코올 도수 22% '천년의 아침'(300ml)은 판매가가 1천10원인데 진로의 '참진이슬로'(300ml)는 7백40원이다. 가격 차이가 상당히 크다. 이와 관련해 보해양조 김일득 홍보과장은 "보해 '천년의 아침'과 '보해 골드'는 쌀보리를 주정으로 하는 프리미엄급 소주이기 때문에 일반 소주와 다르다"라고 말했다.


지난 6월 말 현재 '참진이슬로' 한 상표로만 22억 병을 판매한 진로소주의 맹공은 광주·전남뿐만 아니라 대전·충남 지역에도 펼쳐져 백학(하이트 소주)과 선양 등 충청 지역 소주 업체의 시장 점유율도 60% 이하로 떨어뜨려 버렸다.


그러나 거침없이 질주하던 진로가 공략에 애를 먹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영남 지역이다. 주류 업계에 따르면, 영남 지역은 오히려 '자도주(自道酒) 마시기 운동'에 힘입어 대구·경북의 금복주와 경남·마산의 무학, 부산의 대선 소주 등이 95% 가까이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IMF 체제를 거치면서 이들 소주 회사가 경영난으로 50%대 점유율을 겨우 넘나들던 때와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약진이다. 이는 금복주와 무학 등이 1995년부터 알코올 도수 23%인 순한 소주를 개발해 출시할 정도로 저도(低度) 소주 시장을 선점한 덕분이다.


뒤늦게 '참진이슬로'를 통해 1998년부터 시장에 뛰어든 진로로서는 영남 지역 공략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그러나 소주 업계 관계자들은 이 현상을 '정치와 소주의 연관 관계'로 풀이하기도 한다. 결속력 면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광주 사람들도 김대중 정권이 탄생한 뒤로는 보해소주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보해소주는 1997년 이전만 해도 국내 시장 점유율 3위를 기록했지만 지금은 6위로 밀려났다.


우유·간장 업계 1위 제품도 영남에선 맥 못춰


반면 영남 지역의 경우 1997년을 전후해 강한 애향심과 결속력이 뒷받침되면서 소주뿐만 아니라 우유업계 1위인 서울우유와 간장업계 1위인 샘표식품조차 맥을 못출 정도로 고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남 지역 향토 소주 회사인 금복주·대선·무학은 진로와 두산에 이어 각각 국내 시장 점유율 3·4·5위를 기록하고 있다.


연간 1조3천억원대에 달하는 국내 소주 시장에서는 올해부터 알코올 도수 22%인 소주가 각광받고 있다. 앞으로도 '부드럽고 순한' 소주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추어 소주 업체들의 시장 쟁탈전은 갈수록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스카치 블루' 위스키가 성공해 자신감을 얻은 롯데칠성이 소주 시장에 진출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향토 소주 업체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선거가 가까워 올수록 소줏집은 왁자지껄해지고, 물밑에서는 소주 시장 쟁탈전이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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